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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박주영 부활에 필요한 '넛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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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박주영 부활에 필요한 '넛지'의 힘
  • 김한석
  • 승인 2015.03.16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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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김한석 스포츠국장] 풍운아 박주영이 K리그로 돌아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영욕의 시간을 뒤로 하고 6년 7개월 만에 친정팀 팬들과 반갑게 대면했다.

지난 14일 상암벌에 쏟아지는 봄햇살 만큼이나 FC서울 팬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FC서울 서포터스 ‘수호신’은 ‘집나가서 고생 많았다 형들이 지켜줄게’ 등 펼침막을 내걸었다. 박주영은 입단식에서 팬들의 환대에 굳은 약속으로 화답했다. “앞으로 그라운드에서 성숙하고 좋은 플레이로 받은 사랑 돌려드리겠다.”

반대편 전북 팬 스탠드에는 꽃샘이 물러가질 않았다. ‘따봉’이란 플래카드가 걸렸으니 말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부진을 보이고도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그를 누리꾼들이 비아냥대는 별명 그대로 싸늘했다. 양쪽 스탠드의 묘한 대칭에서 박주영의 복귀를 보는 축구팬들의 온도차가 오버랩됐다.

▲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자신의 입단식에서 친정팀 FC서울 팬들에게 "성실하고 좋은 플레이로 받은 사랑 돌려드리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박주영. [사진=스포츠Q DB]

박주영은 프랑스(모나코), 스페인(셀타비고), 잉글랜드(아스널,왓포드), 사우디아라비아(알샤밥)를 떠돈 만큼이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극도의 언론 기피증에다 모나코 공국 체류자격 취득에 따른 병역회피 의혹, 소속팀 경기 결장에도 태극마크를 달게돼 쏟아진 ‘황제 훈련’ ‘의리 선발’ 논란 등. 거기에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견인같은 활약은 쏙 묻혀버린지 오래다.

◆ 박주영 귀환, 침체 K리그의 반전 위한 모멘텀

지난 11일 박주영 입단 기자회견에서도 완전히 씻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적어도 팬들과 소통채널인 미디어와 관계가 확 달라질 것같다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최용수 FC서울 감독이 옆에 앉은 박주영에게 줄곧 당부한 화두는 변화였다.

팬들의 알권리를 강조하며 "팬심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 주영이가 이 위치까지 오기까지 여론을 움직인 언론의 힘이 컸다”고 했다. 더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가져가면서 궁금증을 해소하는 자리를 함께 만들어가겠다는 약속도 던졌다.

K리그를 살찌우는 더 많은 스토리들을 함께 만들어보겠노라는 최용수 감독의 의욕에 박주영은 원칙적인 입장만을 보였다. “특별하게 변하겠다고 말씀드리겠다는 것보다는 서울에 입단한 만큼 서울을 대표해 인터뷰를 해야 한다면 피할 생각은 없다.”

프로축구계는 하루아침에 태도나 기량이 바뀔 수 없으니 ‘기다려주자’는 반응이 많다. FC 서울 단장 시절 박주영을 영입했던 한웅수 한국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은 “시련은 사람을 단련시키지 않겠는가. 관중 유인하는 효과가 검증된 선수이니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고 기다려준다면 K리그에 풍성한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다”고 호재에 대한 기대감을 보였다.

K리그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실패 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신화 직후, 그리고 2005년 ‘축구천재’ 박주영의 신드롬으로 각각 붐이 일었지만 이후 깊은 침체기에 빠져 있다. 박주영 복귀는 개인의 부활과 K리그 전체의 반전을 위한 모멘텀이 될 수 있다.

▲ 6년 7개월 만에 돌아온 박주영을 환영하는 FC서울 서포터스의 펼침막. [사진=스포츠Q DB]

부활 스토리. 그것만큼 감동적인 것도 없지 않는가. 이동국을 빼놓고 부활을 얘기하면 그야말로 ‘냉무’다. 2008년 여름. 세 시즌 동안 91경기에서 33골을 넣은 박주영은 프랑스 모나코로 건너가고 이동국은 쓸쓸히 K리그로 돌아온다.

이동국은 2007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직행 1호 K리거로 미들즈브러에 입성했지만 두 시즌 동안 2골에 그치는 부진 끝에 유턴해야 했다. 성남에서 다시 출발했지만 실패. 이동국은 2009년 최강희 전북 감독을 만나면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신인왕, 득점왕, 도움왕, MVP까지 4대 개인 타이틀을 휩쓴 최초의 K리거가 됐다. 이젠 골 넣을 때마다 통산 최다골(167골)이다.

최강희 감독은 회고한다. “이동국을 처음 만났더니 애절함이 느껴졌다. 서른 나이에 쌍둥이 아빠로서 책임감이 강했다. 막상 데려왔더니 전북 팬들이 양로원 만들려고 그러냐고 난리 났다. 그렇게 안티팬이 많은 줄 그땐 몰랐다. 한국 공격수의 숙명인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지금은 동국이가 우리 팬들에겐 신격화돼 있지 않는가.”

◆ 이동국의 부활 이끈 ‘넛지'의 힘

간절함 말고 또 무엇이 이동국을 깨웠을까. 최 감독은 심리적인 안정을 최우선시했다. “손 들어야 빼겠다”고 약속했고 그걸 지키며 신뢰를 보냈다. 이동국은 꾸준히 기회를 늘려가면서 고정 출연으로 공격 연기에 불꽃을 태웠고 ‘전주성 부활극장’은 대박이 났다.

