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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12) 용인대 여검객 삼총사의 꿈 '굳은살이 자랑스런 그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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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12) 용인대 여검객 삼총사의 꿈 '굳은살이 자랑스런 그날을 위해'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3.06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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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차민지·류연서·원보경, 세계선수권서 정상 일본에 도전장..."냉대받는 여자검도 활성화 위해"

[300자 Tip!] "검도? 그거 일본 것 아냐?" "검도는 올림픽, 아시안게임에도 없잖아. 그거 왜 하는데?" 한국에 있는 여러 스포츠 가운데 검도만큼 편견이 심한 종목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 검도는 일본과 확실히 다르다. 조선세법이라는 고유의 검술이 존재했다. 또 대한검도회는 단체의 영문 표기를 'Korea Kumdo Association'으로 함으로써 일본어 '겐도'가 아닌 우리말 '검도'로 그 정체성을 밝히고 있다. 스포츠로서 검도의 종주국은 일본이라지만 한국 역시 일본에 지지 않겠다는 자존심이 강하다. 여기 한국 검도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지켜가는 여검객들이 있다. 한국에서 여자검도의 선수층은 그렇게 두꺼운 편이 아니다. 남자에 비해 척박한 여자검도지만 일본에는 절대로 밀리지 않겠다는 강인한 정신력이 있다.

▲ 용인대 여검객 차민지(왼쪽부터), 류연서, 원보경은 한국 여자검도의 강자다. 이들은 한국 대표팀에도 포함돼 오는 5월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용인대와 충북 음성군 수련원을 오가는 힘든 일정이지만 '타도 일본'을 외친다.

[용인=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검도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국제적인 종합 스포츠 대회의 정식 종목이 아니어서 활동에 한계가 있다. 그래도 세계검도선수권대회가 있고 소년체전이나 전국체전 종목이기 때문에 엘리트 선수는 존재한다.

초·중·고교에서 검도를 수련한 뒤 전국대회나 전국체전을 통해 좋은 성적을 올리면 용인대나 성균관대, 경북대, 대구대, 대전대, 목표대, 초당대, 제주대 등 검도팀이 있는 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다. 이후 시청팀, 지방자치체팀 등에 들어가 지역을 대표하고 나아가서 세계선수권까지 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여자부만큼은 예외다. 일단 선수층이 얇다보니 각종 대회에서도 초·중·고등부가 없다. 지난달 24, 25일 벌어졌던 SBS배 전국검도왕대회만 보더라도 남자부는 초등, 중학, 고등, 대학, 일반부로 치러지지만 여자는 고등학생 이상, 초단 이상이면 여자부 하나로 모두 묶였다.

여자 선수층이 이처럼 얇은 것은 한국의 검도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소년체전과 전국체전의 정식 종목에서 빠져있다. 소년체전에는 중학부, 전국체전에는 고등부, 대학부, 일반부가 펼쳐지지만 모두 남자선수만 출전한다. 여자선수는 메달이나 점수 집계에서 빠지는 동호인 경기 또는 시범종목에만 나설 수 있다. 그러다보니 여자선수가 실업팀으로 가는 것도 제한적이다. 이는 선수층이 얇아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 류연서(왼쪽부터), 차민지, 원보경은 세계선수권 여자 단체전에서 우승을 꿈꾼다. 여태까지 세계선수권 여자 단체전에서 한국 검도가 우승을 차지한 적이 없다. 이번에 일본을 제치고 당당하게 금메달을 따낼 목표를 갖고 있다.

그래도 여검객들은 열심히 구슬땀을 흘린다. 언젠가는 자신들을 알아줄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여성 검도인도 대우받을 수 있는 날이 더욱 앞당겨질 것이라며 구슬땀을 흘려가며 죽도를 휘두르고 친다.

지난달 전국검도왕대회 여자부 4강에는 용인대에 재학하고 있는 3명의 선수가 포함됐다. 우승은 허윤영(20·경북대)이 차지했지만 류연서(22), 차민지(22)와 원보경(21) 등이 4강에 들었다.

이들은 오는 5월 일본 도쿄 부도칸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도 출전한다. 여자대표팀 8명 가운데 용인대 선수가 3명을 차지하고 있으니 적은 숫자가 아니다. 검도인으로서 미래가 걱정되지만 자신뿐 아니라 앞으로 후배들을 위해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싶다는 것이 이들의 올해 소망이다.

