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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경 작가 '육체를 사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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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경 작가 '육체를 사유하다'
  • 박미례 객원기자
  • 승인 2014.03.1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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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박미례 객원기자] "원시, 고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미술사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인간의 몸이에요. 고전 회화가 몸의 이상적 아름다움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던 반면 현대미술에서 몸은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철학, 사회, 경제, 심미적 가치관의 변화와 갈등을 반영하죠. 더불어 이에 대한 비판의식을 표출하는 매개로 아주 다양한 양식으로 표현되고 있어요. 몸에 대한 가치관은 그 시대를 총체적으로 대변하는 잣대가 됩니다."

▲ The Fruit Of Good and Evil(2007년)

우린 늘 흔하게 바라보는 몸을 오롯이 마주할 때 오히려 생소함을 느낀다. 특히나 배설과 생식작용을 하는 성기를 마주할 때면 당혹스러워하곤 한다. 그런데 여기 몸을 주제삼아 인간의 인체풍경을 탐구하는 작가가 있다.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에는 성스러움과 속됨이 동시에 꿈틀거린다. 일관되게 몸을 그려온 전수경(43) 작가를 만났다.

그의 작품으로는 인체 드로잉, 사물 등으로부터 모아진 다양한 몸의 이미지를 결합하고 재해석해 화면에 구성한 '보디 콤플렉스' '듀얼리티(Duality)' 연작이 있다.

"인간의 몸은 제 그림에서 재현, 비유, 상징으로 나타나요. 그림에서 남성과 여성은 이원성(Duality)을 상징하죠. 섹스와 젠더로서 남녀의 개념일 뿐아니라 정신과 물질, 빛과 어두움, 선악, 음양 등 대립항을 이뤄 존재하는 것들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전 이런 이원적 상호관계의 상징적 표현에 집중합니다. 본질적으로 서로 대립하지만 필연적으로 갈망하고 갈등하며 공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관계 및 작용을 회화의 상징적 도상으로 표현하고자 하고요."

전 작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지퍼, 고리 등 개폐 기능을 하는 사물 그리고 마치 자웅동체와 같이 한 몸 안에 존재하는 남녀의 성징(性徵)은 남녀관계의 이원성과 결속을 의미한다. 남녀란 안팎이 하나로 연결된 ‘뫼비우스 띠’와 같다.

전 작가가 표현한 그림 속 여성의 몸은 때론 에로틱하면서도 낭만적이고, 때론 무서운 면도 존재한다. 그가 생각하는 여성의 몸. 남성과 여성 몸의 차이는 무엇일까.

"근육질 남성의 몸은 능동태, 부드럽고 곡선적인 여성의 몸은 수동태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죠. 여성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포용성을 가지고 순간 남성을 잠식해버리도 합니다. 그러한 여성성이 가진 양면성은 남녀의 물리적 성관계에도 드러나죠. 흔히 키와 자물쇠가 각각 남근과 여성기로 비유되곤 합니다. 일체가 된 키와 자물쇠의 형상이 마치 남성이 여성 안에서 제압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요.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전 작가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와 희로애락의 중심에 ‘에로스’가 있다. ‘자신이 불완전자임을 자각하고 완전을 향해 끊임 없이 노력해 나아가려는 인간의 정신’ ‘충동적 생명력’이라는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가 에로스다. 어쩌면 신은 인간 스스로 그들의 한계를 깨닫도록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했을지 모른다. 유한한 인간은 남녀의 생식(生殖)으로 영원을 꿈꾼다. 보다 인간적인 인간들의 모습은 치열하고 아름답다.

전 작가의 채색 기법은 혀나 성기 등 인간의 신체 가운데 가장 예민하게 피부를 노출하고 있는 부분을 묘사하는데 있어 동양화의 전통적 초상화 채색 기법을 응용한다. 서양화에서 피부색 표현에 흰색을 혼합하는 것과 달리 동양의 초상화 기법에서는 흰색을 섞지 않고 다양한 순색 및 보색을 여러 겹으로 채색해 피부 묘사의 사실성을 추구한다.

여기에 공기와 수분의 투과 및 흡수를 허용하도록 제작된 한지 성질이 사람의 숨쉬는 피부와 유사하다는 점도 한지에 이 채색 기법을 활용한 이유이기도 하다.

▲ 전수경 작가

몸은 인간의 욕망을 담아내는 거푸집일 것이다. 작가의 그림에는 남성과 여성의 에로스적 욕망을 드러내는 도상들이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남녀의 성기나 침대, 구두, 장갑 같은 페티시적 사물들. 흔히 말해 야해 보이는 오브제들이 등장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전 페티시(fetish) 요소, 즉 물건이나 신체 특정 부위에서 성적 판타지나 만족감을 얻으려는 경향을 인간의 자연스럽고 창의적인 시·지각적 반응으로 해석하고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어떤 사물이나 형상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바로 몸이잖아요. 몸이 만들어내는 실루엣과 표정은 어떤 것보다 상상력과 본능을 자극해 삶의 긴장과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죠."

모두에게 동등한 실존의 터전이자 외부 세계와 만나는 첫 번째 지점인 몸은 언제나 열려 있다. 그러기에 회화의 전통적 소재로서 몸이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늘 새로운 의미와 형식을 담을 수 있는 유효한 키워드임을 작가는 믿는다.

“저는 작업의 소재를 구체적인 이미지에서 찾지는 않아요. 오히려 사전의 단어, 성경, 백과사전 등 어원으로서의 상징을 통해 도상을 이끌어내고, 그안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들을 찾아내는 것이죠."

'Tender your tongue'의 경우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잠언15:4) 성경 구절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찾았다. 엄숙한 성경에서 오히려 적나라한 관능의 상징을 추출한 점이 흥미롭다.

▲ Between The Candle and Candlestick(한지에 채색 2011년)

여성의 몸은 아름답다. 하지만 요즘 현대 여성은 몸에 갇혀 산다. 본인이 생각하는 여성의 아름다운 몸은 어떤 형태일까.

"자신의 타고난 본연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존중하고 가꾸는 태도와 마인드가 필요해요. 현대사회는 여성의 몸, 외모에 대한 규격화된 미적기준이 강요되는 시대죠. 그 기준에 맞추려 지나친 노력과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럽고 소모적입니다. 자존감이 필요해요. 전 지금까지 수많은 누드 모델들을 봐왔습니다. 저마다 가진 몸의 아름다움과 표정이 다르죠. 개인적으로 가장 그리고 싶지 않았던 모델은 가슴 성형을 한 여성 모델이었어요. 어떠한 자세를 취해도 같은 모양을 유지하는 가슴은 화가에게는 최악이거든요."

전 작가는 상대의 몸을 볼 때 전체적인 비율과 조화를 주의 깊게 살핀다. 때로는 발의 생김새가 그 사람의 얼굴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낯선 느낌을 주는 경우도 많아서 확인하고 싶어진다. 몸을 사유하는데 영감을 주는 구스타프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 루시앙 프로이드의 인물화, 영국화가 프란시스 베이컨, 영화 '블레이드 러너' '행복한 엠마' '은교'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 메를로 퐁티의 책들이 아름다운 입에서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 Tender Your Tongue(한지에 채색 2010년)

전수경 작가는?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졸업. 동양화 및 미술이론 박사과정에 있으며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다. 현재 성북동 작업실에서 다음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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