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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레이블탐방](6) 20주년 롤링홀 '살아있는 밴드의 성지' 대부 김천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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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레이블탐방](6) 20주년 롤링홀 '살아있는 밴드의 성지' 대부 김천성 대표
  • 박영웅 기자
  • 승인 2015.01.17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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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메카의 현재 그리고 더 빛날 미래를 말하다

[스포츠Q 글 박영웅 · 사진 노민규 기자] 도전을 중시하는 스포츠Q가 20주년을 맞은 인디신의 성지 '롤링홀'을 찾았다.

100평 남짓한 크기의 소극장 롤링홀은 대한민국 인디 라이브신의 성지로 불린다. 지금의 홍대신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고, 수많은 밴드들은 이곳을 거쳐 가지 않고서는(수천 팀으로 추산) 정상 반열에 오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롤링홀이 개관 20주년을 맞았다. 대단한 일이다. 우리나라같이 인디신 자체가 항상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하지만 롤링홀은 이것을 해냈고 홍대를 중심으로 한 인디신의 성지로 우뚝 서게 됐다. 이런 모든 일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이 있다. 바로 롤링홀의 김천성 대표다.

롤링홀을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김 대표. 그와 함께 이곳의 과거와 미래를 살펴보고 우리나라 인디신의 발전방향을 모색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 롤링홀 김천성 대표

◆ 롤링홀의 운명 같은 탄생 '고난의 행군'

롤링홀의 탄생과 그로 인한 여파는 매우 극적이다. 롤링홀은 탄생만으로도 대한민국 인디신의 흐름과 역사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역사를 파헤쳐 보면 분명 고개가 끄떡여질 수밖에 없다.

롤링홀의 탄생지는 1995년 신촌이었다. 당시에는 '롤링스톤즈'라는 이름으로 현 김천성 대표의 친형인 김영만 롤링홀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운영하고 있었다.

밴드 활동을 했던 형의 영향으로 록음악을 좋아했던 김 대표는 롤링스톤즈의 우연한 방문을 계기로 97년 롤링스톤즈를 인수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현 롤링홀의 시작이다.

"형님 때문에 록 음악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자연히 귀가 열려 있었죠. 그러던 중에 형님이 운영하시던 롤링스톤즈를 찾게 됐고 실제 라이브 클럽을 접한 순간 제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수를 결심했죠."

 

하지만 김 대표가 롤링스톤즈를 인수한 이후부터 여러 해 고난이 이어졌다. 영세한 라이브 클럽들의 현실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2000년도에는 화재사건까지 일어나면서 주저앉을 뻔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런 위기를 밴드들과 함께 뛰어넘는데 성공했다.

"정말 힘들었죠. 97년 당시에 라이브 공연장들 자체가 숫자도 적었고 영세했기 때문이에요. 특히 2000년도 화재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최악의 상황에 빠졌죠. 그만 둬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롤링스톤즈를 사랑하는 수많은 밴드가 스스로 이곳을 살리기 위해 공연을 해줬죠. 결국, 문을 닫을 뻔한 롤링 스톤즈가 살아나는 데 성공했어요.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밴드들에 고마워요."

특히, 롤링스톤즈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밴드 중 김 대표가 가장 첫손에 꼽은 아티스트는 바로 윤도현이었다. 윤도현의 역할은 지금의 롤링홀을 탄생하게 하는데 가장 크게 이바지했다.

"(윤)도현이 형에게 너무 감사해요. 제가 롤링스톤즈를 맡은 97년부터 무려 3년간 꾸준히 무대에 서줬어요. 팬덤이 있는 유명 밴드로서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죠. 2000년 화재사건 당시에는 가장 앞장서서 이곳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 주셨고요."

"그래서 저에게 지금의 롤링홀이 만들어지는 데 크게 이바지한 밴드를 꼽으라면 당연히 윤도현 밴드입니다. 도현이 형이 이번 20주년 행사에는 뮤지컬 스케줄 때문에 무대에 서지 못하지만 제 마음속에서는 가장 상징적이고 중심입니다."

김 대표가 첫손에 꼽는 밴드는 '윤도현 밴드'였다. 그렇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라이브 공연장이 불법이라던 법까지 바꿨던 홍대 공연을 꼽았다.

"한때 라이브 공연장이 불법이라는 법이 있었어요. 라이브 공연 도중 경찰에 체포되는 일까지 있었죠. 자우림, 크라잉넛 등 많은 밴드가 라이브 공연 합법화 공연을 홍대에서 개최했죠. 결국, 라이브 공연장 합법화가 이뤄졌습니다.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밴드들이 법까지 바꾼 것이니까요."

▲ 100정도의 소극장 규모의 롤링홀은 홍대 라이브 클럽의 상징이다.

◆ 위기를 넘긴 롤링홀 '인디신 역사를 바꾸다.'

롤링스톤즈 인수 후 수년간 이어진 초반 위기를 잘 넘긴 김 대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여러 라이브 밴드 공연을 기획했다. 하지만 신촌 무대는 협소했다. 소극장 규모의 공연장이 많았던 대학로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연극과 뮤지컬 등의 공연이 중심이 된 대학로의 텃새가 존재했다. 밴드들이 마음 편하게 대학로에서 공연 활동을 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김 대표는 그때 본인이 직접 밴드만을 위한 소극장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내렸다. 그것이 바로 홍대에 터를 잡은 롤링홀이다.

"2000년대 초중반 당시 신촌이 침체하면서 대학로 쪽이 밴드들의 라이브 공연 장소로 주목을 받던 시기였어요. 하지만 연극과 뮤지컬 등이 중심이 됐던 이곳은 편하게 공연하기도 힘들었고 불친절했고…. 제가 소극장을 만들기로 했죠."

