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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팀 일원이고픈 외국인 선수, 현실은 그냥 '용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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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팀 일원이고픈 외국인 선수, 현실은 그냥 '용병'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3.16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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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외국인 선수 제도 변경으로 재계약 불가…V리그도 트라이아웃 도입으로 현재 선수 대거 퇴출

[스포츠Q 박상현 기자]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외국인 선수라는 존재는 매우 특별하다. 우수한 기량 때문에 적지 않은 금액을 받는다. 이로 인해 외국인 선수는 팀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한다. 외국인 선수의 전력 비중이 팀의 절반 가까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외국인 선수 기량과 활약에 팀 성적이 좌우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외국인 선수는 흥행과 국내 선수와 형평성이라는 문제와도 결부된다. 외인 선수의 팀내 비중이 워낙 높다보니 국내 선수는 그만큼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외국인 선수뿐 아니라 귀화 선수가 들어올 때도 대학 등에서 반발이 적지 않았다. 국내 선수를 위해 거꾸로 외국인 선수의 출전 기회를 제한해보지만 이 경우 경기 수준이 떨어져 흥행에 문제가 생긴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때문에 프로스포츠 단체들은 외국인 선수에 대한 규정과 제도를 종종 변경한다. 문제는 제도 변경이 이따금 국내 선수와 외국인 선수의 차별을 불러온다는 점이다. 외국인 선수가 높은 연봉을 받지만 대우에 있어서는 국내 선수보다 낫다고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프로농구는 외국인 선수 제도 변경을 하면서 현재 뛰고 있는 선수들과 재계약을 불가능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몇 시즌 동안 한 팀에서 호흡을 맞춰왔던 선수들과 작별하게 됐다.

▲ 인천 전자랜드의 외국인 주장 리카르도 포웰이 지난 13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SK와 2014~2015 KCC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공격을 성공시킨 뒤 포효하고 있다. 포웰은 KBL의 외국인 선수 제도 변경으로 인해 올 시즌을 끝으로 전자랜드를 떠난다. [사진=스포츠Q DB]

◆ 두 시즌 연속 주장을 맡았던 선수와 작별

인천 전자랜드에서 네 시즌을 뛰었고 이 가운데 세 시즌을 현재 유도훈 감독과 함께 했던 리카르도 포웰은 이번 시즌이 끝난 뒤 팀을 떠나야 한다.

포웰은 전자랜드의 '캡틴'이다. 2013~2014 시즌부터 유도훈 감독으로부터 주장으로 선임돼 선수들을 이끌고 있다. 처음 유 감독이 포웰에게 주장을 맡긴 것은 자신의 기량을 앞세운 개인 위주의 플레이 성향을 고쳐보기 위함이었다. 또 너무 승부욕이 강해 종종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모습도 있었다. 2008~2009 시즌 전자랜드에서 포웰과 함께 했던 최희암 감독도 고개를 흔들며 재계약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당초 유 감독도 포웰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지만 주장을 맡긴 뒤에는 승리를 향해 함께 가는 최고의 파트너가 됐다. 유 감독은 "몸이 정상이 아닌데도 반드시 경기에서 이겨야 한다며 승부욕을 불태우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특히 주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어린 선수들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고 먼저 코트에 나와서 훈련하는 솔선수범하는 자세도 뛰어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전자랜드 선수들도 포웰을 '포 주장'이라며 믿고 따른다. 특히 이번 시즌 1라운드 3순위로 전자랜드의 유니폼을 입은 신인 정효근과 함께 훈련하며 여러가지를 조언하는 자상한 면모까지 보여준다. 정효근은 "포웰과 함께 훈련하면서 농구의 참맛을 알았다"고 말할 정도다.

▲ 서울 SK 외국인 선수 애런 헤인즈가 지난 13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전자랜드와 2014~2015 KCC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부상으로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헤인즈는 6강 플레이오프 3연패 탈락으로 쓸쓸하게 팀을 떠나게 됐다. 헤인즈가 SK의 유니폼을 다시 입을 가능성은 트라이아웃에서 SK 지명을 받는 것뿐이다. [사진=스포츠Q DB]

하지만 포웰이 전자랜드에서 다음 시즌도 뛸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음 시즌부터 외국인 선수 2인 동시 출전 제도를 도입함에 따라 10개 구단 외국인 선수들은 현재 소속팀과 재계약할 수 없다. 다시 트라이아웃과 드래프트를 거쳐야 한다. 포웰이 다시 드래프트에 나온다고 해서 전자랜드 유니폼을 입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신장 제한까지 있어 KBL에서 뛸 가능성조차 희박하다.

