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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다양성 실험 끝낸 '조류인간' 신연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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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다양성 실험 끝낸 '조류인간' 신연식 감독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2.25 1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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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또 한 편의 읽고 싶어지는 영화가 등장했다. 전작 ‘러시안 소설’에서 주인공인 소설가 신효(강신효)가 썼던 소설을 현실의 영화로 탄생시킨 실험적 작품이 바로 ‘조류인간’(26일 개봉)이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으로 처음 소개된 이후 모스크바, 로테르담, 함부르크 등 세계 영화제에 잇따라 초청받은 영화는 15년 전 새가 되고 싶어 집을 떠난 아내 한비(정한비)를 찾기 위해 여정의 안내자를 자처한 소연(소이)과 동행하게 된 유명 소설가 정석(김정석)의 믿기 힘든 진실을 추적해가는 미스터리 판타지다. 작가 성향이 물씬 느껴지는 감독을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러시안 소설’(2012)과의 연결고리가 무척 독특하다.

▲ 구상과 시나리오 집필을 빠른 속도로 진행하는 편이다. 성격이 급해서.(웃음) ‘러시안 소설’ 직후부터 ‘조류인간’ 집필에 들어갔다. 소설가 신효가 썼을 법한 소설을 염두에 두고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생각해냈다. 2013년 ‘배우는 배우다’ 연출을 끝내고 조명감독이 태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40년 넘게 유지해온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시도하는 것을 보며 작품의 큰 틀을 같았으나 방향성이 달라졌다. 진화 과정에서 네안 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와 같이 다른 인류가 공존했던 시기가 있었듯 현실에서도 서로 다른 정체성을 지닌 이들이 공존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조류인간’은 정체성에 관한 영화다.

-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자와 사랑하는 사람의 정체성을 뒤늦게 이해하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전작에서도 그렇고 왜 정체성에 천착하는 지 궁금하다.

▲ 내가 영화를 하는 목적은 사람들의 실제 삶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다. 고통과 갈등의 원인을 고민하다보니 정체성으로 생각이 모아졌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 타인에 대해 잘 모름으로써 파생되는 불행과 비극이 어마어마하다. 소통의 부재도 그런 데서 기인하지 않나.

- 새는 그동안 영화에서 왕왕 오브제로 쓰여 왔다. 이번에 조류를 끌어온 이유는 무언가.

▲ 다른 들짐승과 달리 새는 인간과 같은 공간에서 공존하지만 그 공간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존재다. 도심에 살지만 시점이 서로 다르다. 공존이라고들 하지만 공존은 아닌 것 같더라. 조류인간은 말 그대로 인간의 몸을 가졌지만 새의 정신을 품고 인간 속에 섞여 살던 이들을 지칭한다. 그런 점에서 새는 이 작품의 캐릭터, 메시지와 잘 맞아 떨어졌다.

 

- 신 감독의 영화들이 이룬 문학적 성취를 빼놓을 수 없겠다. 이야기 전개나 표현방식 등에서 한 편의 미스터리,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곤한다.

▲ 어린 시절부터 창작을 했던 기억이 난다. 시나 소설을 쓰다가 시나리오로 옮겨졌다. 창작하는 도구의 변천사다. 다만 시나 소설은 노트에 담아만 놔둬 되지만 시나리오는 영화로 만들어야 하니까 감독으로까지 발걸음을 내딛지 않았나 싶다.

- 매 작품 낯설거나 새로운 인물들을 과감히 기용하곤 한다. 영화계에서 검증받지 않은 위험부담으로 인해 반대 의견도 많았을 것 같다.

▲ 내가 연출과 제작을 겸해서 별로...(웃음). 캐스팅을 해놓고 시나리오를 작업하곤 한다. 그러기 위해선 평소 많은 이들을 만나며 가능성을 타진한다. 지금도 미래의 작품 속 배우들을 캐스팅해나가고 있다. 오디션을 따로 보지도 않는다. 기술적으로 연기를 아주 잘 하거나 심하게 못하는 배우 아니면 큰 차이는 없다. 어차피 촬영을 하며 연기 레슨을 하니까 센스와 집념만 있다면 발전 속도는 빠르다.