"그곳이 바로 홍대였어요. 당시는 홍대에 밴드들의 라이브 공연을 위한 소극장은 전혀 없던 시절이죠. 전 이곳에 롤링스튼즈를 옮겨 왔고 '롤링홀'이란 이름으로 밴드들을 위한 라이브 소극장을 차리게 됐어요."

홍대 롤링홀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신촌에서 대학로, 대학로에서 홍대로 인디신의 중심을 바꿔놓는 엄청난 사건을 만든 것이다. 김 대표는 이 부분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롤링홀이 개관한 이후 홍대에 많은 라이브 클럽들이 생겼죠. 우리나라 인디신하면 이제 홍대가 상징처럼 됐어요. 분명 롤링홀이 이런 인식의 시발점이 됐습니다. 제 자신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 홍대 인디신의 중심 롤링홀 "이래서 다릅니다"

홍대 인디신의 성지라는 말이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롤링홀. 그래서 이곳은 다른 클럽들과는 전혀 다른 문화와 무대에 오를 수 있는 밴드들에 대한 엄격한 규율을 가지고 있는 공연장이다.

"롤링홀 만의 장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선 롤링홀은 홍대 인디신의 역사와 함께해 온 만큼 밴드들의 히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그에 걸맞은 예우를 한다는 점이에요. 이런 예우는 그만큼 아티스트들이 우리 무대에 올랐을 때 더욱 좋은 공연을 하게 해주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롤링홀은 선후배 밴드들 간에 예우를 지켜야 한다는 엄격한 규율을 가지고 있어요. 요즘 라이브 공연장을 가보면 선배들에게 인사조차 안 하는 젊은 밴드들이 많아요. 롤링홀에서는 절대 용납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선후배 간 규율과 체계라는 부분에서 많이 부족한 우리나라 인디신에서 이런 롤링홀의 규율은 빛날 수밖에 없습니다."

"롤링홀은 결국 서로 따로 놀 수도 있는 인디 밴드들 간의 규율과 단합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롤링홀은 무대에 오르는 밴드들의 엄격한 기준도 가지고 있다. 바로 라이브 능력이다. 이런 기준은 라이브 공연장의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롤링홀 만의 철학이다.

"롤링홀은 철저하게 라이브 실력을 봅니다. 공연장에서 당연히 밴드들의 라이브 실력을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라이브 능력이 뛰어나다면 어떤 밴드도 롤링홀에 오를 자격이 되는 거죠. 이런 기준을 맞추기 위해 롤링홀 사람들은 지금도 라이브에 뛰어나다는 밴드들을 보러 다니죠."

▲ 롤링홀은 관객과 아티스트를 먼저 생각하는 공연장이다. 깨끗한 대기실과 화장실 등의 부대시설은 홍대 일대의 라이브 클럽중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 미래의 롤링홀? "중극장 규모의 확대, 밴드들의 연결고리 완성"

김 대표는 미래의 롤링홀의 모습에 대한 의견을 말해달라고 하자.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그는 이미 롤링홀의 10년 구상을 마쳤고 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확실한 방향을 잡아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말하는 핵심 방향은 중극장화, 선후배 밴드 간의 연결고리 역할의 완성이었다.

"제가 97년도에 롤링스톤즈를 인수하면서 목표로 잡은 것이 밴드를 위한 소극장을 만드는 것이었죠. 지금 이 꿈을 이뤘어요. 이제 새로운 목표는 10년 후의 롤링홀을 중극장화시키는 것입니다. 규모를 키워서 더욱 많은 대중과 호흡하게 하는 롤링홀을 만드는 것이죠."

"롤링홀이 나가야 할 또 하나의 방향은 선후배 밴드들 간에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에요. 아직 선후배 체계가 제대로 완성되지 못한 인디신은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후배들이 선배를 존경하고 선배들이 후배를 챙겨주지 못하는 문화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모래알 같은 거죠. 롤링홀은 이들을 단단하게 만들 겁니다. 이런 체계가 잡힌다면 선배들은 레전드로, 능력 있는 후배들은 선배들을 보면서 희망을 얻고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겁니다."

"그래서 이번 20주년 공연도 '영향을 준 선배뮤지션', '현재 잘나가는 뮤지션', '미래를 이끌 뮤지션' 이렇게 세분화해서 공연을 펼칩니다. 많은 분이 와주셔서 밴드의 역사를 즐겨 주세요."(웃음)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인디신의 라이브 공연장들이 살아남기 위한 조언도 남겼다. 그는 어느 때보다 목소리를 높였다.

"대기업 자본이 홍대로 밀려 들어오면서 영세한 라이브 클럽들이 죽고 있어요. 역부족인 상황이죠, 홍대가 어디입니까? 인디밴드들의 고향 같은 곳입니다. 범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클럽들 자체의 시설 현대화 노력 등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죽어가는 홍대신을 살릴 수 있습니다."

 

[취재 후기] 김천성 대표는 홍대신의 대부라는 별명답게 밴드들을 위한 확실한 기획과 열정이 느껴졌다. 김 대표가 있었기에 홍대신이 자리를 잡았고 발전했다는 평가는 허언이 아니었다. 조용필과 서태지를 롤링홀에 세우고 싶다는 김 대표. 그는 항상 롤링홀의 진화를 꿈꾸는 사람이었다. 롤링홀이 20년을 넘어 100년이 되는 그 날까지 영원하기를 기대해 본다.

dxhero@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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