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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승부 가른 '더 타이밍', 넥센-SK 불펜운용 무엇이 달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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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승부 가른 '더 타이밍', 넥센-SK 불펜운용 무엇이 달랐나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8.11.01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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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척=스포츠Q(큐) 글 안호근·사진 주현희 기자] 흔히 투수 교체 타이밍을 두고 평가하는 것을 결과론이라고 한다. 그만큼 정답을 찾기 어려운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야구에 있어, 특히 단기전에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투수 교체 시기다.

넥센 히어로즈와 SK 와이번스의 플레이오프(PO) 4차전은 투수 교체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본보기 같은 경기였다. 넥센과 SK의 두 사령탑 장정석, 트레이 힐만 감독은 적어도 이 경기 투수 운용에 있어선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 넥센 히어로즈 장정석 감독(오른쪽)이 지난달 31일 SK 와이번스와 PO 4차전 승리 후 안우진(왼쪽에서 2번째)을 격려하고 있다.

 

2연패 뒤 홈에서 1승을 만회한 넥센은 지난달 31일 4차전 선발로 신인 좌투수 이승호를 내세웠다. 풀타임 선발로 시즌을 치른 문승원을 내보낸 SK에 비해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지만 기대하는 부분은 있었다. 정규시즌엔 시즌 막판 4경기에서만 선발로 나서 1패만 떠안았던 이승호지만 지난 23일 한화 이글스와 준PO 4차전에서 3⅓이닝 2실점으로 가능성을 보였다는 것.

장정석 감독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이승호는 날카롭게 떨어지는 체인지업과 시속 140㎞ 초반의 속구를 섞어가며 2회까지 삼진 4개를 잡아내며 SK 타선을 제압했다. 3회엔 김성현에게 2루타를 맞았지만 흔들리지 않고 최정을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며 이닝을 넘겼다.

4회가 위기였다. 중심타선인 제이미 로맥과 이재원을 각각 내야 땅볼로 돌려세우고 돌연 흔들렸다. 제구 난조로 김동엽과 한동민에게 연속 볼넷을 내줬다. 준PO 한화와 4차전에서 3회까지 1실점으로 잘 버티다 4회 연속안타를 맞고 강판된 기억이 떠올랐다.

교체 타이밍으로 보였지만 장정석 감독은 이승호에게 믿음을 보였다. 경기 후 장 감독은 “안우진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강승호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고 1실점 정도 해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이날 이승호의 체인지업 움직임은 매우 예리했고 앞서 우타자 최정과 이재원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기도 했다. 이승호는 또 다른 우타자 강승호에게도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며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던져 헛스윙 삼진을 잡아내고 스스로 불을 껐다.

4회말 공격에서 타선이 2점을 내며 2-0으로 앞선 5회초 다시 이승호가 마운드에 올랐지만 선두타자 나주환에게 볼넷을 내줬다. 팀이 리드를 잡았고 전날 필승조 대부분이 등판했기 때문에 이번에야말로 한 번 더 기회를 줄 수 있는 상황으로 보였지만 장정석 감독은 냉철했다.

 

▲ 넥센 선발 이승호는 장정석 감독의 신뢰 속에 4이닝 무실점 호투한 뒤 마운드에서 물러났다.

 

장 감독은 “5회엔 고민이 있었다. 5회에 안우진을 올릴까 하다가 (이승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줬는데 힘이 빠진 걸 느껴 (볼넷 이후) 바로 안우진을 올렸다”고 말했다. 안우진은 믿음에 보답했다. 최정에게 볼넷 하나를 내주기는 했지만 날카로운 슬라이더로 SK 핵심 타자 3명을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후 안우진은 8회까지 무실점 피칭을 이어갔다. 타선이 2점을 보태 4점 차로 달아났지만 변화를 주기보다는 안우진으로 경기를 마무리 지을 것으로 보였다. 경기 전 장 감독은 안우진에게 5이닝까지도 맡길 생각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이보근이었다. 비록 이보근이 한동민에게 투런 홈런을 맞기는 했지만 선행 주자는 수비 실책으로 인해 내보낸 것이었고 강승호를 삼진으로 잡아냈기에 실패한 기용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후엔 김상수를 투입해 경기를 마무리했다.

