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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빌드업 고집' 벤투 감독, '이대로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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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빌드업 고집' 벤투 감독, '이대로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9.01.3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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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11경기 연속 무패(7승 4무) 뒤 첫 패배. 그러나 가장 중요한 길목에서 떠안은 1패의 충격은 앞에 거둔 뛰어난 성과들까지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59년 만에 아시안컵 정상 탈환을 꿈꾼 한국 축구는 8강에서 허탈한 탈락을 맛봤다. 아시안컵 8강 고배는 무려 15년만. 손흥민은 “이제 아시아에서 쉽게 이길 수 있다는 상대는 없다”고 한탄했다.

28일 대회를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파울루 벤투(50) 대표팀 감독은 실패를 인정했다. 그러나 크게 나타나지 않은 성과를 강조하며 자신의 철학이 틀리지 않았음을 강조하려 했다.

 

▲ 파울루 벤투 감독이 2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아시안컵과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 점유율 우위에 만족? 골 없이 무의미한 ‘공 돌리기’

벤투는 “결과적으로 기대에 못 미쳤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게 분명하다”면서도 “선수들이 최대한 우리가 선보이려는 축구를 잘 이행해줬다. 잘 따라와 준 선수들을 탓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원하는 축구를 5경기 동안 잘 하려고 했고 일정 부분 경기력에 나타나기도 했다. 상대보다 대부분 나은 축구를 했다고는 생각한다”며 “토너먼트 특성상 한 경기가 잘못되면 바로 짐을 싸야 한다. 지난 경기에서 상대는 효율적인 축구를 해서 승리했고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벤투호의 핵심 철학은 짧은 패스를 중심으로 공을 돌리며 결정적인 기회를 노리는 ‘빌드업 축구’다. 빌드업과 점유율은 밀접한 말이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아시안컵에서 점유율에서 모두 우위를 점했다. 특히 바레인과 16강전에선 70.5%, 카타르와 8강전에서도 60.3%로 점유율에선 상대를 압도했다. 패스성공률도 84.9%, 87%로 높았다. 빌드업 축구의 좋은 예인 바르셀로나, 스페인 축구 대표팀처럼 많은 패스를 바탕으로 점유율 우위를 보였다.

다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 스타일 또한 목표는 골이다. 패스를 돌리다가도 상대 수비가 순간적으로 빈틈을 보이는 순간 허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결정력이 뛰어나야 하고 그것이 더 해질 때 비로소 빌드업 축구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바레인과 카타르를 상대로 각각 16개, 10개의 슛을 때리고도 골문으로 보낸 건 단 2개에 불과했다. 그만큼 기회를 잘 살려내는 데엔 실패했다는 것이다. 바르셀로나가 지향하는 바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인 부분이다.

 

▲ 빌드업 축구만 고집하던 벤투 감독(가운데)의 한국은 15년 만에 아시안컵 8강에서 탈락했다. [사진=연합뉴스]

◆ 어쨌든 계속 될 ‘빌드업 축구’, 벤투에게 필요한 것은?

벤투 감독은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 잘못됐다고 생각지 않는다.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찬스를 만들고 득점할지 연구하고 가다듬어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어찌됐든 벤투 감독 체제에서는 빌드업을 앞세운 스타일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중요한 건 해법을 찾는 것이다.

정확한 분석을 한 벤투 감독이지만 해결책을 찾는 건 쉽지 않다. 결정력 부족의 경우 유독 골대 불운도 많았고 손흥민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던 게 크게 한 몫을 했다. 이재성과 황희찬이 대회 도중 부상을 겪었고 중요한 공격 옵션인 권창훈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여서 발탁되지 못한 것도 영향이 있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준비할 때까지는 자연스레 어느 정도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찬스 메이킹 능력 부족은 더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더구나 이 역할을 맡았던 기성용이 대회 도중 부상으로 이탈하며 은퇴를 시사했다. 벤투 또한 “기성용은 우리가 추구하는 플레이에 큰 영향 미치는 선수지만 그 없이도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최대한 많은 선수들을 지켜보고 발굴해 다음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그 대체자를 찾는 것은 어렵다. 다만 3년 뒤 카타르 월드컵까지 장기적으로 내다봤을 땐 유력 후보들이 몇 있다.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의 중원을 맡아 금메달 수확을 이끈 황인범(23·대전 시티즌)과 스페인 라리가 1군에 데뷔하며 기대감을 키우고 있는 이강인(18·발렌시아)과 백승호(22·지로나), 외모부터 플레이 스타일까지 기성용을 쏙 빼닮은 김정민(20·리퍼링) 등의 발전과 함께 많은 기회를 부여해 미래의 핵심 자원으로 키워나가야 한다.

