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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15) '색다른 도전' 함상명 카운터펀치에 낯가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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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15) '색다른 도전' 함상명 카운터펀치에 낯가림은 없다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5.03.20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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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AG 복싱 금메달리스트, 낯선 APB 무대 올라 첫승…'기회는 스스로 찾는 것!' 리우행 집념의 펀치

[300자 Tip!]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이에게는 설렘. 또 어떤 이에겐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스포츠 스타의 경우 더욱 그렇다. 투기종목 선수들에게는 체급을 바꾸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다. 여기 체급을 변경하면서 복싱 스타일을 바꾸고 새 무대까지 발을 디딘 선수가 있다.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복싱 밴텀급(56㎏) 금메달리스트 함상명(20·용인대). 세계랭킹 6위의 그는 지난달 국제복싱협회(AIBA)가 운영하는 프로복싱(APB) 무대에 진출, 첫 경기에서 승리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어떤 무대에 서든 다 같은 복싱”이라고 외치는 함상명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태릉=스포츠Q 글 이세영·사진 노민규 기자] 함상명은 지난해 10월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복싱에 의미있는 발자국을 남겼다.

밴텀급 결승에서 난적 장자웨이(중국)를 3-0 판정승으로 꺾고 시상대 맨 위에 선 그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에 한국 복싱에 금메달을 안겼다. 더욱이 52㎏에서 56㎏으로 체중을 늘리고 국가대표로 발탁돼 처음 출전한 국제 종합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 더욱 눈길을 끌었다.

▲ 함상명이 복싱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 중인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힘찬 펀치를 날리고 있다.

시상식을 마치고 기자회견장으로 걸어가던 도중 함상명은 스승인 용인대 김주영 교수를 발견했다. 그는 가는 길을 멈춘 뒤 스승에게 큰절을 올렸고 둘은 진한 포옹을 나눴다.

“김주영 교수님은 제가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발전을 하기 전에 미트를 받아주고 체력 훈련을 시켜주셨던 분입니다. 체력을 끌어올리는 과정이 힘들었는데 저를 끝까지 믿고 끌어주셔서 선발전을 통과할 수 있었지요. 그 고마움이 생각나서 큰절을 올렸습니다.”

함상명은 김주영 교수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지도한 감독과 코치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힘든 운동을 즐기면서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줬단다.

경기도 시흥 군서중 1학년 때 복싱을 권유한 황성범 코치가 현재 이모부다. 그를 비롯해 경기체고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한형민 대표팀 코치,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준 박시헌 대표팀 감독 등 모든 지도자들이 은인이다.

“한형민 코치님 전담 선수가 저예요. 저를 맡으시면서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셨어요. 예전과 복싱 스타일이 바뀌었지만 저에게 맞는 것 같아 만족하고 있어요(웃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바뀌었는지 궁금했다. 함상명은 “수비를 크게 강화했다. 김주영 교수님은 짧은 연타를 자주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한 코치님은 가드를 올리고 눈으로 상대를 주시하면서 잽 공격을 견제하라고 하셨다. 그러다가 공격 기회가 오면 때리라고 가르쳐주셨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복싱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힘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리가 잡혀가는 것을 발견한 뒤엔 뿌듯함이 느껴졌단다.

▲ 결코 쉽지 않았던 APB 데뷔전이었지만 함상명은 자신의 첫 상대를 3-0으로 제압하고 새 무대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 결코 만만치 않았던 APB대회 데뷔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고 한창 들떠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AIBA로부터 APB대회에 초청받은 것. APB는 전례에 없었던 개인순위 기반 형식에서 경쟁하는 세미프로 형식의 복싱 경기로, 세계 최고의 복싱선수 80명(체급별 8명)이 경쟁하는 무대다. 지난해 10월 창설됐다. 아시안게임 입상으로 세계랭킹이 오른 함상명에게 출전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월드클래스 스타들이 참가한다는 점이 구미를 당기기도 했으나 무엇보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게 함상명의 마음을 움직였다. 8명이 리그전을 펼치는 밴텀급에서는 상위 2명이 올림픽 티켓을 거머쥘 수 있다. 통화를 마친 그는 박시헌 감독, 김주영 교수와 함께 프랑스 파리로 출국했다.

지난달 20일 새 무대에서 치른 첫 경기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경기하기 전 몸무게가 60㎏이었던 함상명은 3일 만에 4㎏을 감량한 뒤 계체를 통과했다. 다행히 하루의 준비시간이 있어 에너지를 보충한 그는 결전의 날 평소보다 긴 6라운드를 치렀다. 아마추어 복싱은 3분 3라운드로 진행되지만 APB대회는 3분 6라운드로 치러진다. 더 많은 체력이 요구됐다.

