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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멘탈' 보고 배운 백수연, 집념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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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멘탈' 보고 배운 백수연, 집념의 도전
  • 권대순 기자
  • 승인 2014.03.17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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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국가대표 10년차 백수연 인터뷰

[300자 Tip!] 박태환(26·인천시청)을 존경한다는 백수연(23·강원도청)은 그의 정신적인 부분까지 닮은 듯했다. 고난을 견뎌내고 다시 한번 솟아오르는 백수연의 모습에서 박태환을 느낄 수 있었다. 백수연은 자신에게 영광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줬던 아시안게임 메달을 다시 한번 정조준했다. 홈 그라운드에서 열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꼭 메달을 따내겠다는 각오다. 수영선수 이후의 삶 역시도 고민이다. 그는 다양한 배움을 통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넓히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진천=스포츠Q 글 권대순 기자·사진 최대성 기자] 2006년 15세의 나이로 도하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백수연은 여자 평영 100m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성장세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했지만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선 것은 그가 아닌 정다래(23·수원시청)였다.

그래도 백수연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물살을 가르며 2년 후 올림픽을 기약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과 2013 바르셀로나 세계선수권을 통해 부활을 알렸다.

▲ 백수연이 인천 아시안게임을 향해 다시 한번 물살을 가른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 동메달리스트 백수연은 2012년 런던올림픽과 2013년 바르셀로나 세계선수권에서의 선전을 발판으로 2014 아시안게임 메달을 노리고 있다.

 

태환오빠 멘탈 존경해요

대개 운동선수들은 세계적인 선수들을 롤모델로 훈련을 한다. 그들을 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고 개인적인 동기부여도 얻는다. 백수연은 그 롤모델로 ‘마린보이’ 박태환을 언급했다.

“같은 종목 선수는 아니지만 태환 오빠를 존경해요. 어렸을 때부터 같이 훈련해왔기 때문에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 거든요.”

박태환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부정출발로 실격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2년 후 도하 아시안게임 3관왕에 오르며 한국 수영계의 구세주로 떠올랐다. 이후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400m를 1위로 통과하며 한국수영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겼다. 그야말로 국민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2009년 로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예상 밖의 부진에 시달렸다. 주종목 자유형 400m의 예선탈락이 특히 충격적이었다. 올림픽 이후 목표의식을 잃고 흔들리던 박태환은 다시 한번 절치부심,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런던 올림픽에서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백수연은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 중 한 명이다.

▲ 오랫동안 대표팀 생활을 같이 하면서 박태환과 우정을 나눠온 백수연. 박태환의 영향을 받았는지 슬럼프를 이겨내고 재기에 성공하는 모습까지 닮고 있었다.

“태환오빠가 지금까지 해오면서 시행착오도 많았고, 또 잘 해서 메달도 많이 딴 적도 있었죠.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그걸 잘 헤쳐 나오는 걸 보면서 특히 정신적인 측면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백수연은 박태환과 평소에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박태환의 멘토링을 받아서일까. 백수연 역시 확실히 부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종택 국가대표 감독은 “수연이가 정말 운이 없었다”며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확실히 기대가 된다. 기록이 괜찮다”라고 슬럼프를 극복한 백수연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 어게인 2006, 인천 아시안게임 메달 도전

현재 수영대표팀은 충북진천선수촌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아직 시즌이 시작되지 않아 선수들의 몸상태는 완벽하지 않았다. 백수연은 “몸상태는 60%정도이다. 아직 시즌 전이기 때문에 차근차근 몸을 만들고 있는 단계다”라고 말했다.

지난 2006년 이후 백수연은 ‘정체됐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도 출전은 했지만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그 사이 ‘라이벌’ 정다래는 평영 2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스타로 떠올랐다. 사실 백수연도 200m 결승 당시 정다래의 바로 옆 레인에 있었다. 하지만 6위에 오르며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

▲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백수연(앞). 런던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통해 부활한 백수연은 현재 60%인 몸상태를 아시안게임에 맞춰 끌어올릴 계획이다.

“도하 아시안게임에 나갔을 때는 중학교 3학년이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올라오면서 수영자세가 흐트러지고 기록이 많이 안 좋아졌어요. 평영은 양쪽 팔다리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밸런스가 굉장히 중요한데, 키가 크고 체형의 변화가 오면서 그런 밸런스를 잘 못잡았던 것 같아요.”

이후 백수연은 절치부심했다.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 평영 200m 준결승에 올랐고, 전국체전에서 평영 100·200m에서는 정다래를 꺾고 2관왕을 차지했다.

다시 한번 비상의 준비를 한 백수연은 2012년 런던 올림픽을 기점으로 부활에 성공했다.

