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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① 열정 도전! 크리켓 태극마크 품은 '내일의 승리자'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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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① 열정 도전! 크리켓 태극마크 품은 '내일의 승리자'를 향하여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2.09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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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켓 남녀 국가대표팀 2기 선발…아픈 과거 날리고, 새 미래 향해 뛴 23명의 도전자들

[300자 Tip!] 대한체육회에는 모두 61개의 정가맹 또는 준가맹 경기단체가 있다. 물론 이보다 더 많은 종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종목이 있겠지만 대한체육회의 '인증'을 받은 종목이 61개라는 뜻도 되겠다. 이들 61개 종목에는 선수들이 있다. 생활체육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스포츠를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엘리트 선수들도 있다. 하지만 엘리트 선수라고 해서 모두가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다. 성공의 기준을 국가대표로 삼는다면 위너보다 루저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루저였던 사람들이 생소한 종목에 도전한다. 아직은 한국에서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종목이지만 한국 크리켓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겠다는 '내일의 승리자'들이다.

▲ 크리켓 남자대표팀 응시 참가자가 8일 경기도 수원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 수성관 체육관에서 진행된 선발 테스트에서 힘을 짜내 왕복달리기를 하고 있다.

[수원=스포츠Q 글 박상현 임영빈·사진 최대성 기자] 한국 크리켓의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다. 언뜻 보기엔 야구와 비슷하게 보여 야구의 조상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크리켓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너무나 떨어져 이런 종목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미 한국 크리켓은 지난해 첫 발걸음을 내딛였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크리켓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 남녀 대표팀을 출전시킴으로써 역사적인 첫 국제경기를 가졌다.

2012년부터 오랫동안 준비했던 남자 대표팀의 경우 중국을 상대로 감격의 첫 승을 신고했지만 지난해 3월 서둘러 출범시킨 여자 대표팀은 1승도 거두지 못하며 높은 벽을 실감해야만 했다.

아쉽게도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대표팀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남자 선수들은 군 입대와 자신의 취업, 미래를 위해 크리켓을 중단했다. 여자 선수들 역시 비인기 종목이라는 현실에 부딪혀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떠났다. 아시안게임이라는 국제경기 경험을 가진 선수들이 흩어지면서 그 유산이 사라지게 됐다.

대한크리켓협회는 다시 국가대표팀을 꾸리기에 나섰다. 아직 준가맹단체여서 선수촌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대한체육회로부터 지원을 받아 연 180일간 대표팀 훈련을 할 수 있다. 아직 실력이 크게 떨어져 어떤 대회에도 나가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오는 9월 아시안게임 1주년 기념 초청 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협회는 지난 8일 경기도 수원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 수성관 체육관에서 남녀 대표팀 선발 실기시험을 실시했다. 대표선수 공개모집 응시생 가운데 서류전형을 거친 남자 16명, 여자 17명이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겠다는 집념 하나만으로 갑자기 불어닥친 한파에도 구슬땀을 흘렸다.

▲ 크리켓 여자대표팀 응시 참가자가 8일 체력검사에서 유연성 테스트를 받고 있다.

◆ 유연성 테스트·서전트 점프부터 왕복 달리기까지

한국의 비인기 종목, 그것도 새롭게 만들어가는 종목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다른 종목에서 뛰었던 선수들이 전향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번도 그 종목을 제대로 경험한 선수들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종목에서 빛을 보지 못한 선수들이 자신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도전에 나서는 것이다. 이는 비단 크리켓뿐 아니라 최근 국제 대회에서 빛을 보고 있는 봅슬레이, 스켈레톤 등 썰매 종목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대표팀 선수 선발 실기시험에 응시한 이들 역시 단 한 번도 크리켓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모두 육상이나 체조 등 다른 종목에서 오랫동안 몸담았다가 여러가지 사정에 의해 그만둔 선수들이다. 선발 시험을 보러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크리켓이라는 종목이 있는지도 몰랐던 응시자들도 적지 않았다.

야구선수 출신인 강민섭(22)씨는 "크리켓을 경험한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다"며 "시험을 보기 전에 동영상을 봤던 것이 전부다. 야구보다 쉬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힘들지 않은 스포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소프트볼을 했던 소아영(26)씨도 "지난해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안나(28) 선배의 얘기를 듣고 크리켓에 도전하게 됐다"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크리켓이라는 것이 뭔지도 몰랐다"고 털어놨다.

▲ 크리켓 남자대표팀 응시 참가자가 8일 체력검사에서 힘껏 서전트 점프를 하고 있다.

오전에 열린 여자선수 선발 시험과 오후에 벌어진 남자선수 선발 시험의 방법은 같았다. 체력 테스트를 거쳐 각자 크리켓에 대한 생각과 대표선수로서 열정을 알아보는 면접이 전부였다. 크리켓을 할 수 있는 기초 체력과 열정만 있다면 누구나 대표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허리를 접는 유연성 테스트와 서전트 점프부터 시작해 공을 잡아낸 뒤 다시 던지는 필딩 능력과 장비를 갖고 20m를 구간을 두 차례 왕복하는 달리기까지 진행됐다. 체력 테스트는 남녀 모두 2시간씩 진행됐다.

