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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고개에 앉을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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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고개에 앉을 놈들?
  • 이두영편집위원
  • 승인 2014.01.28 16:48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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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버티고개~남산 20리 건강 걷기

SBS ‘별에서 온 그대’가 김수현‧ 전지현 두 주인공의 빼어난 외모와 탁월한 연기력 덕분에 평소 드라마를 그다지 즐겨 보지 않는 제가 열혈 시청자가 됐습니다. 천송이(전지현)의 남다른 미모와 맹랑한 연기도 매력적이지만, 시간 정지술과 순간 공간 이동, 총알을 피하고 질주하는 자동차를 정지시키는 도민준(김수현)의 괴력과 예지력은 가히 안드로메다급입니다. 도대체 도민준은 400년 전 어느 별에서 왔을까요? 훤칠한 키와 수려한 이목구비, 고금의 문화와 역사에 능하고 지혜와 품위, 무예까지 겸비한 도 매니저(도민준)는 어쩌면 모든 여성이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남성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김수현(왼쪽)과 전지현.

 

그런데 그토록 기품 있고 격조 있게 행동하는 남자의 입에서 속뜻을 알 수 없는 조선시대의 욕이 나와 화제가 됐습니다. “이런! 밤중에 버티고개에 가서 앉을 놈들!” 천송이가 홈쇼핑에서 주문한 간장게장을 보고 그런 욕을 했지요. ‘놈들’이란 말만 빼면 그리 심한 욕이 아닌 것도 같지만 도 매니저의 표정을 보면 저주의 수위가 상당히 높아 보였습니다. 아마 ‘이런 육시럴!’을 능가하는 정도랄까요.

그럼 도대체 버티고개는 어디에 있고 그 고개가 어땠길래 욕에 등장하는 것일까? 전북 남원의 뱀사골과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를 잇는 지리산 화개재 같은 고개는 아무리 높고 험해도 생계를 위해 목숨을 걸고라도 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그토록 접근하기가 두려운 고개가 있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알고 보니 버티고개는 현재의 서울 중구 신당동 및 약수동 쪽에서 용산구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와 중구 장충동에서 한남동으로 통하는 고개를 일컫는 지명이었습니다. 약수동고개와 장충단고개가 둘 다 버티고개라는 이름으로 불렸답니다.

저는 버티고개를 통과하는 ‘서울숲 남산길’ 전 코스 8.4km를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걷기운동으로 체지방을 빼면서 지리공부와 함께 눈 호강도 시키기로 했습니다. 서울숲에서 시작해 봄에 온통 개나리꽃으로 뒤덮이는 응봉산, 고혈압 예방을 위해 맨발로 걷는 구간이 있는 금호산, 버티고개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매봉산을 지나 버티고개 생태통로를 지나면 국립극장 및 남산타워로 이어집니다. 이 코스는 야트막한 산들을 오르내리면서 한강과 서울 도심을 내려다볼 수 있어 전혀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벤치 따위의 쉴 곳도 많아 체력안배도 할 수 있습니다.

성동구는 주민들의 걷기 활성화를 위해 이 길을 만들면서 난이도와 주변 환경을 고려해 ▲마음건강 코스(응봉산 정상~독서당공원) ▲아토피 예방 코스(대현산 공원) ▲당뇨병 예방 코스(대현산 배수지공원 내) ▲고혈압 예방 코스(금호산 공원 내) 등 4가지 코스로 구분했습니다. 하지만 각 코스의 의미는 크지 않고 그저 걷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 관련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30대 이상 성인 10명 중 3명이 고혈압을 겪고 있고, 10명 중 1명은 당뇨병 환자라고 합니다. 당뇨병이나 고혈압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병이 아니고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됩니다. 그래서 침묵의 살인자라고 하지요. 증세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진행되면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므로 미리 예방해야겠지요. 젊을 때부터 기름기와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을 덜 먹고 혈압과 혈당이 오르지 않도록 꾸준히 운동을 해야겠습니다. 짜게 먹고 ‘나쁜 콜레스테롤(LDL)’ 수치가 높으면 혈관에 찌꺼기가 많아져 결국 고혈압과 당뇨가 생긴다지요. 당뇨병은 몸에서 만들어지는 인슐린의 양이 부족하거나 양이 충분해도 제 구실을 못할 때 포도당이 혈액에 넘쳐서 생기는 병입니다. 이런 상태를 방지하려면 진득하게 오래 걷는 것이 최고입니다. 물 한 동이 길러 가는 데 수 시간이 걸리는 아프리카 마사이족은 당뇨나 고혈압이 생길 리가 없지요.

