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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Q] 故 신성일, 한국 영화계의 '별'이 지다… '맨발의 청춘'·'만추', 그의 연기 인생 보니
  • 주한별 기자
  • 승인 2018.11.04 20:52 | 최종수정 2018.11.05 09: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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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주한별 기자] 한 배우가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이제는 세상을 떠난 故 신성일이 한국 영화계에 남긴 족적은 엄청나다.

4일 신성일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근래의 영화 팬들에게는 낯설지만 오랜 영화 팬에게 신성일은 '스타' 그 자체였다. 1960년대 1970년대 약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신성일은 당시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얼굴이었다.

 

故 신성일 빈소 <사진 = 공동취재단>

 

故 신성일의 죽음에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애도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에서 막 영화의 씨앗이 움트던 시절 신성일은 대체할 수 없는 스타였다. 그 시절, 한국 영화계 그 자체였던 신성일의 연기 인생은 어땠을까?

신성일은 1960년대, 1970년대를 대표하던 '청춘 스타'였다. 미남 배우로 손꼽히는 그는 기존의 배우들과는 다른 뚜렷한 이목구비와 큰 키로 영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신성일이 전성기에 찍었던 영화는 백 편이 넘어간다. 당시 한국영화계는 제작 환경이 체계화 되지 않았고 주먹구구식의 촬영과 편집이 이어졌던 시대였다. 그러나 촬영 환경이 열악했던 그 시대에도 신성일은 인상적인 작품을 여럿 남기며 현재까지도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1960년 제작된 '로맨스 빠빠'는 그의 대표작중 하나다. 당시 한국 영화계의 스타 감독인 신상옥의 작품인 '로맨스 빠빠'에서 신성일은 최은희, 김승호와 함께 명연기를 펼친다. 1960년대의 소박한 가족들의 일상을 볼 수 있는 '로맨스 빠빠'는 현재까지 명작으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1963년 작인 '가정교사'로 신성일은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는다. '상록수', '동백 아가씨' 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한 신성일은 1964년 자신의 대표작인 '맨발의 청춘'을 만나며 전국적인 '서두수 열풍'을 이끌어낸다. 청바지에 스포츠머리로 시대의 청춘, 반항아를 연기한 신성일은 이후 미남 배우의 대명사로 손꼽혔다.

 

'맨발의 청춘' 출연당시 故 신성일과 엄앵란 [사진 = 영화 '맨발의 청춘'(네이버 영화) 제공]

 

김기영(1975년), 김태용(2011년) 감독이 리메이크 한 원작 영화 '만추' 역시 그가 주연을 맡아 빛날 수 있었다. 현재 필름이 소실된 상태인 이만희 감독의 '만추'는 현재까지 한국 영화의 전설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 등의 작품도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별들의 고향'의 경우 현재까지 많은 영화 팬들이 회자하는 명작으로 현재까지 패러디 되며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신성일은 '겨울 여자'로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1970년대에도 인기를 이어갔다.

노년인 2000년대에도 그의 연기 열정은 계속됐다. 영화 '태풍'에 조연으로 출연하는가 하면 2010년에는 드라마 '나는 별일없이 산다'의 주연을 맡았다. 지난 10월에는 투병 중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해 여전한 영화 사랑을 보여주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신성일'이라는 이름은 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예명이라고 한다. 신상옥 감독은 '뉴 스타 넘버 원'이라는 유래로 '신성일'이라는 예명을 지어줬다. 이름의 기운 탓일까. 故 신성일은 한국 영화계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배우로 영화 팬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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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별 기자  juhanbyeol@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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