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6:27 (목)
[챌린지 2015] (11) 16세 장타소녀 성은정, 미셸 위 향기가 난다
상태바
[챌린지 2015] (11) 16세 장타소녀 성은정, 미셸 위 향기가 난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3.03 10: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진출 골프소녀 '우물 안 개구리' 탈출기...태극마크 반납하고 세계 아마랭킹 300위권서 9위로 도약

[300자 Tip!] 올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한국계 선수들이 벌써 4연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 가운데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18·한국명 고보경)를 제외하고 모두 한국 국적의 선수들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리디아 고는 LPGA와 함께 유럽여자프로골프(LET)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이처럼 LPGA에서 '코리안 돌풍'이 거세게 불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각양각색의 선수들이 많다는 것도 큰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꾸준히 유망주들이 자라나고 있다. 새봄 고교 신입생이 된 성은정(16·광주 금호고)은 이미 세계 아마추어 여자랭킹 9위에 올라 있는 실력자로 벌써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용인=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LPGA에 출전한 역대 한국 선수들을 보면 다른 나라 선수들의 체격조건에 비해 작았다. 박세리나 한희원 등은 170cm 정도로 그리 열세는 아니었지만 장정(35)이나 김미현(38)은 '땅콩'이라는 말이 붙었을 정도로 체격이 작았다. 160cm가 되지 않는 작은 키에도 특유의 장타로 LPGA에서 선전하긴 했지만 지금 한국 선수들이 보여주는 활약과 비교하면 '평타' 수준이었다.

▲ 이제 고등학교에 올라간 성은정은 일찌감치 미국 무대로 진출해 세계 아마추어 랭킹 9위까지 뛰어올랐다. 특히 174cm의 장신에서 나오는 정확한 드라이브 샷은 280야드에 이를 정도로 강력해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성은정은 남다르다. 아직 16세인데도 벌써 174cm의 장신을 자랑한다. "성장판 검사를 해보니까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하네요. 더 커봤자 1~2cm 정도 더 클거래요"라고는 하지만 174cm만으로도 만만치 않은 조건이다.

183cm의 재미동포 미셸 위(26·한국명 위성미)만큼은 아니지만 장신에서 뿜어져나오는 평균 280야드의 장타는 마치 남자 선수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도 성은정의 드라이브샷은 매우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LPGA 무대에서도 지난해 드라이브샷 비거리 1위가 브리타니 린시컴(미국)이 기록한 271야드였기 때문에 성은정의 드라이브샷은 지금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성은정이 한국 골프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3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이었다. 당시 안양여중 2학년생이었던 성은정은 1라운드에서 버디 6개와 보기 1개를 묶어 5언더파 67타로 공동 선두에 올랐다. 당시 이를 두고 '제2의 김효주'가 나타났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분당 늘푸른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2011년 전국시도학생골프팀선수권과 KLPGA 회장배 여자아마골프선수권 등 4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유망주로 주목으 끌었다.

KLPGA 메이저 대회인 한국여자오픈에서도 맹활약하며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경험 부족 때문에 2라운드부터 부진해 대회를 이븐파 288타, 공동 24위로 마치긴 했지만 자신보다 네 살 많은 고진영(20·네프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후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성은정은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이 있음에도 과감히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그리고 미국행을 택했다. 하루라도 빨리 세계 아마추어랭킹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 성은정은 2013년 KLPGA 투어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에서 1라운드 5언더파로 공동 선두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생인 그가 프로 언니들을 제치고 선두로 올라선 것은 큰 화제였다. 2라운드에서 쿼드러플 보기를 기록하면서 순위가 떨어졌지만 이미 이때부터 유망주로 인정받았다.

◆ 아시안게임도 포기하고 택한 미국행, 세계와 더 가까워진 2014년

학창시절 농구 선수로 활약했던 아버지 성주일(181cm)씨와 어머니 소경순(173cm)씨의 피를 물려받아 어렸을 때부터 기골장대(?)했다. 머리카락도 짧아 남자로 오인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자 초등학생 1학년생 평균 키가 120cm인데 그때 135cm나 됐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163cm가 됐고 174cm까지 자랐다.

