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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명가를 찾아서] (2) '단신 군단' 인성여고, 포지션 없는 6인의 '위기 극복법'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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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명가를 찾아서] (2) '단신 군단' 인성여고, 포지션 없는 6인의 '위기 극복법' (上)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5.02.26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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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여고 여자농구부...10년만의 위기, 자부심과 악바리 근성으로 극복 의지

[300자 Tip!] 인성여고는 농구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명문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 정은순, 유영주, 이종애가 이 학교 출신이다. 체육관 앞에는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트로피가 잔뜩 진열돼 있다. 그런데 올해는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달 경남 사천에서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총재배 전국여자중고농구대회 본선에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4관왕에 올랐던 이 명가는 대체 왜 고비를 맞게 됐을까. 이들은 이 난관을 슬기롭게 헤치고 ‘농구명가’의 자존심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인천=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기자] “예선 탈락이 10년 만이래요.”

비상이다. ‘농구명가’ 인성여고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성적표다.

무슨 일이 생긴걸까. 전성기 이후에 찾아온 해이함은 분명 아닌 것 같다.

▲ 인성여고 5명은 미국에 농구 캠프를 간 김지영이 빠진 점을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학교 본관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선수들.

인천 중구 인성여고 다목적관 3층 체육관에 들어선 순간 느낌이 왔다. 농구선수들을 만나면 여성이라 하더라도 위를 쳐다보는 게 익숙했는데 눈높이가 딱 맞는다. 내려다볼 수 있는 선수도 있다. 5명이 들어오기에 나머지는 언제 오냐 물으니 전부란다.

단 6명. 인성여고는 2015년 첫 대회에서 그렇게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 '강제 토털 농구’가 돼버린 사연

“포지션이요? 우리 다 포워드고 가드에요. 하하하.”

포지션은 중요치 않다. 어쩔 수 없이 ‘토털 농구’가 됐다. 최장신 선수는 지난 12일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이 선정한 여자농구 유망주 명단에 포함돼 미국 캠프를 떠난 졸업반 김지영. 그의 키는 173cm, 6인의 평균 신장은 168cm다. 농구 선수들은 기죽지 않으려 대개 프로필에 신장을 높여 쓴다.

지난해까지는 10명으로 팀을 꾸렸는데 4명이 졸업하고 센터 2명이 훈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운동을 그만뒀다. 장차 한국 여자농구를 이끌어갈 대들보로 평가받는 박지수가 버티는 분당경영고와 격돌할 때는 "3명이 막아도 정말 힘들다"고 깔깔 웃는다.

▲ 1학년 노수빈(왼쪽)과 3학년 김지원이 서로에 대한 평가를 요청받자 수줍은 표정을 짓고 웃고 있다.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1년 창단했으니 전성기만 있었을 리는 없을 터. 그래도 인성여고는 언제나 강팀의 이미지를 유지해왔다. 특히 2013년에는 4관왕 위업을 달성했다. 다른 팀을 배려하기 위해 작은 대회에 나서지 않았고 일단 나선 대회에서는 모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지난해에는 전력이 약화됐음에도 준우승 2번, 3위 2번의 준수한 성과를 냈다.

센스 넘치는 플레이로 ‘똑순이’로 불리는 3학년 김수진은 “1월 총재배대회에서 10년 만에 예선 탈락하니 학교 명성에 누를 끼친 것 같았다”며 “솔직히 올해 목표는 본선에라도 자주 들자는 생각”이라고 덤덤히 말했다.

9년째 인성여고를 지도하고 있는 김광천 감독은 “고비임이 분명하다. 교체 없이 풀가동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남들보다 10배는 뛰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새롭게 팀을 가다듬는 중”이라고 안타까운 현실을 전했다.

하지만 실망도, 좌절도 없다.

김 감독은 “올해를 잘 버티면 내년에는 괜찮은 센터가 들어올 예정”이라며 “지도자가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들어가서는 안된다.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할 수 있다고 선수들을 다독이고 있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 달리고 또 달린다, 악바리 팀이 된 배경 

농구는 센터놀음. 180cm이 넘는 선수들이 페인트존을 장악하는 팀을 만나면 고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인성여고는 호락호락 당하지 않는다. 악바리 근성과 조직력으로 다른 팀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이 고유의 팀 컬러다.

▲ 농구부 감독을 맡은지 9년차에 접어든 김광천 감독. 마라톤 선수 출신인 그는 인성여고를 '잘 뛰는 팀'으로 변모시켰다.

