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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낙성대, 별이 떨어져 세상을 밝힌 역사와 설화의 탄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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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낙성대, 별이 떨어져 세상을 밝힌 역사와 설화의 탄생지
  • 유필립 기자
  • 승인 2015.03.26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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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역사는 책에서나 보고 일부러 작정하지 않으면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잠시 주위를 둘러보면 역사는 항상 우리와 마주하며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평소 대중교통 수단으로 오가던 길, 또는 몇 백미터만 더 걸으면 닿을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을 기회가 되는 대로 휴대폰 앵글에 담아 보고자 합니다. 굳이 전문가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묻지 않아도 안내판이나 설명서만으로 우리는 꽤 많은 역사적 사실과 지혜, 교훈과 접할 수 있을 듯합니다.

[스포츠Q(큐) 유필립 기자] 우리나라 5000년 역사에 외적을 크게 물리친 '3대 대첩'이 있다.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薩水大捷), 고려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龜州大捷), 조선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閑山大捷)이다.

살수대첩은 영양왕 23년(612)에 고구려와 중국 수나라가 살수(청천강의 옛이름)에서 벌인 큰 싸움이다. 수나라의 양제가 고구려를 정복하려고 200만의 대군을 인솔하고 쳐들어왔으나, 을지문덕 장군이 지휘한 고구려 군사가 살수를 건너온 수나라의 별동대 30만 5000여 명을 몰살하였다.

 
 
 
 
 
▲ '낙성대 기념광장' 낙성대 공원 입구에는 칼을 빼 들고 말을 탄 채 거침없이 내달리는 강감찬 장군의 동상이 하늘을 향해 역동적으로 서 있다.

귀주대첩은 고려 현종 10년(1019)에 침입한 거란군을 이듬해 2월에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이 귀주(평안북도 구주)에서 크게 무찌른 싸움이며, 한산대첩은 조선 선조 25년(1592)에 한산도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군과 싸워 대승을 거둔 전투였다. 한산대첩은 임진왜란 삼대첩의 하나로, 일본의 함선 47척을 격침하고 12척을 나포하였다.

우리나라 3대 대첩의 주인공 중 서울에서 태어난 기록을 가진 장군은 두 분이다. 강감찬과 이순신이다. 강감찬은 서기 948년 금주(衿州)에서 태어났는데, 금주지역은 조선시대에 금천이라 불린 곳으로 현재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과 금천구 일대 등 관악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해당된다. 이순신 장군은 1545년(인종1) 4월 28일(음력 3월 8일) 한성부(漢城府) 건천동(乾川洞, 현재 인현동)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을지문덕 장군은 출생지와 성장과정에 대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여기는 강감찬 10리 길' 2호선 낙성대 역 부근 도로에 서 있는 안내 표지판이다.

 

 

 

 

 

▲ 강감찬 장군의 사당으로 향하는 길에는 홍살문이 서 있어 방문객의 심신을 정화하는 듯하다.

 

 
▲ 강감찬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안국사로 향하는 정문인 안국문(安國門)이다.

세 장군 중 서울에 사당이 있는 분이 있다. 바로 강감찬 장군이다. 바로 2호선의 역이름이기도 한 낙성대(落星垈)가 그곳이다. 현재 낙성대 공원은 관악구 봉천동 228번지에 위치해 있다. 인근에 서울대가 있으며 20여분 거리에 낙성대역이 있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난달 서울대에서 개최된 한 스포츠 세미나에 참가하는 길에 잠시 낙성대를 들렀다.

         역사적 기록은 낙성대에 게시되어 있는 기록을 주로 참고하였습니다.

강감찬(姜邯贊) 장군은 거란의 침략을 막아낸 것을 비롯하여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고려 백성은 장군의 이러한 공적을 찬양하여 장군이 태어난 집터에 삼층석탑(三層石塔)을 세웠다. 관악구 봉천동 218번지에 서 있던 이 석탑은 서울특별시에서 1964년 파손된 부분을 보수하였고, 1974년 6월 인근에 낙성대 기념공원이 조성되면서 경내로 옮겨졌다. 그 대신, 본래 석탑이 있던 강감찬 생가 터에는 유허비(遺墟碑)를 세웠다.

▲ 박정희 대통령이 내린 '낙성대' 휘호가 자연석에 새겨져 있다. 낙성대라는 이름은 강감찬이 태어났을 때 큰 별이 떨어져 그 집으로 들어갔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강감찬은 고려 성종 2년(983) 과거에 급제한 뒤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현종 9년(1018) 12월 소배압이 10만 대군의 거란군을 이끌고 고려를 세 번째 침공했을 때는 총사령관격인 상원수(上元帥)가 되었다.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은 지금의 평안북도 의주 위원면 지역인 흥화진(興化鎭)에서 수공(水攻)과 매복 공격을 적절히 구사하는가 하면 정벌을 포기하고 퇴각하는 적을 철저히 격멸하는 등 탁월한 전략전술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전쟁의 결과로 거란은 고려를 무력으로 굴복시키려는 야망을 버리게 되었다.