당시 준결승에서 아쉽게 9위(2분24초67)에 오르면서 8명이 진출하는 결승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개인 최고기록(2분26초16)을 1초49나 앞당기는 성과를 얻었다. 특히 8위를 차지한 호주 샐리 포스터(2분24초46)와 불과 0.21초차로 뒤졌던 것이 아쉬웠다.

만약 결승에 진출했다면 2004년 아테네올림픽 개인혼영 200m 남유선(7위)에 이어 한국 여자 수영선수로 두 번째 올림픽 결승진출 선수가 될 수 있었다.   

“그때는 저보다 주위 사람들이 더 아쉬워했어요. 저는 사실 그 정도로 잘 할 줄 몰랐어요. 기록이 잘 나와서 만족하고 있었는데, 주위에서 아쉽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구요.”

▲ 주어진 훈련일정을 체크하고 있는 백수연. 인천 아시안게임 메달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한걸음씩 전진하고 있다.

기세는 2013년 7월 바르셀로나 세계수영선수권대회까지 이어졌다. 비록 10위(2분25초61)로 결승진출에 실패했지만 결승진출 커트라인이었던 캐나다의 마르샤 매카비의 기록(2분24초68)과는 0.93초차밖에 나지 않았다.

이제는 이 흐름을 아시안게임까지 쭉 끌어가야 한다. 백수연 본인도 최소한 메달은 딴다는 마음가짐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는 제 기록보다는 일단 메달을 따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경기이기 때문에 꼭 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백수연에게 콕 집어서 어떤 메달을 기대하느냐고 물었다. 내심 금메달을 기대했지만 돌아온 답은 조심스러웠다.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어요. 아직은 몸이 만들어진 상태가 아니라서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 대표생활 10년차, 미래를 꿈꾸다

백수연은 안산 본오중 2학년이던 2005년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9년 전 이야기. 그 이후 백수연은 꾸준히 국가대표를 유지하고 있다. 수영대표팀은 1년 중 11개월 정도를 합숙으로 보내고 있다고 했다. 지겹지는 않을까.

“솔직히 재미는 없죠. 그렇다고 훈련을 안 할 수도 없잖아요. 다른 운동선수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운동을 잘 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포기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스무살 땐 뭐 해야 한다’ 이런 거 별로 욕심 안냈어요.”

어른스러운 대답이었다. 운동선수는 단순히 실력뿐 아니라 마인드 컨트롤 능력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꾸준히 오랫동안 국가대표를 유지하는 비결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게 생활한 대신, 저는 그 사람들이 못해본 걸 해왔잖아요. 어차피 연습시간 때문에 다른 것들을 할 수 있는 시간 자체도 많지가 않았고요.”

신체능력이 중요한 요소인 수영선수들의 전성기는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이다. 백수연으로서는 이제 선수생활 이후에 대해서도 생각이 복잡할 시기. 그는 이미 주말마다 학교를 다니면서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백수연이 다니는 곳은 ‘대학교’가 아닌 학교 산하 ‘평생교육원’이었다.

“건국대 평생교육원에서 수업을 들어요. 대학을 갈 수도 있었지만, 평일엔 훈련일정과 겹치기 때문에 출석도 힘들고, 제대로 공부하기도 힘들다는 생각을 했어요. 반면 평생교육원은 주말에 수업도 직접 들을 수 있고, 제가 제 힘으로 리포트도 쓰면서 공부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선택했어요. 학점을 관리해주는 학교도 있지만, 그 보다는 제 힘으로 직접 배우고 싶었어요.”

▲ 제대로된 공부를 위해 대학교가 아닌 평생교육원을 선택한 백수연. 이후 석사와 박사과정까지 마치는 게 목표인 그는 꿈인 스포츠행정가를 위해 틈틈이 영어공부까지 병행하고 있다.

백수연이 원하는 것은 ‘학위’가 아닌 자신의 ‘실력’이었다. 백수연은 학사뿐 아니라 석·박사학위 코스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은퇴 후에는 코치보다는 스포츠 행정가 쪽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스포츠 행정가라는 직업을 하는 법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최대한 공부를 많이 해 놓으려구요. 여러 가지를 배워놓으면 나중에 제 선택지가 넓어지니까요.”

[취재후기] 6개월여 남은 아시안게임까지 백수연은 쉬지 않고 헤엄을 쳐야하고, 기록에 대한 압박을 받아야 한다. 그런 그가 가장 밝게 대답한 것은 유일하게 일탈이 가능한 주말 외박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10년차 국가대표선수로서의 부담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백수연의 밝은 웃음이 인천 아시아드에서도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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