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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신치용은 어떻게 삼성화재를 20년 동안 춤추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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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신치용은 어떻게 삼성화재를 20년 동안 춤추게 했을까?
  • 최문열
  • 승인 2015.03.09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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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최문열 대표이사] 프로 배구판은 삼성화재 천하다. 그것은 몇 가지 기록만 훑어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삼성화재는 지난 3일 NH농협 2014-2015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6라운드 방문 경기에서 대한항공을 3-0으로 꺾고 정규리그에서 우승했다. 프로배구 출범 첫해인 2005년부터 올시즌까지 11시즌 동안 단 한 시즌도 거르지 않고 챔피언결정전에 올랐고 통산 9회 우승에 도전한다. 더불어 정규리그 우승도 통산 7회 기록을 갖고 있으며 2011~2012시즌부터 올시즌까지 정규리그 4연패를 이뤄내며 무한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때 “남자배구는 삼성화재가 다 말아먹고 있어 재미가 반감된다”거나 “삼성화재 때문에 타 구단 감독이 파리 목숨”이라는 등의 볼멘소리도 터져 나왔다. 하지만 삼성화재 독주체제가 오랜 세월 지속돼 이제는 그 시선이 바뀌었다. 일방 독주에 대한 냉소와 비판에서 이제는 감탄과 경외감으로 전환됐다. 그 밑바닥에는 “삼성화재가 창단 후 강산이 두 번 바뀔만한 20년 세월 동안 군림하는 비결은 뭘까?”하는 물음표가 존재한다.

▲ 지난 3일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삼성화재 선수들이 어깨동무하고 춤을 추고 있다. 올시즌 전력 공백이 심해 그 우승이 더욱 값지게 다가오는 모습이다. [사진=스포츠Q DB]

사실 삼성화재는 프로배구가 출범하고 드래프트 제도가 정착되기 이전 우수 선수를 싹쓸이해 그 덕에 우승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오랫동안 정상을 지키면서 신인 선수 지명에서 우수 선수를 수급하는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화재는 시즌 초, 중반 기우뚱기우뚱 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외국인 선수는 펄펄 날고 국내 선수들의 톱니바퀴 조직력이 살아나면서 우승을 향한 고공비행을 거듭했다. 올시즌 정규리그에서도 6패를 당하면서 페이스를 찾아갔다.

그렇다면 삼성화재가 오랜 세월 이토록 잘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런 유형의 기사를 쓸 때에는 전형적인 패턴이 있다. 3박자 논리다. 구단의 빵빵한 지원,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과 용병술 그리고 선수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분발 그리고 결집력 등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빠지면 정상에 오르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보니 우승팀 원동력에 대한 분석 기사를 작성할 경우 그 요인을 구색 맞추듯 꾹꾹 집어넣기 마련이다. 우승팀 구단에서도 행여 누가 빠져 섭섭할세라 갖가지 요소를 찌개에 양념 넣듯 두루두루 기자들에게 설명하기 일쑤다. 한데 이런 기사는 마니아 팬들에겐 너무 형식적이고 두루뭉술해 왠지 밋밋하기 짝이 없다. 한마디로 식상해 톡 쏘는 맛이 없는 까닭이다.

사실 삼성화재의 현재 전력과 전략, 전술적인 차원의 예리한 분석은 현직 기자들의 몫이다. 여기서는 1995년 창단된 삼성화재의 초대 감독을 맡고 21년째 지휘봉을 잡고 있는 신치용 감독(60)의 아주 특별한 리더십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구단이 시종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도, 선수들이 제 몫 이상의 선전을 하는 것도, 그들을 춤추게 한 신치용이라는 감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기에 그 무엇보다 앞자리에 놓여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 신치용 감독이 정규리그 우승 뒤 외국인 선수와 레오와 기쁨의 포옹을 하고 있다. 신치용 감독은 레오와의 믿음을 바탕으로 한 소통이 우승에 큰 보탬이 됐다고 말했다. [사진=스포츠Q DB]

#1 현직 지도자의 눈으로 본 신치용의 강점

얼마 전 프로구단에서 지도자로 활약 중인 배구인과 만나 담소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나왔다. 신치용 감독이 잘 나가는 이유에 대한 것이었다. 그 배구인은 소속 선수에 대한 신치용 감독 특유의 친화력을 거론했다.