▲ 안국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중간문과 안국사의 지붕이 보인다.  경내 왼쪽에 삼층석탑, 오른쪽에 사적비가 위치해 있다.

 

▲ 앞쪽이 중간문이고 뒷쪽이 강감찬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안국사(安國祠)다.

 

 
▲ 강감찬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안국사(安國祠)다.

위인은 죽어서도 나라를 지킨다. 강감찬은 역사의 위대한 기록 속에서는 물론 민간 설화 속에서도 면면히 살아 숨쉬고 있다. ‘세종실록’과 ‘동국여지승람’에는 강감찬 설화(姜邯贊說話)가 수록되어 있다.

어느날 밤 중국의 사신이 길을 가다가 큰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별이 떨어진 집을 찾아갔더니, 마침 그 집의 부인이 아기를 낳았다. 그 아기가 곧 강감찬이며, 뒤에 송나라 사신이 와서 만나보고는 문곡성(文曲星)의 화신(化身)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 안국사 내부 모습. 중앙에 강감찬 장군 영정이 모셔져 있고 좌우에 귀주대첩 장면 등이 그려져 있다.

 

 

 

 

 

 

장군과 관련된 많은 설화들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오고 있다. 장군의 아버지가 훌륭한 아들을 낳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본 부인에게로 돌아오던 길에 만난 여우여인과 관계를 맺게 되어 낳게 된 것이 장군이라는 것이다. 그의 출생담은 흔히 시조(始祖)나 위인 등에서 나타나는 출생설화와 일치한다.

또한 장군이 소년원님으로 부임하였을 대 그가 너무 어리다고 얕보는 관속들에게 뜰에 세워둔 수숫대를 소매 속에 다 집어 넣어보라고 하였다. 그들이 불가능하다고 하자 그는 "겨우 일년 자란 수숫대도 소매에 다 집어넣지 못하면서 20년이나 자란 원님을 아전이 소매 속에 집어넣으려 하느냐!"라고 호통을 쳐서 기를 꺾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 안국사에서 중간문을 향해 내려다 본 모습이다.

 

▲ 중간문에서 정문인 안국문을 향해 내려다 본 모습. 왼쪽에 고려강감찬장군사적비, 오른쪽에 낙성대 삼층석탑이 보인다.

 

▲ 고려 강감찬 장군 사적비

 

'성대 삼층석탑' 강감찬 장군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가 터에 세워졌던 것으로, 원래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강감찬 생가 터(낙성대)’ 에 있었는데, 1974년 강감찬 장군을 위한 사당을 지어 ‘안국사’라 이름하고 주변을 정비하면서 이곳으로 이전되었다.

 

▲ 화강암으로 만든 삼층석탑의 앞면에 ‘강감찬 낙성대(姜邯贊 落星垈)’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서 강감찬 장군의 출생지를 기념하기 위한 탑임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설화도 있다. 강감찬이 남산(또는 삼각산)에 사는 수백 년 된 호랑이가 중으로 변신하여 길을 지나는 사람을 수없이 해친다는 민원(民怨)을 듣고, 편지로 호랑이를 불러와 크게 꾸짖어 앞으로 새끼도 평생에 한번만 낳고, 몇몇 산에서만 살게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진다.

또한. 어느 고을에서 여름날 개구리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관속에게 부적을 써주고 연못에 던지게 했더니, 그곳의 개구리가 다시는 울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 낙성대 공원 오른편으로는 서울둘레길의 하나인 관악산 등산로가 있다. 이곳에서 연주대까지는 4㎞다.

 

 

 

 

 

▲ 관악산 등산로 입구에서 바라본 안국사 모습이다.

 

 

요즘 우리나라에 '민원'(民怨)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민들의 호주머니는 도무지 채워질 줄 모르고 '사고 공화국'으로 불릴 만큼 대형사고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고 남북문제, 한일관계는 꼬일 대로 꼬여 있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강감찬 장군 같은 지략과 슬기 넘치는 지도자가 별과 함께 설화처럼 이 땅에 내려와 우리의 해묵은 '민원'들을 해결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강감찬 장군의 영정 앞에서 잠시 두 손 모아 그같은 기원을 해봤다.

▲ 안국문 앞에서 오른 쪽으로 뻗은 길은 시민들의 휴식처인 열린마당으로 향해 있다.

 

▲ 열린마당 옆에는 관악문화원 부설 관악문화예절원이 고풍스런 그윽함을 풍긴다.

 

 

 

 

 

 

 

 

 

▲ 도로에서 바라본 열린마당이다.

 

▲ 열린마당 한 켠에는 예쁘게 꾸며진 낙성대 공원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에서나 등장할 만큼 아담한 미니 도서관이다.

 

philip@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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