키만 큰 것이 아니라 평소 웨이트 트레이닝을 게을리 하지 않아 허리와 허벅지도 탄탄하다. 그런 조건에서 나오는 파워 넘치는 스윙은 마치 남자 선수를 보는 듯 하다.

"평소 공중화장실에 들어가면 아주머니들이 깜짝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런데 들어오면 안된다며 혼내시곤 했죠. 그때마다 저는 여자라는 것을 밝혀야 했고요. 어렸을 때는 잘 몰랐는데 중학생이 되면서 사춘기가 되어서 그런지 조금 불편했어요."

그러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한 골프는 이런 불편함도 잊게 만들었다. 평소 운동을 좋아했지만 부모님이 절대로 농구를 시키지 않았다고. 힘든 농구를 시키기보다 개인 종목을 시켜보겠다고 했던 것이 성은정 골프 인생의 시작이었다. 성은정도 골프가 싫지 않았다.

"처음에는 7번 아이언을 가지고 시작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골프는 채 하나로 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점차 골프채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라구요. 3, 4학년 때까지만 해도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점점 골프채가 많아지면서 흥미가 붙었어요."

또 특유의 승부욕도 그의 실력을 부채질했다.

"절대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거든요. 뭐든지 잘해야만 직성이 풀렸죠. 초등학교 운동회 때 달리기에서도 한번도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어요."

▲ 학창시절 농구 선수로 활약했던 부모님 영향을 받아 성은정 역시 174cm의 장신을 자랑한다. 평소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단련한 허리와 허벅지에서 나오는 파워풀 스윙은 마치 남자 선수를 보는 듯하다.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중학교 1학년생이던 2012년 강민구배 한국여자아마추어골프선수권에서 212타를 기록하며 3위에 올랐다. 당시 우승을 차지했던 선수가 바로 김효주(20·롯데)였다. 성은정은 이후 국가대표팀에도 포함되면서 더욱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은정은 지난해 돌연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조금이라도 일찍 미국에 진출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의지가 강했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내 꿈을 이루려면 1년이라도 더 앞당기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하셨던 것 같아요. 저 역시 미국에서 빨리 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아시안게임에 가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긴 하지만 제 미래를 위해서 미국 진출에 올인했어요."

◆ "렉시 톰슨·미셸 위와 비교" 미국서 이어진 극찬

"미국 진출 전만 하더라도 백몇위도 아니고 몇백위였어요. 제 생각으로는 300위권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세계 9위인 것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죠. 1년이라도 일찍 미국에 가기를 잘했던 것 같아요."

미국에 조기 진출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그에게 지난 1년은 성공적이었다. 한국이나 아시아권에서는 우승을 차지해도 그다지 많은 점수를 얻지 못하지만 미국에서는 조금만 성적이 나와도 점수가 '무더기'로 쌓였다.

성은정이 지난해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던 것은 7월 US 여자아마추어퍼블릭 링크스 준우승이었다. US 여자아마추어선수권에서도 8강에 올면서 미국여자골프계의 주목을 받았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아무도 저를 알아주지 않았어요. 호쾌한 장타가 나오고 성적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순위가 올라가니까 그때부터 많은 분들이 저를 알아봐주시기 시작했어요."

▲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성은정은 학교 운동회에서도 1등을 놓치지 않았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뛰어났다. 또 절대 지고는 못사는 승부욕의 소유자여서 골프 실력도 쑥쑥 자랐다.

그는 미국 현지에서 미셸 위와 렉시 톰슨(미국)과 종종 비유되곤 했다고 털어놨다. 톰슨은 지난해 평균 270야드의 드라이브샷 거리를 기록하며 LPGA 장타 순위 3위에 오른 선수다.

"톰슨이나 미셸 위와 비교되는 것은 제게 상당한 칭찬이었죠. 과분할 정도였어요. 특히 거리가 많이 나면서도 페어웨이 안착률이 좋아서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그래서 아마 톰슨과 미셸 위와 비교됐던 것 같아요. 지난해 대회를 치르면서 저보다 더 거리가 많이 나오는 선수를 보지 못헀어요."