한마디로 끈끈한 정을 기반으로 한 소통 능력이다. 선수가 고민이 있어 괴로워할 때면 감독이 몸소 나서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감독은 가능하면 선수의 고민을 해결해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이처럼 감독과 선수 사이에 오가는 쌍방향의 끈끈한 스킨십이 신뢰로 이어지고 위기 시 팀의 결속력으로 발현된다는 설명이다.

#2 과거 기자의 눈으로 본 신치용의 장점

그 배구인 말을 들으면서 과거 신치용 감독이 한 말이 떠올랐다. 지금으로부터 13~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도 신치용 감독은 신진식(40·삼성화재 코치) 김세진(41·OK 저축은행 감독) 좌우 쌍포를 앞세워 승승장구하던 시절이었다.

신치용 감독과 각별한 후배 배구인 두어명 그리고 기자들과 함께 술을 마시던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신 감독은 취중진담처럼 자신의 지도철학을 말한 적이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감독으로서 무엇이든 다 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신 감독은 술도 한 잔 걸친 데다 남자끼리 있는 자리여서 상당히 자극적인 언어로 소신을 풀어놓았는데 그 말이 참으로 그럴싸해 뇌리에 각인돼 버렸다.

당시 신치용 감독의 생각은 그 뒤에 나온 ‘서번트 리더십(servant-leadership)’, 즉 선수를 품어주고 말을 들어주는 섬김의 리더십과 일맥상통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 신치용 감독은 코트에서 선수들을 진두지휘할 때 크게 흥분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표정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 감독으로 알려졌다. [사진=스포츠Q DB]

#3 대한민국 사회의 눈으로 본 신치용의 차별점

네덜란드 사회학자 거트 홉스테드는 ‘세계의 문화와 조직’에서 개인주의 사회와 집단주의 사회에서의 경영 기술과 훈련 프로그램은 다르다고 말한다. 대부분 기법들이 개인주의 사회에서 개발된 것이어서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맞지 않다는 것. 대한민국은 서구 문화의 영향으로 개인주의화되고 있긴 하나 여전히 정과 의리의 집단주의 문화권에 속한다.

홉스테드는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한 쪽의 충성에 대한 교환 조건으로서 다른 쪽의 보호 의무를 다하는 가족관계를 닮았다고 적고 있다. 조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어릴 적부터 일반인보다 더 복종적으로 훈련받아온 스포츠선수의 경우 따스한 정을 주고 튼실한 보호막이 되어 주면 그 대상에 충성을 다한다. 신치용 감독의 살뜰한 정과 보살핌을 기반으로 한 서번트 리더십이 빛을 발하는 이유는 여기 있지 않을까.

끝으로 신치용 감독이 정을 바탕으로 한 스킨십에 능하다고 정에 이리저리 치우치는 인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절대 그렇지 않다. 외모에서 풍기듯 그는 누구보다 냉정하며 단호하다. 쉽게 흥분하지도 않는다. 또 두뇌 회전이 빠르고 상당히 계산적이며 논리적이다. 엄살도 심하지만 신치용 감독만의 촌철살인 어록은 기자들 사이에서 늘 회자되곤 한다. 신 감독과 막역한 후배 배구인은 그 속을 알 수 없다며 ‘크렘린’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는 때와 장소에 따라 정과 논리, 그리고 냉정과 열정의 경계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는 카멜레온 같은 승부사다. 소속 선수는 물론 주변인들에게도 그렇다. 정으로 심장을 데우고 이성과 논리로 뇌를 자극하며 하나로 묶으려고 한다. 그것이 편 가르기 좋아하고 말 많은(?) 배구판에서도 오래도록 장수하는 비결은 아닐는지. 주어진 상황과 여건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변신하는 카멜레온 승부사, 실로 대단하지 않는가?

[편집자 주] 필자는 1994년부터 스포츠서울 배구기자로 활약하며 신영철의 삼성화재 플레잉코치 이적, 김세진 김상우의 삼성화재 입단, 신진식의 삼성화재 행 확정, 프로배구 출범 등 다수의 단독과 특종 기사를 썼으며 실업배구연맹과 대한배구협회 홍보이사로 활동한 바 있다. 현재는 스포츠Q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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