 

▲ 벤투 축구의 핵심 기성용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시사했다. 대체자 물색에 나서야 하는 벤투호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세계무대와 차이 실감, 아시아 겨냥 플랜B의 필요성

한국의 아시안컵 실패 원인 중 또 하나로 꼽히는 건 뻔한 전술이다. 벤투는 5경기 내내 4-2-3-1 포메이션만을 활용했다. 상대팀 입장에선 대비하기 용이했다.

물론 포메이션은 그 자체로는 전술이 아닌 전형에 불과하다. 같은 포메이션이라도 세부적 전략에 따라 다른 전술을 펼칠 수 있다. 벤투 감독은 자신의 색깔의 타당성을 강조하며 “어떤 포메이션을 쓰든 우리 플레이 스타일이나 게임 모델을 유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빌드업 축구에 대한 고집을 나타내는 동시에 4-2-3-1만을 쓴 게 문제가 아니라고 항변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과연 벤투 감독이 아시아와 한국 축구에 대해 제대로 분석을 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발언이기도 하다.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고전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아시아 국가들에선 한국을 경계한다. 한국을 상대할 땐 수비 라인을 끌어내리고 역습을 통한 득점을 노리거나 심지어는 비기기 작전을 들고 나오기도 한다. 아시안컵 혹은 월드컵 아시아 예선 등에서 번번이 답답한 경기력 속 고전하는 이유다.

한국이 벤투 감독 아래서 ‘빌드업 축구’의 완성도를 끌어올린다 한들 분명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광래 감독 시절 한국은 이러한 시도를 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했다. 과거부터 패스 축구에 중점을 두며 미드필더 위주의 플레이를 펼친 일본 정도가 아시아권에서 세밀한 패스 축구를 펼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만큼 밀집수비를 펼치는 상대에 효과를 보기 힘든 전술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 한국은 정작 패스 플레이가 아닌 코너킥에 의한 헤더와 페널티킥으로 득점의 절반인 3골을 얻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그럼에도 빌드업 축구를 고수하려는 벤투 감독의 생각이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다만 월드컵에 나서기 위해선 아시아 국가들을 꺾어야만 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

제공권을 활용한 고공 축구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국제무대 활용 가치에 대해선 이견이 있지만 김신욱, 이동국(이상 전북 현대) 등 제공권이 좋은 선수들은 아시아 무대에서 좋은 성과를 내왔다. 특히 김신욱은 2017년 말 열린 동아시아축구연맹(EAFF)컵 대회에서 압도적인 피지컬을 활용해 일본(2골)과 중국(1골)을 상대로 3골을 뽑아내며 존재감을 높였었다. 이동국도 33골 중 23골을 아시아 국가들에 집중시켰을 만큼 위협적이었다.

물론 제공권을 앞세운 축구가 해법이라는 건 아니다. 그러나 벤투 감독도 빌드업을 강조한 것과 달리 이번 대회에서 넣은 6골 중 인플레이 상황에서 나온 건 3골이었고 2골은 코너킥에서 김민재의 헤더로, 1골은 페널티킥으로 만들어 냈다. 적어도 아시아 무대에선 빌드업 축구의 효율성과 효과성에 대해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심지어 카타르와 8강전 후반 막판 1-2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벤투 감독은 수비수 김민재를 최전방에 배치하며 한방을 노리기도 했다.

빌드업 축구를 버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시아 축구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인정해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한 플랜B의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통할 수 있는 전술을 완성시키겠다고는 하지만 월드컵에 진출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을 상대로 빗장을 잠그는 아시아 국가들을 넘어서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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