그 약속 한마디는 일종의 ‘넛지(nudge)’다.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의 넛지는 미국 시카고대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와 로스쿨 교수 캐스 선스타인이 함께 쓴 ‘넛지’란 저서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공동 저자는 넛지를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으로 정의했다. 명령이나 금지가 아니라 팔꿈치로 옆구리를 툭 치듯 부드러운 권유로 타인의 바른 선택을 도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남자 화장실 소변기 한 가운데 파리 모양의 스티커를 붙이거나 축구 골대를 세우면 바닥으로 튀는 소변량의 80%가 줄어든다는 실례로 쉽게 알 수 있다.

최강희 감독은 스스로 노력하며 변한 이동국의 힘을 높게 평가한다. “팀에 처음 와서 동계훈련을 할 때 쉬라고 해도 허리에 파스 덕지덕지 붙이고도 힘든 훈련을 쉬지 않았다. 강제로는 안되는 일이다. 주위에서 환경을 만들어주면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최 감독이 보내는 박주영에게 보내는 조언. “박주영은 많은 걸 가지고 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심리적인 안정이다. 주변과 잘 지내고 마음이 편해지면 그 능력들이 나올 것이다. 친정팀이 그래서 좋은 거다.” 미디어와 관계에 대해서는 “노장도 됐으니 이제 그런 걸 다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동국만큼 시련도 많이 겪고 팬들로부터 비난받은 공격수도 드물다. 그래도 끝내 이겨냈다. 여유도 생겼다.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팬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2011년 11월. 복귀 뒤 두 번째 우승을 이끌기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젠 욕들 하지마소~~~~^^; 이동국은 왜 욕을 먹는가”라는 글을 올렸다. ‘좋아요’에는 “요즘은 욕 덜 먹으니까 귀가 간질간질하네요ㅋㅋㅋ”라고 재치있는 답글도 남겼다. 가슴 아픈 좌절과 시련도 즐겁게 되새김하면서 당당하게 팬들과 공감을 나누는 베테랑 이동국의 부활기야말로 나이 서른의 박주영에게는 소중한 본보기가 아닐까.

박주영이 입단식을 가진 경기에서 부상 복귀전을 치른 서른여섯 다둥이 아빠 이동국을 오랜만에 경기장에서 만났더니 “지금은 심리적 안정이 중요하다”며 “반드시 박주영이 기량을 되찾아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고 했다.

◆ 박주영이 도전할 부활의 가치는?

최용수 감독은 “사실 모험이었다”고 토로했지만 방황하던 박주영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첫 넛지다. 박주영도 “한국으로 편히 돌아올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셨다”고 고마움을 표시했기에.

최용수 감독만큼 끼가 돋보이는 K리그 지도자도 드물다. 재기발랄한 언변으로 촌철살인의 유쾌한 직격탄을 날린다. 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팬들과 소통을 넓힐 수 있다면 자기 한 몸 망가져도 좋다는, 대표적인 ‘미디어 프렌들리’ 감독 중 한 명이다.

새달 복귀전을 갖기 전까지 박주영 옆구리를 어떻게 쿡 찌를지 궁금하다. 첫 훈련하는 박주영이 공을 뺏기자 “왜그래? 아스널”하고 서슴없이 유쾌한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끌어올린 그라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리라.

그래도 만약이다. 박주영이 재기의 길을 걷는데 미디어와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게 걸림돌이 된다면 말이다. 그를 아끼는 팬들이 박주영이 골 넣을 때 외쳐야할지도 모를 넛지 한 마디가 떠오른다. “오늘은 인터뷰할 거죠?”

“박주영 경기 봤어?”하고 묻는 게 팬들 서로서로에게 넛지가 됐던 2005년. ‘축구천재’가 뛰고 안뛰고에 따라 관중 1만명이 왔다갔다 했던 신드롬의 기분좋은 데자뷔를 기대하는 K리그나 구단들로서도 새로운 넛지를 개발해 인기 회복의 시나리오를 준비해보면 어떨까.

박주영 입단식 날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총총히 빠져나가는 FC서울 서포터 3명의 이야기가 우연히 들렸다. “(누구누구가) 서울 이랜드로 넘어갔대. 거기 팬들한테 잘 하고 전력도 좋대.”

오는 29일 K리그 챌린지(2부)에서 출발하지만 팬 프렌들리를 최우선 가치로 내건 신생팀으로 서포터들이 일부 이동한다는 얘기다.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 설치된 5000석의 가변석에서만 올 시즌 홈경기를 쾌적하게 즐길 수 있다고 관중을 제한한다고 내건 역발상 자체도 넛지다.

소통의 시대다. 통(通)하지 않으면 팬들은 떠난다. 전통과 명성은 어제 내린 눈이 될 수 있다. 돌아온 박주영이 팬들과 어떻게 소통하며 피치에서 부활의 가치를 끌어낼지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편집자 주] 필자는 1990년부터 스포츠서울 축구기자로 활동하며 잉글랜드 유로 96, 1998 프랑스 월드컵.  1999 미국 여자월드컵, 2002 한·일 월드컵 등을 현장 취재했다. 한국축구 명예의 전당 선정위원, K리그 30주년 레전드 선정위원을 맡았으며 FIFA-발롱도르 한국 대표 선정위원으로 활동했다. 제21회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han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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