이에 대해 포웰은 "한 팀에서 3년을 뛰며 소속감을 가졌는데 규정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는 것은 문제 아니냐"며 "그동안 팀에서 이뤄놓은 것이 있는데 다른 팀으로 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현재 KBL에서 뛰고 있는 다른 외국인 선수들이 트라이아웃부터 시작해야 하는 현재 규정에 순응하고 처음부터 시작하려고 할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또 포웰은 지난 13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벌어진 서울 SK와 2014~2015 KCC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3차전이 끝난 뒤에도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팀이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기쁨을 뒤로 한채 "전자랜드에서 오랫동안 뛰었다. 경기 후 구단주가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끌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며 "차바위와 김지완 등을 신인 때부터 함께 하면서 그들이 성장하는 것을 봐왔다. 그런데 KBL 제도가 모든 것을 망쳐놨다. 나 역시 전자랜드 외 다른 팀에서 뛰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안양 KGC인삼공사의 리온 윌리엄스(앞)과 울산 모비스의 리카르도 라틀리프(뒤) 역시 이번 시즌을 끝으로 모두 팀을 떠나야 한다. 라틀리프 역시 모비스에서 세 시즌 연속 뛰었지만 예외는 없다. [사진=스포츠Q DB]

이런 심정은 SK에서 세 시즌을 뛰었던 헤인즈, 심스도 마찬가지다. 헤인즈 역시 SK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팬들도 그에게 '하인수'라는 한국 이름까지 만들어줄 정도로 친화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팀이 6강 플레이오프에서 전자랜드에 3연패 당해 시즌을 마감, 더 이상 뛸 수 없게 됐다. 그는 1차전 부상 뒤 2, 3차전을 관중석에서 지켜보며 쓸쓸하게 SK와 인연을 마감하게 됐다. 심스 역시 헤인즈가 없는 가운데 분전했지만 역시 SK에서 마지막 경기를 씁쓸하게 끝냈다.

울산 모비스의 리카르도 라틀리프 역시 유재학 감독의 훈련을 받으며 특화된 선수다. 다른 팀에 가서도 모비스에서 했던 것만큼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창원 LG에서 두 시즌 연속 데이본 제퍼슨과 크리스 메시도 작별해야 한다.

감독 역시 처음부터 조직력을 맞춰야 한다. 새로운 외국인 선수와 함께 하려면 그만큼 다시 조직력과 전술을 만들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량이 미치지 못해 다른 선수와 계약하는 팀이면 모르겠지만 기량에 만족하고 조직력에 완전히 녹아들어 두세 시즌 같이 뛰었던 선수와 강제로 헤어지도록 하는 규정이 과연 얼마나 한국 농구에 도움이 될지는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 V리그도 규정 개편, 트라이아웃 제도 도입으로 이별 준비

V리그도 마찬가지다. 한국배구연맹(KOVO)이 외국인 선수 선발과 계약 규정을 바꾸면서 현재 뛰고 있는 선수들과 이별해야 한다.

그동안 V리그는 각 구단이 자유계약 형식으로 외국인 선수를 뽑아왔지만 KOVO가 지난달 13일 이사회를 통해 트라이아웃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고 여자부부터 시행하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구단의 지나친 외국인 선수 영입 경쟁을 막고 국내 선수들의 기량 발전을 돕겠다는 취지지만 결과적으로 기존 외국인 선수를 단순히 제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퇴출시키게 됐다.

▲ 성남 한국도로공사의 외국인 선수 니콜이 지난 7일 NH농협 2014~2015 V리그 여자부 우승을 확정지은 뒤 우승 트로피를 받고 있다. 하지만 KOVO의 외국인 선수 규정 변경으로 니콜의 환한 미소는 다음 시즌부터 볼 수 없게 됐다. [사진=KOVO 제공]

트라이아웃도 아무나 참가할 수 없다. 다음달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리는 트라이아웃에는 미국 국적의 만 21~25세 대학졸업 예정자와 해외 리그 경력 3년 이하의 공격수만 참가할 수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정규리그 1위 성남 한국도로공사에서 세 시즌을 뛰었던 니콜은 더이상 현재 소속팀에서 뛸 수 없다. KBL은 트라이아웃을 통해 다시 같은 팀에서 뛸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니콜은 나이 제한에도 걸려 V리그와 영영이별이다.