성은정은 시즌이 끝난 뒤인 지난해 11월 필리핀에서 동계 훈련을 한 뒤 지난 1월 호주로 들어갔다. 호주 아마추어대회에 출전하면서 LPGA 투어인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픈에 출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오랜 해외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쳤던 탓인지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2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호주 아마추어선수권에서는 32강이 겨루는 1라운드에서 뼈아픈 패배를 기록했다. NSW 스트로크 플레이 앤 아마추어에서는 국가대표 임은빈(18·함평골프고)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출전을 노렸던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픈 예선전을 치렀지만 컨디션 난조 속에 이븐파 73타로 공동 9위에 그쳤다. 당시 커트라인이 70타였다.

"미국에서도 워싱턴주와 뉴욕을 다니면서 체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게다가 스트로크 플레이를 치르고 경기 전날 연습하는 것까지 합치면 대개 90홀 정도를 돌기 때문에 컨디션을 잘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 성은정은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이 있었지만 대표팀에서 나와 미국에 진출했다. 1년이라도 빨리 미국에서 뛰면서 아마추어 랭킹을 올리는 것이 낫다는 부모님의 뜻에 따랐다. 지난 한 해 성은정은 300위권에서 아마추어 랭킹 9위까지 뛰어올랐다.

◆ "함께 뛰었던 언니들 LPGA서 뛰는 모습 신기하면서도 자신감 얻어"

성은정은 올 시즌 준비를 하면서 스윙 훈련보다는 웨이트 트레이닝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스윙 훈련은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만 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에 세 시간 정도를 할애하고 있다.

꿈이 크다. LPGA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것이 최종 목표다. 아직 LPGA에도 들어가지 못한 16세 소녀에게 너무 큰 목표가 아닌가 싶다.

"꿈은 클수록 좋다잖아요. 아빠가 목표를 크게 잡아놓으면 조금 못하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성적을 낼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 열심히 하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성은정이 이처럼 꿈을 크게 가진 이유는 역시 자신감이다. 함께 라운딩을 펼쳤던 언니들이 LPGA 무대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모습은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기에 충분하다.

"(김)세영이 언니는 워낙 어린 선수들에게 친절하고 잘 대해주고요. 효주 언니나 다른 선배 선수들도 LPGA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어서 제게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저도 열심히 하면 잘할 자신이 있어요."

▲ 성은정은 꿈이 크다. 올해는 US여자오픈 예선을 통과해 출전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그에게 더 큰 꿈은 LPGA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것이다. 꿈은 클 수록 좋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향후 2년내 프로 전향을 꿈꾼다. 이를 위해 올해는 세계랭킹을 3위까지 끌어올리고 US 여자오픈에 출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300위에서 9위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쉬웠지만 더 높은 순위로 올라가는 것은 훨씬 어려워요. 올해는 세계 3위까지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어요. 또 아마추어 대회 우승과 함께 US여자오픈에도 출전하고 싶어요. 지난해는 예선전에서 7위에 그쳐서 나가지 못했는데 올해는 꼭 본선에 나가고 싶어요. 아마추어 신분으로 프로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도 해보고 싶어요."

[취재 후기] 성은정은 2013년 한국여자오픈 2라운드 9번홀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1라운드에서 선두를 달리고도 결정적으로 무너졌던 것이 바로 2라운드 9번홀이었다. 당시 성은정은 파4 홀에서 8타를 치며 쿼드러플 보기를 범하고 말았다. 2라운드에서 버디 3개를 기록하긴 했지만 단 한 홀 실수에 타수를 까먹고 말았다. 이에 대해 "당시 쿼드러플 보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 같다. 자만하지 말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성은정은 골프에 모든 것을 바치고 있다. 필리핀, 호주에 다녀오느라 중학교 졸업식도 참석하지 못했고 계속된 훈련 일정 때문에 고등학교 입학식도 건너뛰었다. 평범한 여학생의 삶은 없는 셈이다. 그래도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강양택 코치가 이끄는 창원 LG의 김시래와 김종규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수줍은 사춘기 여학생의 면모도 느껴졌다.

tankpark@sportsq.co.kr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관련기사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