◆ 세계선수권 준비 학교-연수원 이중생활 "덕분에 많이 늘었어요"

차민지와 류연서, 원보경은 세계검도선수권대회 준비에 여념이 없다. 학교에서 훈련도 해야 하고 대표팀 소집에 응하느라 충북 음성군에 있는 연수원에도 다녀와야 한다. 매주 사나흘 열리는 대표팀 훈련을 받고 다시 용인대에 오는 이중생활 때문에 하루가 너무나 짧다. 그래도 이들은 대표팀 훈련과 학교에서 받는 훈련 때문에 최근 검도 실력이 많이 는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용인대 여자검도부 주장 차민지는 "세계선수권 준비 때문에 훈련량이 배로 늘었다. 열심히 훈련하니까 실력도 크게 발전한 것 같다"며 "그래도 검도왕대회에서 허윤영, 한 선수에게 진 것이 너무나 아깝다"고 말했다.

▲ 한국 여자검도대표팀은 모두 8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용인대 재학생이 이들 3명. 용인대를 졸업한 선배 선수까지 합치면 용인대 출신이 4명이나 된다. 그만큼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대표팀 분위기가 좋아 내심 단체전 우승을 자신한다.

차민지와 동년배인 류연서도 "결승에서 만나자고 민지와 얘기했는데 허윤영과 결승에서 붙어 아쉬웠다"며 "아차하는 순간 공격을 허용했다. 한 포인트 차로 져서 더 아까웠다. 더 수련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검도왕 대회에서 개인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아쉬움만 생각할 겨를이 없다. 당장 세계선수권이 있다. 이들의 목표는 단체전 우승과 개인전 입상이다.

여태껏 한국 여자검도는 세계선수권 단체전 우승을 차지해보지 못했다. 2003년 대회부터 4회 연속 결승에서 일본과 맞붙었지만 모두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

남자검도가 2006년 대회에서 단체전 정상에 올랐듯 이번에는 여자부가 대이변을 일으킬 차례라고 입을 모은다.

차민지는 "우리나 일본이나 기술에서는 막상막하다. 대학 교류전을 통해 일본 선수들과 대련해보면 우리는 공격을 활발하게 하는 스타일이고 일본은 스피드를 중요하게 여긴다"며 "한국 선수들은 다양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 공격력이 좋지만 일본은 상당히 교과서적이다. 자신들이 구축해놓은 검도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류연서는 "아무래도 이번 대회는 용인대 선수가 많다. 8명 가운데 우리 셋이 용인대 재학 중이고 선배 언니까지 4명이 용인대 출신"이라며 "일본이 가장 강력하지만 미국이나 브라질, 이탈리아도 만만찮은 전력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이들을 어떻게 넘느냐가 관건"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 차민지는 여자 검도에 대한 국내 환경이 너무 척박하다고 말한다. 전국체전에서 여자 검도는 시범종목이어서 지원도 적고 실업팀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차민지는 세계선수권 단체전 우승을 통해 여자검도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기를 바랐다.

원보경은 "훈련원에 왔다갔다 하느라 몸이 천근만근이지만 그래도 대표팀 분위기는 최고조"라며 "사실 실력도 있지만 경기 당일 운과 대표팀 분위기에 따라 성적이 좌우된다. 단체전 우승과 함께 개인전 입상이 여자 대표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들이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며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바로 여자검도의 활성화라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차민지는 "세계선수권이 열려 입상했다는 뉴스는 잠깐 나오거나 아예 묻히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에서 열리는 검도대회도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 TV 중계도 드물다. 검도가 조금 더 대중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 한국에서 여자검도선수로 살아가기 "고단하지만 나의 길"

이들도 꾸미고 싶어하고 예뻐보이고 싶은 여자였다. 10년 넘게 죽도를 휘두르느라 손바닥과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굳은살이 박혔다.

