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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의 해태를 잡을 기회를 날려버린 순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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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의 해태를 잡을 기회를 날려버린 순진함
  • 박용진 편집위원
  • 승인 2014.03.19 1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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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했던 송영운, "제 발에 공 맞았는데요"

[스포츠Q 박용진 편집위원] 때는 1985년 8월 20일. 잠실에서 열린 후기리그 MBC 청룡 대 해태 타이거즈의 6차전 야간경기 때 있었던 일이다. 청룡은 고 김동엽 감독, 해태는 김응룡 감독이 맡고 있었다. 필자는 당시 MBC 코치였다.

관중은 6823명이었으며 11회 연장전 끝에 2-2 무승부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경기였다. 청룡은 신인 선발투수 정삼흠이 11회 완투했고 해태는 선발 강만식이 5회 2-0으로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고 6회부터 신인 선동열에게 마운드를 물려주고 내려갔다.

선동열의 그때까지 기록은 8전 5승3패. 프로에서 첫 등판은 7월 2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과의 후기 1차전 경기였다. 메이저리그 진출 꿈에 부풀어 있었던 그는 병역 문제와 호남팬들의 성화로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 MBC 청룡과 해태 타이거즈의 경기 모습. 송영운의 순진한 고백으로 경기가 무승부로 끝이 났다.

후기리그부터 해태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선 선동열의 85년 종합 성적은 7승4패8세이브, 평균자책점 1.70이었다.

그 당시에는 전·후기 리그 제도가 있었다. 전기 우승팀과 후기 우승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 제도였다.

그날 참 엉뚱한 일이 있었다. 9회말 2사 3루. MBC 청룡의 송영운이 타석에 섰다. 선동열의 공은 총알같이 빨라 타자들이 칠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선동열의 슬라이더가 타자의(좌타자) 왼발 스파이크의 엄지 쪽을 살짝 스치고 백스톱(뒷그물)으로 빠졌다. 3루 주자는 만세를 부르며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청룡의 승리로 경기가 끝나는 듯했다..

야간경기인데다 슬라이더가 빨라서 주심도, 포수도 그 누구도 스파이크에 스친 줄은 몰랐다. 그러나 송영운이 주심에게 “공이 스파이크에 스쳤다”고 자백하는 바람에 득점은 무효가 됐다. 이를 들은 주심은 덕아웃으로 들어간 선수를 불러내 3루로 원위치시켰다.

타자는 몸에 맞는 볼로 1루에 나갔지만 다음 타자가 선동열의 호투에 막혀서 득점에 실패했다. 결국 연장전에 돌입했으나 11회 무승부 경기가 되었다.

MBC청룡은 다 이긴 경기를 놓쳐서 아쉬운 한판의 경기로 기록에 남게 되었다. MBC청룡 벤치에서는 이리저리 펄펄 뛰고 난리가 났다.

더욱이 다혈질 성격인 김동엽 감독은 화가 나서 야단법석이었고 선수들도 바보같이 왜 그랬냐며 아우성이었다. 그래봤자 지나간 버스였다.

송영운은 경기가 끝나고도 계속 눈을 깜빡거리며 ‘내가 뭘 잘못 했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경기 후 목욕탕에 가서도 필자에게 "코치님 제가 뭘 잘못 했습니까?"하고 물었다. 달리 대답할게 없어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라커룸이 없었기 때문에 경기 후 경기고등학교 건너편에 있는 대주사우나(지금은 없어졌다.)에 가서 목욕을 하고 오리탕 한 그릇을 먹고 집으로 갔다. 다음날 다시 사우나로 가 유니폼을 갈아입고 잠실야구장에 나갔다.

야구는 속이는 트릭도 필요한 경기이다. 물론 정직한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었으면 승리할 경기를 순진하고 정직한 고백(?)으로 날려버리고 말았다. 정직한 것인지, 바보같은 짓인지.

송영운의 고백으로 정삼흠의 호투도 빛이 바랬다. 이길 경기를 못 잡은 청룡은 다음날 경기에서도 10회 연장전 끝에 해태에 3-2로 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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