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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축구전문 디자이너 장부다가 그리는 '우리의 축구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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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축구전문 디자이너 장부다가 그리는 '우리의 축구미래'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5.03.02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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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축구디자인 스페셜리스트, 철학·이념·미래를 담다..."디자이너야말로 최고의 마케터"

[300자 Tip!] ‘축구전문 디자이너’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장부다(46).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사내 대장부다’에서 따온 본명이다. 그가 디자인한 축구 관련 저지, 머플러, 엠블럼, 포스터 등만 50개가 넘는다. 장 씨는 어떻게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이 직업을 갖게 됐을까. '붉은악마' 활동서부터 출발한 디자이너의 삶, 축구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 자신의 삶을 따르고 싶어하는 이를 향한 조언까지. 그의 속 깊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노민규 기자] 한국 축구대표팀 공식서포터스 '붉은악마'의 상징을 아는가.

치우천왕(蚩尤天王), 전쟁의 신이다. 환인이 다스리던 환국의 뒤를 잇는 환웅천왕이 건국한 배달국(倍達國)의 제14대 천왕이다. 존재 자체로 승리를 뜻하는데다 등에서 붉은 연기를 내뿜는 인물이라 붉은악마의 트레이드마크로 손색이 없다.

장 씨는 한국 축구의 번영을 바라는 의미로 국가를 수호하는 이 군신을 붉은악마에 덧입히기로 결정했다. 1999년 3월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친선경기 한국-브라질전에서 처음으로 이 깃발이 휘날렸다. 축구전문 디자이너의 탄생이었다.

▲ 장 씨가 디자인한 축구 관련 저지, 머플러, 엠블럼, 포스터 등만 50개가 넘는다. 붉은악마의 상징인 치우천왕 역시 그의 작품이다.

대전시티즌, 경남FC, 광주 FC, WK리그, K3리그, 박지성축구센터 등의 엠블럼, 1999년 대전 시티즌과 전남 드래곤즈, 2000, 2002, 2014년 붉은악마와 2006, 2014년 대한축구협회 공식 머플러, 대전 경남 수원 FC 등의 시즌 캠페인 등도 그의 작품이다.

◆ 축구 디자이너가 되려면, “정치경제학, 철학, 인문학 관심 가져라” 

“일단 축구를 잘 알야하겠죠? 외국의 유명한 클럽의 팬이 되는 것, 물론 좋죠. 하지만 K리그에도 한 팀에 정을 붙이고 경기장을 찾아가야 합니다. 특히 서포터로 가입했으면 해요. 걸개, 깃발 등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무궁무진하거든요.”

이름만 들어도 섹시하다. 융합이 대세인 시대, 축구 전문 디자이너라는 직업에서 풍기는 아우라는 젊은이들의 호기심을 잔뜩 자극한다. 안 그래도 장 씨의 이력을 보고 매료된 친구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시지를 통해 문의를 한다. 나도 당신의 길을 따르고 싶다며.

그는 “일러스트, 포토샵 잘하는 기능자가 되는 것은 부차적 문제다. 디자이너는 단순히 광고주가 시켜서 하는데 그치지 말고, 왜 이 이런 결과물을 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치경제학, 철학, 인문학 등에 고르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하나. “디자인 전공하는 친구들이 살기 바빠서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하고 싶은지를 까먹고 살아간다”며 “미술관. 음악회, 영화관람 등 문화 활동을 접는 경우가 태반인데 이를 꾸준히 해야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장 씨는 현재 스포츠마케팅 회사 선들의 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프리랜서로 활동할 당시 그가 축구 디자인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은 전체의 30% 남짓. 나머지는 일반 기업의 광고, 카탈로그, 북 디자인을 해주는 것으로 생활했다. ‘2호’ 공식 축구 디자이너가 없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 1999년 붉은악마 깃발에 치우천왕을 넣은 것을 시작으로 장 씨는 50개가 넘는 축구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다.