이보근의 투입으로 경기 막판 긴장해야 했지만 이유는 분명했다. 안우진이 최정에게 볼넷을 내주는 과정에서 힘이 빠진 것 같아 8회부터 이보근을 준비시켰는데 더블 플레이로 주자가 사라져 안우진에게 결국 8회를 다 맡겼다는 것. 필승조 중 하나인 이보근은 이미 몸을 푼 상황이었고 점수 차는 4점까지 벌어져 있었기에 그에게 마무리를 맡기기로 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지만 뒤이어 김상수가 몸을 풀었기에 적절한 타이밍에 투수를 교체해 경기를 깔끔히 마쳤다.

반면 힐만 SK 감독의 이날 판단은 다소 아쉬웠다. 선발 문승원은 3회까지 볼넷과 안타 하나씩만을 내주며 무실점 호투했고 4회말 1사에서 타율이 1할도 되지 않는 박병호를 상대로 0-2로 유리한 볼카운트를 맞았다.

그러나 몸 쪽으로 던지려던 슬라이더가 제구 난조로 박병호의 유니폼에 스쳤고 주자를 내보내게 됐다. 문승원도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SK가 반드시 4차전을 승리하겠다는 각오를 했다면 투수 교체를 고려해 볼 시기였다. 실투 하나로 몸에 맞는 공을 허용했기 때문이라기보다 다음에 상대할 타자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 제리 샌즈는 정규시즌과 PO 1차전 홈런, 앞선 타석 안타까지 문승원에게 5타수 4안타, 타율 0.800로 강했던 타자였다.

 

▲ SK 선발 문승원(가운데)이 4회말 샌즈에게 투런포를 맞은 뒤 손혁 코치(왼쪽)가 마운드에 올라 배터리를 격려하고 있다.

 

그러나 힐만 감독은 이 점을 간과했다. 샌즈는 2-2로 불리한 카운트에서도 몸쪽을 파고드는 문승원의 슬라이더를 통타, 좌중월을 넘기는 선제 투런포를 날렸다.

2점을 내준 채 끌려간 SK는 5회말 문승원을 내리고 앞선 2경기 불펜에서 2⅓이닝 무실점 호투한 앙헬 산체스를 올렸다. 산체스는 삼진 2개를 엮어 삼자범퇴로 이닝을 순식간에 끝냈다.

그럼에도 6회말 마운드엔 산체스가 아닌 김택형이 서 있었다. 산체스의 공이 워낙 좋았기에 더 끌고 가지 않은 게 의아할 정도였다. 김택형이 흔들려 더욱 아쉬웠다. 첫 타자 서건창에게 볼넷을 내준 그는 박병호를 뜬공으로 잡아냈지만 샌즈에게 중전 안타를 맞고 1사 1,3루 위기를 자초했다. 이어진 임병욱의 스퀴즈 번트 상황에서 나주환의 송구실책이 실점으로 직결됐지만 김택형이 아닌 산체스였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 이른 교체였다.

힐만 감독은 “산체스가 처음으로 연투를 했는데 무리하게 활용하지 않으려고 했다”며 “산체스 뒤에도 불펜투수가 많이 준비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산체스는 전날 1⅔이닝 동안 24구를 던졌다. 불펜 보직이 익숙지 않기에 배려한 선택이었지만 단기전의 특수성을 생각해보면 아쉬운 결정이었다. 넥센은 안우진에게 포스트시즌 9경기 가운데 5경기에서 무려 15이닝을 맡겼고 이러한 기용이 용인되는 게 가을야구다. 

SK는 김택형 대신 정영일을 투입했지만 김하성에게 추가 적시타까지 내줬다. SK는 9회말 한동민의 투런 홈런으로 2점을 추격했지만 끝내 점수 차를 뒤집지는 못했다.

넥센은 절묘한 투수 운용으로 내줄 수도 있는 점수를 아꼈고 SK는 이 부분에서 아쉬운 판단으로 주지 않을 수 있었던 점수들을 내줬다. PO 4차전만 놓고 본다면 넥센의 이 부분에서 우위가 승리를 결정지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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