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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장기하와 얼굴들 '모노로 완성한 사운드'로 밴드 10년 마침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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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장기하와 얼굴들 '모노로 완성한 사운드'로 밴드 10년 마침표 찍다
  • 홍영준 기자
  • 승인 2018.11.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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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글 홍영준 · 사진 주현희 기자]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하는 게 있어요. 우리 말과 글을 부끄러워하는 순간이 있다는 점이죠. 더 잘나가는 나라와 언어가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말 고유의 특성을 숨기려는 식으로 대중음악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역사를 크게 봤을 때 점점 더 그렇게 되고 있는 거 같아요. 다른 건 몰라도 우리말을 새롭게 썼다는 점에 있어선, 감히 우리가 뭔가를 보여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장기하는 10년 밴드 생활을 마무리하고 자신들이 밴드사(史)에 남긴 게 무엇인지를 묻자,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위워크에서 열린 정규  5집 ‘모노(mono)’ 음감회에서 이렇게 답했다. 

지난 2008년 발매된 이들의 데뷔 싱글 '싸구려 커피'는 대중음악계에 충격을 안겼다. 랩인지 노래인지 모를 보컬의 목소리에 청년들의 실업 문제를 꽤뚫는 듯한 가사, 그리고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양쪽에서 안무를 추는 묘령의 두 여인, 미미시스터즈까지.

여러모로 높은 관심을 받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재생산되며 화제가 됐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장기하는 스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건 밴드의 해체를 선언했다.

심지어 그는 "해체를 확실하게 정한 건 8월 말이었다"며 "음반을 잘 만들다보니까 너무 잘 만든 거다. 그래서 그만해야겠다는 이야기다"고 전했다.

 

 

 

# '장기하와 얼굴들' 모노(MONO)로 완성한 밴드 사운드

최근 장기하는 사막에 다녀왔다. 악기 녹음을 모두 완성하고 보컬 녹음만 남은 상황에서 극단적인 환경을 떠올렸다. 미국 서부에 위치한 조슈아트리 국립공원(Joshua tree national park)으로 미국인 친구와 단 둘이 떠난 여행이다. 지인이 캠핑존에 차를 대고 1시간을 걸어 들어가면, 5시간 있다가 오는 상황이었다.

장기하는 그동안 조용히 보컬 녹음을 진행했다. 이번 앨범은 그 결과물이 될 뻔했다. 하지만 귀국한 뒤, 녹음물을 듣고 다시 스튜디오에서 재녹음을 진행했다. 그는 "굳이 그 사운드를 쓸 필요는 없을 거 같았다"며 "사막에서 노랠 많이 하니까 노래가 늘더라. 하지만 추상적인 단계로 그게 음악으로 담겼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사막행을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번 앨범을 위해 모아놓은 9곡을 모두 듣고 떠오른 공통점이 '혼자'였기 때문이다. '혼자'란 키워드에 대해 고심하던 장기하는 "그때 떠오른 게 60년대 초반 나왔던 비틀즈"였다며 당시 출시된 비틀즈 바이닐(VYNIL, LP판)을 가지고 있어 다시 들었고 "비틀즈를 처음 들었을 때 감동이 느껴졌다"고 떠올렸다.

그는 "스테레오는 이어폰을 끼고 들으면 보컬 기타 위치가 느껴진다. 왼쪽과 오른쪽의 소리가 다르다. 그 전 시대엔 스피크가 하나이다 보니까 모든 중앙에서 다 같은 소리가 나지 않느냐. 열등한 기술이다"라면서도 "하지만 비틀즈를 들었을 때, 작곡과 편곡을 깔끔하게 하니까 그게 오히려 장점이 되더라. 저희가 추구하는 것도 군더더기 없는 작,편곡이다. 그래서 모노를 도전했다"고 설명했다.

장기하는 "'혼자'는 숫자로 1이고, 그게 모노더라"면서 "비유적으로 연결이 된다는 개념이 떠올랐다.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제목과 믹스를 모두 모노로 정했다"는 사실도 알렸다.

그렇게 완성한 앨범의 만족도는 100%에 가까웠다. 장기하는 "우리가 추구했던 사운드로는 5집 앨범 이상 좋은 퀄리티가 나올 수 없다"며 "6집이 더 좋을 수가 없는데 '밴드를 계속해야하나'란 생각이 들었고 멤버들과 고심 끝에 해체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세가와 요헤이

 

# '장기하와 얼굴들' 해체 아닌 독립

"이 밴드는 내가 살면서 가장 오래한 밴드입니다.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가 돼서 뭘 했냐고 물어보면 '장기하와 얼굴들'을 했다고 말하게 됐습니다. 음악적으로 다른 것들도 어렸을 때 동경했던 뮤지션과 공연을 했다는 게 (감사하다). 뉴욕에 가고 런던에 가서도 이루지 못한 걸 대한민국에서 이뤘어요. 진짜 감사합니다."

'양평이 형'으로 알려진 일본인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가 전한 해체 소감이다. 그는 "(멤버들과) 헤어진다는 생각이 안 든다"며 "10년 동안 가족만큼 친하게 지냈다. 가족이 같이 사는데 독립하겠다는 소리가 나왔다. 이제 같은 동네 사는 거다. 그런 정도다"고 현 상황을 정리했다. '양평이 형'은 "해체라기 보단 그래서 독립"이라며 웃어 보였다.

베이스 정중엽도 "한국에서 10년 동안 밴드를 하고 그게 잘 끝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희박한 확률이다. 그런데 즐겁게 이루고 싶은 모든 걸 이룬 거 같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밴드가 보통 사건 사고 등으로 마무리되는데 우린 전혀 그런 거 없이 마무리하는 게 좋은 거 같다. 한편으론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진 않다. 재미있는 기억을 가지고 다른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며 밝은 미래를 자신했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는 없다. 이민기는 "아쉬운 맘이 없다면 거짓말"이라면서 "그럼에도 지금이 밴드를 마무리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란 생각은 들었다"고 전했다.

특히 뒤늦게 밴드에 합류한 막내 전일준의 상실감은 컸다. 그는 "의논을 했을 때, 해체 이야기가 나와서 우울이 찾아왔다"며 "그 전에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팬이었다. 같이 하게되어 기뻤는데 마무리를 하잔 이야기를 하고 돌이켜 생각하니 이건 대한민국 최고의 밴드였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또한 멤버들은 "새 앨범을 내고 활동하는 게 더 먼저고 마무리는 부차적인 일"이라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 해체에 대한 소회는 "12월 31일 자정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거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해체 소식에 팬들도 아쉽다. 지난 9월부터 시작해 현재 7주 차를 맞이한 공연 '모노(mono) : 나 혼자'는 소극장 ‘모텔룸(Moteloom)’에서 9주까지 계속되지만 팬들의 욕구를 전부 채우긴 쉽지 않다.

이날 현장을 찾은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관계자는 "마지막 앨범이지만 오늘이 새로운 시작이다"며 "전시도 기획 중이다. 두 달을 알차게 지낼 거다. 지금 공연도 7주차고 9주차까지 할 거다. 남은 두 달이 저희에겐 2년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전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발매 직후인 1일 오후 8시, 신보 발매 기념 네이버 V라이브를 진행해 팬들과 만났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올 연말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개최하고 활동에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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