이토록 열악하지만 미래는 밝단다. 장 씨는 “축구산업은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지만 퇴보할 리는 없다고 확신한다”며 “콘텐츠 사업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가치가 올라가게 돼 있다. 사실 똘똘한 친구들이 몇 있지만 스스로를 축구 디자이너라고 칭하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 “디자이너는 최고의 마케터, 구단이여! 디자이너를 고용하라” 

“구단이 디자이너를 고용하면 좋죠. 힘들다면 최소한 디자인 회사와 연간 계약을 하는 움직임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지금같이 건 바이 건 계약으로는 장기적인 전략을 짤 수가 없어요. 이런 환경에서 먼 미래를 내다본, 책임 있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스포츠산업 종사자라면 귀를 쫑긋 세울만한 파격적인 제안이다. 그가 이런 말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브랜드 관리가 엉망이라는 것. 대다수 구단들은 엠블럼, 유니폼 제작을 마케팅 대행사에 맡긴다. ‘예쁘게’ 만들어주면 그만, 그걸로 끝이다.

장 씨는 “디자인은 구단이 가진 역량의 총량을 시각화하는 것임에도 아직도 곁가지로 생각하신다”며 “경영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브랜드 가치를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관리는커녕 오히려 망가져가는 경우가 있으니 철학도, 이념도 설 수 없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엠블럼 제작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좋은 디자이너는 시각적 요소는 물론이고 청각, 후각, 심리적 교감까지 담는다. 대전 엠블럼에는 백제의 금동용봉향로와 계백장군을 상징하는 장수를, 경남의 그것에는 무적함대 거북선의 이미지와 가야 금관, 파형동기 등을 담아 지역색을 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 장 씨는 “디자이너야말로 가장 예리한 마케터"라며 "구단에서 디자이너를 채용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초일류 기업들을 보면 중장기 계획을 짜놓고 10년 후, 100년 후를 그린다. 브랜드 관리를 통해 이미지를 구축한다. 잊을법하면 기업 로고에 손을 대 유지, 보수에 나선다. 한국의 프로스포츠 구단들은 그렇게 하고 있는지 생각해봄직한 화두다.

장 씨는 “디자이너야말로 가장 예리한 마케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열변을 이어가던 그는 갑자기 멋쩍은 듯 웃더니 한마디를 건넸다.

“스포츠산업 환경이 워낙 열악한 것, 잘 아시죠? 시민 구단의 경우에는 고용안정성도 보장 안되는 상황인데... 디자이너를 뽑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있네요. 하하.”

◆ 축구계를 향한 메시지, “서포터가 지역민들과 공감했으면” 

공만 차지 않았을 뿐. 그는 축구인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경력을 자랑한다.

1999년 ‘J리그의 경제학’이란 책을 접한 이후 디자인만이 아니라 축구 클럽 운영과 산업 전반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J리그 수장이던 가와부치 사부로 회장이 전한 메시지는 축구가 사회학적 의미를 지녔다는 것. 그는 2001년부터 서울 유나이티드의 창단에 앞장서 사무국장과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축구사랑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답게 구단과 서포터들을 향한 강력한 메시지도 날렸다.

▲ 장 씨는 "축구산업은 콘텐츠 사업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가치가 올라간다"며 밝은 미래를 확신했다.

장 씨는 “J리그의 경우 해안가에 자리한, 침체기에 빠졌던 공업도시가 가시마 앤틀러스라는 축구팀으로 인해 살아난 사례가 있다. 젊은이들이 떠났던 도시가 자랑거리가 된 축구단으로 인해 뭉쳤고 지역 사회가 활기를 띠더라”며 “축구팀은 단순한 스포츠팀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이어 “성적이 잘 나오고 슈퍼스타가 활약해 관중이 느는 것은 한 순간일 뿐이다. ‘우리 팀’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오래갈 수 있다”면서 “지역 이름을 달고 나서는 구단이라면, 그 고장을 사랑하는 서포터라면 슬픈 일이 생길 때 함께 아파할 수 있어야 한다. 설사 그것이 정치적으로 비치는 한이 있을지라도 지역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공감하는 활동을 펼쳤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취재 후기] 장 씨의 꿈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1세대 축구 디자이너로서 후배들이 맡을 일을 한 차원 높일 수 있게끔 기반을 다져놓겠다는 것.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제대로 공부를 한 우수 인력들이 축구계로 들어와 어느덧 과장급으로 자리잡았다”며 “축구산업이 업그레이드되는 과정에서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PS. 그가 생각하는 멋진 엠블럼은? 지역 특징과 탄생 배경, 개성이 뚜렷한 유벤투스, 샤흐타르, 아스널이었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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