- 특히 ‘배우는 배우다’의 이준, ‘프랑스 영화처럼’에서는 씨스타 다솜, ‘내 노래를 들어줘’에선 f(x) 크리스탈, ‘조류인간’에선 티티마 출신 소이 등 아이돌 가수들 캐스팅을 줄기차게 한다.

▲ 아이돌 출신들은 어릴 적부터 경쟁을 통해 올라온 친구들이라 절실함이 있다. 대학 연극영화과 특강을 가보면 절실함과 자기 인생의 갑갑함을 구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 비해 아이돌들은 오히려 더욱 치열하다. 특히 내가 캐스팅했던 친구들은 연기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이돌이나 낯선 배우들이 내 작품을 통해 가능성을 인정받아 다른 감독들에게 발굴되도록 하고 싶다. 다양한 재료가 있어야 다양한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않나. 개인적으론 영화산업에 보탬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 성취감도 느껴지고.

▲ '조류인간'의 소이와 김정석

- 소이의 경우는 시나리오를 쓰기 전부터 캐스팅을 했다고 들었다. 신비함부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무게감까지 드러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인데 어떤 점을 긍정적으로 봤나.

▲ 그의 연기를 본 적은 없으나 예전부터 가수보다 배우가 더 어울린다고 여겼다. 인생의 굴곡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외교관 자녀 출신으로 몇 개 국어를 구사하는 등 충분히 현실에 안주한 채 살아갈 수도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심정이 이해가 됐다. 또 그런 면이 소연 캐릭터와도 맞닿았다.

- 어느 인터뷰에서 앞으로 ‘러시안 소설’이나 ‘조류인간’과 같은 작업은 하지 않을 거라고 선언해 눈길을 끌었다. 어떤 의미인가.

▲ 우리 영화계 현실은 30억원 제작비 규모에 맞춰서 영화가 제작되고 배급, 마케팅이 이뤄진다. ‘러시안 소설’은 2000만~3000만원, ‘조류인간’은 1억원의 제작비를 들였다. 만든 이유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지 못하는 현실에서 다양한 제작 방식을 실험하고 싶어서였다. 시나리오, 연출, 제작, 배급 등을 경험하면서 데이터가 충분해졌다. 습작 시기가 끝났으니 향후 저예산 영화는 배우 발굴이라는 철저한 목적성을 유지한 채 전혀 다른 스타일을 시도할 거다. 상업영화는 철저한 상업영화를 할 거다. 그리고 내가 직접 각본·연출을 다하기보다 다른 감독들에게 시나리오를 제공한다거나 공동 제작에 참여한다거나 루트를 다양화할 계획이다.

-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나?

▲ 저예산 영화로는 종교를 다룬 ‘로마서 8장’이 있다. 내 전작들에서도 종교적 생채가 묻어났는데 보다 노골적인 기독교 영화다. 신앙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거다. 상업영화로는 시인 윤동주의 삶과 예술세계를 담은 ‘동주’를 준비 중이다. ‘동주’는 내가 제작을 맡고, 이준익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이제까지의 작업은 이 작품들을 하기 위한 실험이었던 것 같다.

 

-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지도 않았고(그는 한국외대 스페인어과 출신이다), 작품마다 이전의 영화문법과 다른 실험을 선보였다. 감독의 영역인 연출뿐만 아니라 출연, 각본, 제작, 배급에도 촉수를 내밀었다.

▲ 스무 살부터 영화를 시작했다. 중간에 영화가 엎어지는 경험도 하며 연출부 막내 생활만 10년을 했다. 서른한 살에야 상업영화에 ‘입봉’했다. 그 과정을 거치며 영화계의 건강성이나 공적인 부분에 관심이 높아졌다. 그런 이유로 현재 감독조합에서 표준계약서 작성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기도 하다. 한국영화의 다양성과 건강한 생태계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 나이 들어서 당당해지고 싶은 욕망에 이러고 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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