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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초점] 20년 괴로웠던 하석주의 눈물, 장현수-김민우가 짊어질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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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초점] 20년 괴로웠던 하석주의 눈물, 장현수-김민우가 짊어질 트라우마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8.07.0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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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20년 전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에 사상 첫 선제골을 안겼던 하석주(50).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월드컵 백태클 퇴장의 안 좋은 선례를 남겼고 한국의 월드컵은 그렇게 또 실패로 마무리됐다.

엄청나게 많은 비판이 뒤따랐다. 인터넷이 거의 보급되지 않은 시절이었음에도 그를 향한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차범근(65) 당시 대표팀 감독도 네덜란드와 2차전 이후 유례 없는 대회 도중 경질이라는 철퇴를 맞아야 했다.

그리고 하석주는 20년간 차범근 감독을 피해다녔다.

 

▲ 하석주(왼쪽)가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만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방송 캡처]

 

하석주와 차범근 전 감독이 자그마치 20년 만에 조우했다. 둘은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출연했다. 하석주는 차범근 전 대표팀 감독의 품에 안기자마자 눈물을 쏟아냈다. 이에 차 감독은 “축구하다보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뭘 그렇게 가슴에 안고 사냐”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석주는 “2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감독님을 피해 다녔다. 나야 당연히 비판을 받아도 되는데 감독님은 그때 일이 아니었으면 지금도 대표팀 감독을 하고 계셨을 것”이라며 “감독님께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못했다. 1,2년 지난 뒤에도 지나가다가도 마주칠까봐”라고 말 끝을 흐리며 불편했던 마음에 대해 고백했다.

이에 차범근 감독은 “미안하다. 그런 줄 알았다면 진작에 불러서 서로 얘기라도 했을 텐데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나는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줄 몰랐다. 얼마든지 경기장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석주는 “당시엔 밖에 나가지 못하고 붕어랑도, 벽보고도 얘기하고 그랬다”며 “비판 받는 선수들의 심정을 잘 알고 있다. 얼마 전 일본전에서 퇴장 당한 콜롬비아 선수를 보고도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고 전했다.

한국을 대표해 태극마크를 달고 뛴 선수들 중 이번 월드컵에서도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된 이들이 있다. 멕시코전에서 핸드볼 파울로 페널티킥을 헌납한 장현수(27·FC도쿄)와 1차전 무리한 태클로 페널티킥을 내준 김민우(28·상주 상무)가 대표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장현수가 집중 타깃이 됐다. 2차전 그의 경기력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각 방송사 해설위원들도 모두 실점으로 이어진 장현수의 두 차례 태클에 대해 한숨을 내쉬며 강하게 문제점을 지적했다. 강한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다.

 

▲ 월드컵을 마치고 귀국 후 행사에서 의기소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현수. [사진=스포츠Q DB]

 

그러나 그를 향한 비판과 비난, 조롱은 1차전 직후부터 시작됐다. 무리한 패스로 박주호를 다치게 하고 2번째 실점도 장현수의 발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것이었다. 다소 무리한 책임 덮어씌우기로 보이기까지 했다. 이미 그를 향한 부정적 시선이 만들어낸 공격적 반응이었다. 심지어는 가족들까지 들먹이며 거센 비난을 했고 훈련장에서 장현수는 의기소침해 졌고 공교롭게도 2차전 더욱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였다.

차범근 감독은 “한 선수가 성장하고 스타가 되려면 팬들의 칭찬이 비판이 절대적이다. 다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지나고 보면 다 도움이 된다”면서도 “그러나 언제 그러느냐가 중요한데 장현수 선수 같은 경우 시기가 안 좋았다. 부정적인 여론을 조장하고 가족들을 끌어드려 선수들을 힘들게 하는 것 등은 앞으로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최용수 감독도 “독일도 귀국할 때 계란을 던지는 등의 팬들의 소요가 없었다”며 “그런데 우리는 계란을 맞는 등 세계에 한국 축구 문화의 민낯을 보여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팬들이 비난, 비판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객관성 여부를 떠나서 본인에게는 정말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축구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마음의 상처가 크다”고 덧붙였다.

독일 출신 방송인 니콜라스 클라분데는 월드컵 역사 80년 만에 첫 조별리그 탈락을 한 자국 대표팀에 대해 “어떤 상황과 이유, 컨디션에 따라 못할 수도 있기에 선수들을 비판할 필요는 없다”며 “짜증내는 축구 팬들도 있겠지만 선수들을 욕하지는 않는다. 이 상황에 대해서 욕하는 것”이라고 성숙한 축구 문화에 대한 예시를 보여줬다.

장현수와 김민우 등을 향해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더욱 성숙한 비판 문화가 필요하고 때론 다소 기다려줄 필요도 있다. 자칫 거센 비난이 트라우마가 돼 하석주처럼 20년간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일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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