“2라운드까지 숨을 고르고 3라운드부터 본격적으로 공격을 했습니다. ‘칠 때 치고 빠질 때 빠지자’는 생각으로 경기를 운영했지만 5라운드쯤 되니 숨이 막히더라고요. 그때부턴 정말 정신력 하나로 버텼습니다. 6라운드를 1분 남긴 시점에서는 구역질이 났습니다. 구토할 직전에 경기가 끝나 정말 다행이었어요(웃음).”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함상명은 베네수엘라의 블랑코와 맞붙은 APB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아시안게임 때처럼 3-0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비록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함상명은 APB대회가 자신에게 맞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오랜 시간 경기를 하기 때문에 강인한 체력이 요구되지만 펀치를 날렸을 때 손맛이 더 짜릿하단다.

그 이유가 있었다. APB대회에서 사용하는 글러브가 아마추어 대회용 글러브보다 딱딱하기 때문. 같은 스펀지 재질이지만 공격할 때 감기는 맛이 다르다는 게 함상명의 설명이다.

수비를 강화한 그에게 유리한 룰도 APB대회에 매력을 느낀 요소다. 아마추어대회에서는 상대 가드 위에 때려도 점수가 올라가지만. APB대회에서는 가드 위에 때린 것은 점수로 올라가지 않고 정타로 때린 것만 인정됐다. 또 소극적인 플레이에 대해 주의를 많이 주는 아마추어대회와 달리 APB대회는 고개를 숙이거나 상대와 거리를 둬도 경고 선에서 그친다.

▲ 함상명을 지도하는 박시헌 대표팀 감독은 "러닝할 때 체력은 약하지만 링 체력만큼은 누구보다 강하다"고 강조했다.

◆ "달리기 체력과 링 체력은 달라" 타고난 복서 체질

함상명이 낯선 무대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그가 타고난 복서 체질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거의 모든 종목의 국가대표 선수들은 새벽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한다. 그런데 함상명은 날쌘돌이 같은 외모와는 달리 지구력이 약해 꼴찌를 도맡아 하고 있다. 그는 “중량급 선수들보다 못 뛴다. 내 다리를 한 번 연구해봐야 할 것 같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링에만 올라가면 없던 체력이 생긴단다.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도 상대보다 링 체력에서 앞섰기 때문에 우승할 수 있었다. 함상명은 “3라운드 때 나도 힘들었지만 상대 선수가 더 힘들어하는 게 보이더라”며 “그때는 절실함도 있었고 정신력이 발휘됐던 것 같다. 그게 링 체력을 키운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박시헌 감독도 이 점을 인정했다. 평소에는 순한 양이다가도 링에만 올라가면 승부사로 변신한다는 것. 그는 “상명이가 뛰는 힘이 약하지만 링에서는 체력도 좋고 파워가 뛰어나다”며 “같은 체급의 선수들보다 파워가 좋아 접근전 때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앞으로 기술적인 부분만 다듬으면 파워가 극대화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 감독은 “밖에서는 모르겠지만 링에만 올라가면 근성을 발휘한다. 승부근성이 있다”며 “링에서는 무조건 공격이다. 얻어맞아도 기죽지 않는다. 이런 걸 보면 상명이는 복서로서 타고난 것 같다”고 웃어보였다.

◆ 체력적인 문제는 없다, "리우올림픽 진출 이룰 것"

올해 함상명은 오는 7월 아시아선수권대회와 10월 세계선수권대회, APB대회를 모두 소화한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체력이 요구되는 상황. 하지만 박시헌 감독은 체력적인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박 감독은 “국제대회야 늘 준비해왔으니 지금처럼만 대비하면 된다”며 “APB대회도 한 경기씩 띄엄띄엄 치르기 때문에 괜찮다. 내년 올림픽에 충분히 나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함상명은 APB대회 출전으로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올림픽 출전권과 함께 세계선수권대회에 직행할 수 있는 자격도 갖췄다.

▲ 올해 아시아선수권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 APB대회 출전으로 바쁜 일정이 예상되지만 함상명은 "출전하는 모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고 다짐했다.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6위 안에 들어야 세계선수권대회 출전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저는 APB대회를 뛰기 때문에 세계선수권대회도 바로 나갈 수 있어요. 또 APB대회가 올림픽에 진출하는 지름길이니 저에게 이보다 더 좋은 대회가 있나 싶어요(웃음).”

일단 APB대회에서 2위 안에 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참이다. 하위권에 있는 선수들에게 두 번 이기면 상위권에 진출하는데, 상위권에서 2위 안에 들면 올림픽 진출 티켓을 딸 수 있다.

함상명은 “5월 8일 하위권 선수와 처음으로 경기를 치른다. 첫 단추를 잘 끼워 올림픽에 진출하는 초석을 놓겠다. 많은 관심 부탁한다”고 응원을 당부했다.

[취재후기] 함상명은 은퇴 후 체육관을 운영하며 제자들을 키우는 게 꿈이다. 자기 스타일의 복싱을 제자들에게 입혀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고 싶단다. 12년 만에 금메달을 땄지만 여전히 침체돼 있는 한국복싱. 제자들의 선전을 통해 복싱의 전성기를 새롭게 일구고 싶은 함상명은 복싱밖에 모르는 욕심쟁이다. 그의 당찬 포부에 절로 믿음이 생겼다.

syl015@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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