1학년 편예빈은 “친구 (노)수빈이는 163cm밖에 안되는데 리바운드를 18개나 잡아내기도 했다”며 “우리는 악착같이 달려 끈끈한 수비를 한다. 신체적으로 뒤처지는 만큼 로테이션을 빨리 돌아 상대를 막아낸다”고 설명했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2학년 이주연은 “지영 언니를 빼면 개개인 능력은 특출나지 않다. 지금의 인성여고는 오로지 팀워크로 할 수밖에 없다”면서 “몇점을 내주고도 포기하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작년에는 20점 뒤지던 걸 뒤집은 경기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골밑에서 싸워줄 선수가 없기에 이들은 배로 뛰어야 한다. 상대 수비가 갖춰지면 득점이 쉽지 않기에 공격도 속공 위주로 한다. 그렇다면 체력은 필수. 인성여고는 여자 고교농구계에서 '잘 달리는 팀'으로 통한다.

사령탑이 마라톤 선수 출신이기 때문이다. 2002년 전임 김광은 코치가 청소년 대표팀 코치로 두 달간 자리를 비운 사이 농구인이 아닌 김 감독은 체력을 보강하기로 마음먹고 선수들과 함께 문학산을 뛰는 훈련을 시작했다. 그렇게 태어난 대표적인 선수가 2011년 전체 1순위로 우리은행에 지명된 이승아다.

체력의 우위를 점한 인성여고는 빠른 농구를 구사해 패권을 차지했다. 전반전 팽팽한 승부를 벌이다가도 후반이 되면 늘 치고 나갔다. 속공에 의한 손쉬운 득점, 쉽게 점수를 내주지 않는 타이트한 압박 수비를 바탕으로 전성시대를 열었다. 결국 해답은 '악바리 농구'에 있다.

◆ 짧고 굵은 훈련, 초-중-고 연계 시스템 

'쿵쿵쿵' 소리가 났다가는 큰일난다. 다목적관 3층에 자리한 체육관에서 공을 튀기면 2층에서 공부하는 졸업반 학생들에게 피해가 간다. 그래서 인성여고 선수들은 전통적으로 짧고 굵은 훈련을 해왔다. 빠르게 많은 것을 습득해야 하는 환경은 훈련 효율을 극대화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요즘은 방학이라 오전, 오후에 걸쳐 훈련하지만 학기 중에는 오후 5시 이후에야 훈련할 수 있다. 오전에는 웨이트트레이닝이다. 중요할 때마다 한 건씩 해줘 ‘미친 존재감’으로 통하는 김지원은 “훈련 시간만 따지면 우리가 꼴찌일 것”이라면서 “그런데 소문은 힘들다고 정평이 나 있다”고 웃었다.

▲ 왼쪽부터 편예빈, 이주연, 김수진, 김지원, 노수빈. 사진기자의 요청에 유니폼으로 무릎을 품어안는 익살스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학초-인성여중-인성여고를 거치며 어렸을 적부터 함께 한 것도 장점이다. 다른 고교들과는 달리 인성여고는 다른 지역에서 선수를 수급할 필요가 없다. 정착된 시스템은 코트 안의 하모니로 이어진다. 인성여중 강예숙 코치, 연학초 오지원 코치도 인성여고 출신. 모교로 진학할 제자들을 가르친다는 생각에 배로 애정을 쏟아붓는다.

1985년 인성여고를 졸업한 강 코치는 “원칙과 기본기를 누누이 강조하며 엄하게 가는 것이 인성여고의 색깔”이라며 “지고 이기는 건 두 번째 문제다. 농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실하느냐의 문제라고 배웠고 그렇게 지도한다”고 강조했다.

오랜 전통의 학교답게 선후배간 사랑도 애틋하다. 김 감독은 "정은순, 유영주부터 김수진, 이승아 등에 이르기까지 선배들이 모임을 통해서 회식을 곧잘 한다"고 귀띔했다. 선수들도 "프로에 진출한 언니들이 입던 유니폼을 물려주시는데 무척 기분이 좋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 왼쪽부터 1학년 편예빈, 3학년 김수진, 2학년 이주연.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서 사이가 정말 좋다"고 웃었다.

10년 만에 찾아온 절체절명의 위기를 헤쳐갈 키워드는 다름 아닌 '인성'이라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악바리 근성이었다.

[취재 후기] 프레스를 세게 하다가 파울콜이 불리면 사단이 날지 모른다. 김광천 감독은 “선수들이 파울 2개를 받는 순간 위축되더라”며 “인성 특유의 타이트한 수비를 보여줄 수 없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취재 당일 3명의 새얼굴이 인성여중 선수단에 합류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농구명가’의 위기는 일시적인 현상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5명은 김지영이 인터뷰를 함께하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하며 하루 빨리 동료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SQ스페셜] ② '짧고 굵은' 여전사, 악바리 근성으로 위기 넘는다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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