 

자, 서울숲으로 갑니다. 지하철 분당선 ‘서울숲역’이 지척에 있고, 2호선 뚝섬역도 가깝습니다.
서울숲은 꽤 넓어서 걸어서 다 둘러보려면 2시간 이상은 걸릴 것 같습니다. 적당히 둘러보고 건너편 응봉산으로 가려던 중 좀 헤맸습니다. 가까운 통로인 용비교가 공사 중이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 지도를 확대해 안내판에 나타난 지도와 비교한 끝에 우회도로를 쉽게 알아냈습니다. 서울숲에서 무조건 한강을 향해 남서쪽으로 가면 됩니다.

 

▲ 서울숲에서 윷놀이 등 전통 놀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 서울숲의 군마상. 사진 가운데에 조그맣게 보이는 봉우리가 봄에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는 응봉산입니다.

▲ 서울숲.

▲ 서울숲 남쪽의 생태다리 못미처에는 이국적인 숲도 있습니다.

▲ 사진에 보이는 곳으로 나와 건너편 11번 출입구로 다시 들어가 한강을 향해 가면 응봉산으로 가는 우회로로 이어집니다.

▲ 11번 출구로 들어서서 사진에 보이는 큰 조형물을 향해 계속 갑니다.

 

▲ 서울숲 내 동물원입니다. 응봉산도 보입니다.

▲ 서울숲의 사슴들이 사람과 놀고 있네요.

▲ 긴 생태다리를 지나면 한강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 서울숲 한강변.

▲ 서울숲 남쪽 가장자리를 돌며 응봉산을 바라봅니다.

 서울숲 9번 출입구로 나가서 길을 건너 다시 11번 출입구로 들어가서 계속 직진해 생태다리를 건너 한강 근처까지 내려서야 합니다. 광활한 강둔치에서 억새꽃이 한들거리고 자전거를 타거나 걷기를 즐기는 자연과 사람들의 표정들이 푸근하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이제 강가를 따라 무조건 오른쪽으로 가면 강을 건너는 다리가 나타나고 강을 건너서 왼쪽으로 아파트단지를 향해 한참을 걷습니다. 운동기구들이 늘어선 곳에 이르면 한강공원 금호나들목(토끼굴 형태)으로 들어가서, 굴의 오른쪽으로 빠져나가 횡단보도를 건너 오른쪽 길을 따라 응봉산을 향해 계단을 오릅니다.

▲ 용비교 바로 아래쪽 다리를 건너서 왼쪽으로 아파트 단지 근처까지 가면 토끼굴 형태를 띤 금호나들목이 나옵니다. 이 안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가야 합니다.

▲ 금호나들목의 새떼가 군무를 춰 주어서 소풍 기분이 한껏 상승합니다.

 

 응봉산부터는 남산까지 ‘서울숲 남산길’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따라 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정표는 크지 않지만 헷갈릴 만한 곳에 반드시 붙여져 있으므로 당황하지 말고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면 담벼락 같은 어딘가에 보입니다. 성동구에서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 경관을 헤치지 않게 귀엽게 이정표를 붙여 놓았습니다.

 

▲ 응봉산으로 오르면 서울숲과 한강, 중랑천 일대가 환히 보입니다.

▲ 응봉산으로 오르면 서울숲과 한강, 중랑천 일대가 환히 보입니다.

▲ 응봉산에 오르다 한남대교 일대를 바라봅니다.

▲ 응봉산에서 내려가면 사진에 보이는 다리도 건넙니다. 여기서 저는 잠깐 헤맸습니다. 정면에 아주 작게 이정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왼쪽으로 가면 됩니다.

▲ 아파트 담벼락 앞에서 왼쪽으로 가면 독서당공원이 나옵니다.

▲ 대현산 독서당공원.

 

성동은 옛 서울의 도성을 둘러싼 성곽의 동쪽 지역을 일컫는 지명입니다. 응봉산 앞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는 두뭇개(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는 곡식을 비롯한 온갖 물자가 몰려오고 한강과 압구정이 환히 보이는 언덕 위의 ‘독서당’에서는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지요. 조선 전기에 성종이 용산에 있는 빈 절을 개보수해 독서당(남호독서당)을 만들었으나 연산군이 집권해 폐허가 됐고, 그 후 1517년 중종 치세에 현재의 옥수동에 독서당(동호독서당)을 지어 이곳이 학문의 메카가 되었답니다. 아마 도민준이 실재했다면 이곳 독서당에서 논어를 공부하는 청년 학도가 아니었을까요.

▲ 도중에 헷갈릴 법한 곳마다 찬찬히 살펴보면 '서울숲 남산길' 이정표가 있습니다.

▲ 고혈압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금호산 맨발공원입니다.