서남원 감독은 "팀이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했을 당시 니콜이 먼저 재계약을 요청할 정도로 우승에 대한 열망과 팀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며 "팀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선수들을 이끌고 식사를 하는 등 앞장서는 리더십도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문제는 남자부에도 영향이 미친다는 점이다. 여자부가 2015~2016 시즌에 적용하고 남자부 역시 2016~2017 시즌부터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대전 삼성화재의 레오나 안산 OK저축은행의 시몬, 수원 한국전력의 쥬리치 등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외국인 선수들을 더이상 보지 못하게 된다. 기량 문제가 아니라 제도 때문에 스타 선수들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은 팬들을 몰아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 차별적인 규정은 외국인 선수 뿐 아니라 한국인이 되고자 하는 혼혈 귀화선수도 마찬가지다. 전주 KCC를 통해 KBL에 들어왔던 부산 케이티의 전태풍은 올 시즌이 끝난 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팀을 옮겨야 한다. [사진=KBL 제공]

◆ 한국인 되고자 하는 귀화 혼혈 선수조차도 차별

이런 문제는 비단 외국인 선수에만 그치지 않는다. 프로농구 규정에는 한국인이 되기 위한 '하프 코리안' 귀화 혼혈 선수에 대한 차별 조항이 있다.

혼혈 선수가 처음 들어왔을 당시 규정은 국내 선수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차별적이었다. 3년 이상 한 팀에 소속될 수 없다는 규정이었다. 이 때문에 전태풍은 정들었던 전주 KCC를 떠나 고양 오리온스로 이적해야 했고 다른 선수들 역시 지금은 처음 데뷔한 팀이 아닌 다른 팀에서 활약하고 있다.

문제는 혼혈 귀화 선수 규정이 아직까지도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팀에서 3년 이상 뛸 수 없다는 규정으로 인해 세 시즌 동안 호흡을 맞춰왔던 팀에서 무조건 떠나야 한다.

KCC와 오리온스를 거쳐 부산 케이티에서 뛰고 있는 전태풍은 "아직도 혼혈 선수 취급이냐. 장난은 그만쳤으면 좋겠다"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현재 박승리를 보유하고 있는 SK 관계자도 "박승리는 지난 시즌부터 육성시켜 올 시즌에서야 비로소 팀의 주전이 됐다"며 "다음 시즌을 뛰고 나면 박승리를 다른 팀에 내줘야 한다. 애써 육성시킬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다른 팀 좋은 일 시킨 것 아닌가 싶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이밖에도 그동안 프로 스포츠에서 외국인 선수 제도 변경으로 인해 한국 무대를 떠난 예가 적지 않았다.

호주 출신 미녀 선수로 2007년 WKBL 무대에서 뛰었던 로렌 잭슨처럼 초특급 스타도 외국인 선수 제도 폐지로 한국 무대를 떠나야 했다. 같은 기간 KBL 무대를 주름잡았던 피트 마이클도 역시 규정 변경으로 인해 더이상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 피트 마이클은 2000년대 중반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KBL 무대를 주름잡았지만 외국인 선수 제도 변경으로 인해 더이상 한국에서 뛰지 못했다. [사진=KBL 제공]

야구와 축구도 외국인 선수 제도 변경은 있었다. 그러나 국내 선수와 외국인 선수의 차별은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축구와 야구에서는 오랫동안 한 팀에서 뛰거나 일시적으로 떠났다고 하더라도 되돌아오는 등 한국 사랑에 푹 빠진 선수가 많다.

에두, 에닝요(이상 전북 현대), 케빈(인천), 마스다(울산 현대) 등이 모두 잠시 K리그 클래식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아디는 외국인 선수로 FC 서울에 들어왔다가 코치까지 됐다. 라이언 사도스키도 롯데에서 외국인 선수로 뛰었다가 지금은 해외 스카우트로 변신했다.

이에 대해 SK 코치를 역임했던 김지홍 수원대 감독은 "외국인 선수 규정을 자주 바꾸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바뀐 규정대로 외국인 선수의 질적 향상을 불러올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고 각 팀에서 적응이 돼 계속 보유하고 싶어하는 외국인 선수까지 바꾸라는 것도 억지"라며 "혼혈 선수 역시 자신이 가고 싶은 팀에 가지 못하는 현실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KBS 배구 해설위원인 김상우 성균관대 감독도 "외국인 선수들의 몸값이 너무 올라 구단 운영에 어려움이 있어 트라이아웃 제도를 실시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자신이 뛰고 싶은 팀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던 선수들에게 피해가 가는 제도"라며 "구단으로서도 좋은 선수를 데려와 전력을 강화하고 싶은 의욕을 떨어뜨리고 경기 내용 자체도 재미가 떨어질 것은 분명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외국인 선수 제도에 대한 잦은 변경과 이로 인해 생겨나는 차별은 분명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해외 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수들이 규정 때문에 차별을 받고 어쩔 수 없이 팀에서 억지로 떠나야 한다면 어떤 심정일지, 역지사지로 헤아리고 분석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을 찾아온 '용병'이 아니라 국내 선수와 동등한 팀의 일원으로 여긴다면 억지스러운 제도는 더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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