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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 심장을 쏴라' 정유정 작가 "문학·대중성 접점 잘 잡아"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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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 심장을 쏴라' 정유정 작가 "문학·대중성 접점 잘 잡아"①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1.24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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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베스트셀러 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의 작가 정유정(49). 한국 문단의 개성적 인물이다. 나약한 현대인의 섬세한 내면을 감성적 이미지로 표출하곤 하는 여성작가의 모습은 없다. 힘 있는 문장과 압도적 서사, 생생한 리얼리티로 독자를 인간의 본질을 향해 달리는 롤러코스터에 태운다.

2009년 수리희망병원이라는 정신병원에서 만난 스물다섯 동갑내기 청춘 수명과 승민이 인생을 향해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 ‘내 심장을 쏴라’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 22만부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의 소설을 처음으로 영화화한 ‘내 심장을 쏴라’ 개봉(1월28일)을 앞두고 23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숏커트에 검은색 레이어드 프릴원피스와 앵클부츠로 성장한 생기 넘치는 작가가 맞은편에 앉았다.

 

- 정 작가의 소설 중 처음으로 영화화되는 거라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 세계문학상 수상 때도 심사위원 사이에서 대중성에서 물음표를 던졌던, 논란 많았던 작품이다. 이런저런 문제로 인해 영화로 완성되기까지도 몇 년이 걸렸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니 순수문학의 문학성과 대중성의 접점을 절묘하게 잘 찾은 것 같다. 절제와 균형이 가장 큰 미덕이지 않나 싶다.

- 소설의 영화화는 달콤한 유혹이면서도 위험부담이 큰 ‘재창조’ 작업이다. 자칫 잘못하면 열성 독자층의 비판을 사기 십상이다. 원작자로서 ‘내 심장을 쏴라’를 평가한다면.

▲ 내가 이 소설을 집필할 때 던졌던 극적 질문은 ‘운명이 날 침몰시킬 때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였다. 소설이 전체 분량의 3분의2를 침몰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 3분의1을 무엇을 해 나갈지를 다뤘기에 문제용 감독은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하고 기대됐다. 영화를 보니 ‘무엇을’에 방점을 찍고 달려가더라. ‘무엇을’에 방해되는 것들을 과감히 쳐내는 그의 선택과 집중에 지지를 보낸다. 독자들도 “괜찮다”라는 평을 할 만큼 소설의 큰 프레임을 훼손하지 않은 채 그만의 내러티브와 색깔로 가져갔으니 존중할 만하다.

- 소설 속 다양한 인간군상과 상황에 대한 묘사가 누락되고,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 중 하나인 엔딩 처리 등이 달라짐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나?

▲ 소설을 영상으로 가져갔을 때 포기해야만 하는 부분이 많다. 전혀 서운하지 않다. 감독의 감각에 대한 기대가 있었고 그 결과물에 만족한다. 감격스러웠고 벅찼다. 행복했다. 마지막 장면에선 울컥 해서 눈물이 났다. 특히 ‘내 심장을 쏴라’는 2010년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진 적이 있다. 김영민 배우가 40세의 나이로 수명 역을 맡았다. 원작에 충실한 연극을 통해 감동을 한번 맛봐서 나와 다른 배리에이션을 주는 기쁨을 맛보고 싶기도 했다.

 

- 제작진이 영화화 작업을 하면서 조언을 구하려고 했는데 “알아서 하시라”고 일체 간여하지 않은 것으로 들었다.

▲ 집에서 아이들도 자유방임으로 키운다. 하하. 내가 간섭한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고,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문 감독의 감각, 해석방법, 세계관이 드러날 테니 온전히 그의 호흡으로 가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 '내 심장을 쏴라’는 어떤 계기로 탄생하게 됐나?