논골사거리에서는 계속 직진하다 꿈나무길(배수지공원~맨발공원)로 들어서면 됩니다. 응봉근린공원(금호산)에 이르러 오솔길과 철조망 사이의 길을 따라 모롱이를 돌면 드디어 삼각산 아래 자리한 옛 도성 안쪽의 도심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버티고개가 있는 신당동과 약수동, 장충동 신라호텔, 남산타워도 빤히 보입니다. 쭉 가면 버티고개 생태통로 위를 지나게 되고 거기부터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 큰길 옆으로 내려서서 국립극장 앞까지 갑니다. 왼쪽의 산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남산타워에 도착합니다.

 

▲ 금호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입니다.

▲ 사진 정중앙 부근에 큰 사거리와 약수역이 있습니다. 버티고개로 이어지는 대로는 사진에 나타난 큰 길과 사거리에서 교차됩니다.

▲ 맨발공원에서 5분 정도만 가면 서울의 진산인 삼각산과 중구,종로구 일대의 빌딩숲이 반갑게 인사합니다.

 

▲ 버티고개를 끼고 있는 매봉산에는 편안한 숲길도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면 곧 남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섭니다.

▲ 너무 해찰하며 걸어서 남산에 당도하기도 전에 해가 졌습니다.

 

저는 서울숲에서 1시간 이상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걷기를 즐긴 다음에 천천히 이동했고, 어릴 적 소풍 가는 기분으로 논골사거리 부근의 빵집에서 단팥빵도 한 개 사 먹으면서 느릿느릿 걸었기 때문에 하루를 꽉 채웠습니다. 국립극장 입구에 이르니 벌써 해가 져서 6시가 가까워졌고 가로등 불빛을 벗 삼고, 서울 야경도 구경하면서 남산 꼭대기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남산에서 깜짝 놀란 것은 그 많은 관광객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국적인 발음이었습니다. 중국인, 태국인, 베트남인 등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몰려다니며 이국의 밤 정취를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홍콩의 야경명소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가서 불빛 구경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 버티고개 생태통로.

▲ 버티고개 생태통로 부근입니다.오른쪽으로 가면 버티고개 버스정류장과 버티고개 역이 나옵니다. 왼쪽은 남산 기슭의 국립극장 방향입니다.

 

▲ 버티고개.

 

▲ 버티고개.

▲ 버티고개 정류장.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궁을 연상시키는 건물을 보고 놀랐습니다.

 

 

 

 

 

저는 오는 도중에 버티고개로 내려가서 버티고개역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길이 좁고 으슥해 도적 같은 불량배들이 득시글거렸다는 고개에는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궁을 연상시키는 건물과 거대한 아파트 및 상가가 들어차 상전벽해의 변화를 실감나게 했습니다. 정말 드라마 속의 도민준이 살았다면 400년 전의 모습은 어땠을까? 시간을 거슬러 그때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 티베트 라싸에 있는 포탈라궁. 버티고개에 있는 건물이 하도 닮아서 양념으로 올립니다.

 

▲ 버티고개.

▲ 지하철 6호선 버티고개역.

 

▲ 남산 국립극장 앞에 이르면 왼쪽에 난 길을 따라 남산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 남산타워를 향해 오르는 중간에는 편안히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목조 데크가 마련돼 있습니다. 삼각대 없이 맨손으로 촬영해서 흔들렸지만 분위기는 괜찮지요?

▲ 남산타워와 도심 불빛이 제법 멋집니다.

 

▲ 남산 정상의 팔각정의 은은한 조명이 추위를 녹여 줍니다. 이날 저는 이곳에서 생생한 중국어 듣기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중국인이 가장 많았습니다.

▲ 남산타워를 보며 긴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보통 3시간 정도면 끝낼 수 있는 거리를 하루 내내 걸었습니다.

 

지하철 6호선 버티고개역 계단에 잠시 앉아서, 인간의 품위와 도리를 아는 조선의 선비 도민준을 머리속에서 그려보았습니다. ‘밤중에 버티고개에 앉을 놈들’은 천송이에게 살이 없는 간장게장을 보낸 업자들이 아니라, 현재 백성들의 개인정보를 팔아먹는 사람들과, 국민 혈세로 호의호식하면서도 보안관리 및 감독에 소홀한 정부와 금융권의 높은 양반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도민준 씨 덕분에 서울지리 공부도 하고 서울숲에서 남산을 거쳐 서울역까지 걷는 동안 체지방과 나쁜 콜레스테롤을 줄이고 혈관도 건강하게 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습니다.
참고로 2월 8일부터 23일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서울숲에서 ‘세계의 거대곤충 특별체험전’ (참가비 5천원)이 열린답니다. 어린 자녀가 있는 분은 참여를 적극 고려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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