이어 대한크리켓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승철(65) 성균관대 교수가 진행한 면접이 이어졌다. 평소 크리켓에 대한 열정과 관심, 대표선수가 된 뒤 포부와 계획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

김 회장은 "응시생들을 보니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학생들도 있었고 야구선수 출신도 많았다. 2012년보다 응시생 숫자는 적었지만 질적으로 더 우수해 미래가 밝다"고 흡족해했다.

◆ 아픈 과거를 갖고 있는 이들, 크리켓에서 위너가 되기 위하여

응시생들이 크리켓을 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적지 않다. 김승철 회장은 "자신이 했던 종목에서는 '루저'였던 응시생들이 크리켓에서 '위너'가 되기 위해 도전했다"며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지만 응시생들의 눈동자에는 간절함이 엿보였다.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강민섭씨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필딩 시험에서 안정적인 수비 능력을 보여준 그는 아니나 다를까 야구 선수 출신이었다.

▲ 크리켓 남자대표팀 응시 참가자가 8일 테스트에서 공을 받으려 하고 있다.

강씨는 "중앙고등학교에서 야구선수로 뛰었다. 처음에는 투수였는데 키가 작아 내야수로 포지션을 바꿨다. 하지만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자연스럽게 야구를 그만뒀다"며 "한동안 야구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공부도 시작하고 공장에도 취업해봤지만 운동에 대한 꿈을 접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야구를 다시 시작해보기도 했던 그는 두산의 신고선수 테스트에 합격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입단을 포기했다. 이와 함께 야구에 대한 미련도 버렸다.

그러나 지인이 소개해준 크리켓에 관심이 갔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받아들였지만 크리켓과 야구가 유사하다는 것을 알고 3개월을 고민한 끝에 대표선수 선발에 응시했다.

역시 야구선수로 활약했던 전현우(28)씨도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은퇴하고 지난해까지 중학교에서 코치로 활약했다"며 "선수생활에 미련이 남아 있었는데 야구부 동기의 권유로 크리켓과 인연을 맺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우리나라에는 야구를 즐기는 사람도 많지만 야구 실업자도 있다"며 "이들 중에는 아직까지 선수생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선수생활의 연장선을 마련할 수 있도록 크리켓을 권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소아영씨는 "소프트볼 9년을 했지만 허리디스크 때문에 그만뒀다. 이후 체대 편입을 준비해 다음달 대학(서울여대)에 들어간다"며 "허리디스크 문제는 운동을 통해 허리 근육을 강화해서 해결했다. 유연성은 떨어지지만 소프트볼을 했던 경험으로 크리켓을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 김승철 성균관대 교수 겸 대한크리켓협회장이 8일 대표선수 선발 테스트에서 선수들의 파일을 꼼꼼히 살피고 있다.

◆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까지 내다보는 장기 프로젝트

크리켓 대표팀 1기가 인천 아시안게임에 초점을 맞췄다면 대표팀 2기는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선수를 선발한다. 대한크리켓협회가 아시안게임이라는 소중한 유산을 포기하면서까지 대표팀 1기를 해체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회장은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의 경우 나이가 적지 않은 선수들이 많았다. 기량과 경험은 무시할 수 없지만 이들의 미래도 있고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까지 함께 하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봤다"며 "또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새로운 선수들을 발굴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새롭게 선수들을 구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크리켓협회는 2기 대표팀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이들 선수들을 중심으로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까지 간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아직 3년 정도의 준비기간이 있기 때문에 가능성 있는 팀으로 발전할 것이다. 여자 대표팀은 1차 목표로 1승 이상과 토너먼트 진출을 생각하고, 남자 대표팀은 메달에 도전하려 한다"며 "아직 국제대회 출전 계획은 없지만 9월에 아시안게임 1주년 기념 대회를 열 계획이다. 또 중국과 일본을 초청해 동아시아선수권을 개최할 것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크리켓은 아직까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런 측면에서 크리켓과 이에 도전하는 선수들은 동병상련이다.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선수들이 크리켓에서 자신의 미래를 발견할 수 있다면 한국 크리켓도 더욱 발전할 수 있다. 마치 '외인구단'과 같은 모습으로 다시 탄생할 크리켓 대표팀이 어떻게 발전하느냐에 따라 한국 크리켓의 앞날도 달려있다.

새로운 크리켓 대표팀의 첫 출발은 다음달 9일 인천 연희크리켓구장에서 시작된다.

▲ 크리켓 여자대표팀 응시 참가자가 8일 체력테스트 왕복달리기에서 배트로 도착점을 찍고 있다.

[취재후기] 2011년 대한체육회 인정 단체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 크리켓은 이제 겨우 역사가 4년에 접어들었다. 사람으로 따지면 영아기에서 벗어나 유아기에 접어들었다. 이전까지 '맛보기' 정도로만 했다면 이제부터는 한국 크리켓이 뿌리를 내려야 할 시기다. 이 때문에 대한크리켓협회가 대표팀 2기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역시 지원이다. 김승철 회장은 "인도나 스리랑카 등을 돌아다니면서 크리켓 경기를 보면 국내 대기업인 삼성, LG, 현대, 기아 등이 현지에서 크리켓의 주요 스폰서로 참여하더라"며 "크리켓 저변이 하루 빨리 확대된다면 대기업으로부터 적지 않은 지원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원이 들어온다면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밝혔다.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크리켓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라도 조그마한 지원이 절실한 때다.

[SQ현장] ② 새출발 크리켓에 새 인생 건 '히트 & 런' 으로 이어집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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