▲ 학창시절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광주기독간호대학에 입학했다. 3학년 때 병원으로 실습을 나가게 되면 환자 1명과 짝을 지어준다. 한달 동안 팔로우한 뒤 레포트를 제출해야 한다. 난 3선 국회의원의 아들과 짝이 됐다. 부모가 정신병에 걸린 아들을 유폐하다시피 한 케이스였다. 환자는 자폐 증상 탓에 나를 단 한 번도 쳐다봐주지도, 말을 걸어주지도 않았다. 창밖만 내다보고 있어 상처를 입었다. 나중에 작가가 되면 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아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수명 캐릭터의 씨앗이었다.

- 강제로 수용된 뒤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자유분방한 승민 역 이민기, 유년기의 트라우마 탓에 내면의 동굴로 숨으려드는 소심한 수명 역 여진구. 두 배우의 캐릭터 싱크로율이 매우 높다.

▲ 이민기 배우는 승민 그 자체로 여겼는데 그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더라. 여진구 배우는 수명의 내면 연기가 힘들었을 텐데 대견할 정도다. 2013년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GV(관객과의 대화)에 가서 영화를 보고 반했다. 어린 친구가 너무 연기를 잘 해서. 두 배우의 나이 차(12세)를 연기력으로 커버할 거라고 생각했다. 확신을 뛰어넘을 만큼 케미스트리가 뛰어났고 투샷으로 잡혔을 때 너무 멋있었다. 그런 꽃돌이들을 누가 안 좋아하나.(웃음)

 

- 영화 속 인상적인 장면을 꼽는다면?

▲ 인트로에서 동화적인 음악과 폭력적인 액션장면의 불협화음이 미묘한 판타지 느낌을 준다. 엔딩신에서 수명의 동작도 매력적이었다. 전기충격요법을 받고 나온 수명이 승민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대답하기 전 고개를 잠시 흔들 때의 표정도 눈에 밟힌다. 잘 못하면 오그라들 수도 있는데 가슴 아프단 생각이 절로 나게 만들었다. “여진구 연기 진짜 잘한다”라고 탄성을 내뱉었다. 진구 군이 조언을 구했을 때 해줬던 말이라곤 “수명이는 지능 훼손된 아이가 아니라 똑똑하다. 그것만 알고 판단해라”였다. 똑똑하고 기특한 배우다.

- "내 인생에서 어디까지나 난 유령이었다” “이제 빼앗기지 마. 네 시간은 네 거야” “무지개를 넘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처음엔 낯설고 두려운 일이다”와 같은 대사를 보노라면 청춘에게 전하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가 선연하다.

▲ 상처 많은 청춘 승민과 수명이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표출하고 싶었다. 하나의 몸에서 갈라져 나온 두 자아, 현실의 자아와 이상의 자아를 그려내려 했다. 수명은 승민을 바라보면서 갈망과 내적 갈등에 빠져든다. 승민은 수명이 바라는 이상형이다. 둘을 통해 자기 이상의 주권자, 삶과 세상을 상대하는 또 다른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다. 결론은 ‘내 삶을 피하지 말고 상대하라’이다.

 

- 정유정, 김애란, 김려령, 천명관 등 1960~70년대생 작가들의 작품이 속속 영화화된다. 동시대와 호흡하고 소통하는 작가군이며 영상세대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당신의 소설은 ‘영상미’가 뛰어나다.

▲ 소설을 쓸 때 독자가 원하는 이야기나 결말과 타협하고 싶진 않다.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사랑해줬으면 하는 거고, 사랑받기 위해 독자를 유혹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다. 요즘 세대가 활자를 무거워하기에 활자에서 문학적 무게를 덜어내고 읽는 순간 그림이 떠오르면서 이야기가 통합되는, 하나의 장면이 보이도록 하는 시각적 묘사 연습을 습작 시절에 많이 했다. 그걸 내 색깔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인터뷰] '야구광' 정유정, 사이코패스 주인공 소설 '종의 기원' 내년 출간② 로 이어집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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