원보경은 "사실 여자 손이냐고 놀림을 받을 때는 많이 속상하다. 나도 예뻐보이고 싶은데"라고 말한다. 차민지도 "아무래도 죽도를 휘두르는 운동을 하다보니 팔뚝이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역도하느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류연서도 "핸드크림을 발라도 그 때뿐이다. 좀 보드라운 손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남자와 만남도 마찬가지다. 원보경은 "소개팅을 나갔을 때 검도한다고 하면 '막대기 들고 있으면 때리는 것 아니냐'는 말도 들어봤다. 검도가 드센 운동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지 편견이 많다"고 밝혔다.

▲ 류연서는 검도인이기도 하지만 예뻐보이고 싶어하는 여자이기도 하다. 죽도를 하루종일 내리치느라 손가락에는 굳은살이 박히지만 그래도 한국 여자검도의 발전을 위해 구슬땀을 흘린다.

그러나 이것은 솔직히 아무 것도 아니다. 여자 검도에 대한 지원이 적은 것이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차민지는 "여성 스포츠에 대한 대우가 남자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어느 종목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검도는 특히 더하다"며 "전국체전에서 남자는 정식종목이지만 여자는 시범종목이다. 그러다보니 지원이 안나오고 실업팀에 들어가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원보경은 졸업한 뒤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그는 "남자 선수들은 경찰청장배에서 입상하면 특채의 기회가 있지만 여자 선수들은 이 대회에 출전조차 못한다"며 "여자 검도선수가 경찰로 일하려면 따로 경찰공무원 시험을 봐야 한다. 이런 점은 좀 개선이 됐으면 좋겠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들에게 검도는 자신만의 길이다. 차민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검도를 시작한 뒤 고등학교(김포제일고)를 졸업할 때까지 팀에 여자선수라고는 나 혼자였다. 10년 동안 남자선수와 대련했다"며 "아킬레스건도 다치고 허리도 좋지 않지만 그래도 검도는 내가 해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남양주시청 원종경과 남매 선수인 원보경은 새벽 체력훈련, 오전오후 기술훈련, 웨이트 트레이닝, 야간 개인훈련까지 빡빡한 일정을 보내지만 검도선수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대학 졸업후 진로 때문에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계획이다. 여자 검도인도 특채로 경찰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있기를 희망했다.

원보경도 "오빠(남양주시청 원종경)와 함께 검도를 시작해 남매 선수로 뛰고 있다. 처음에는 호신술로 배웠던 운동이었지만 지금은 검도선수가 내 천직인 것 같다"며 "손목, 발목 부상도 많고 무릎도 좋지 않지만 그래도 검도는 검도만의 매력이 있다. 예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검도가 진정한 무도인 것 같다"고 밝혔다.

원보경도 "새벽에는 체력 훈련하고 오전 오후에 기술 훈련, 웨이트 트레이닝, 야간 개인 훈련까지 하루가 빡빡하지만 그래도 검도선수로서 자부심을 느낀다"며 "언니들과 함께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한국 여자검도의 위상을 떨치고 싶다. 그러다보면 여자 검도를 보는 주위의 시선이나 지원도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소망을 전했다.

[취재 후기] 일본에서 비롯된 검도라는 스포츠가 왜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일까. 검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일본이 유도나 다른 무도 종목이 너무 지나치게 스포츠처럼 되면서 본래의 색깔을 잃었다고 생각한 일본 검도계의 입김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일본의 속내가 숨겨져 있다고 주장한다. 차민지와 류연서, 원보경도 "일본 선수들과 경기하면 애매한 판정에 지는 경우가 많다. 그 판정은 모두 일본에 유리하게 돌아간다"고 토로할 정도다. 그럼에도 한국 선수들은 일본의 텃세에 맞서 우리만의 색깔을 가져가면서 당당하게 맞서고 있다. 한국 검도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여자 선수들에 대한 지원도 조금 더 많아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실업팀 입단도 힘들고 남자 선수가 받는 대우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재고해야 할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 시작점은 전국체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선수층도 두꺼워지고 나아가 한국 검도의 발전과 위상도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 용인대 여검객 삼총사 류연서(왼쪽부터), 차민지, 원보경은 지난달 25일 서울잠실학생체육관에서 끝난 SBS 검도왕 대회 여자부에서 나란히 4강에 들었다. 아쉽게 개인전 우승까지 차지하진 못했지만 한국 여자검도의 최고수로 통한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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