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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분석] 여자 월드컵 유치 실패, 그 배경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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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분석] 여자 월드컵 유치 실패, 그 배경과 과제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3.20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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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랭킹 3위 프랑스에 여자 월드컵 개최권 내줘…저변확대 통한 활성화로 유치 당위성 확보가 우선

[스포츠Q 박상현 기자] 한국 여자축구의 비약적인 발전을 기대하며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 유치에 도전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FIFA는 20일(한국시간) 스위스 취리히에서 집행위원회를 열고 2019년 FIFA 여자 월드컵의 개최지를 프랑스로 선정했다. 프랑스는 여자 월드컵 외에 2018년 20세 이하(U-20) 여자 월드컵 개최권까지 확보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한국 여자축구 활성화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지난해 3월 FIFA로부터 여자 월드컵 등 대회 유치 안내공문을 수령한 대한축구협회는 여자축구 활성화의 기회로 판단하고 여자 월드컵과 U-20 여자 월드컵 유치 관심표명서를 FIFA에 제출했다.

이어 FIFA 유치 절차 및 참여 요건 승낙 협약서를 제출한 협회는 수원과 인천, 대전, 대구, 부산, 울산, 전주, 제주 등 8개 도시를 개최 후보 도시로 선정하는 등 발빠른 행보에 나섰다. 정몽규 회장은 지난해 12월 FIFA 클럽월드컵조직위원회 회의를 위해 모로코로 출장했을 당시 FIFA 집행위원을 상대로 면담을 하며 홍보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 한국 여자축구는 짧은 역사에도 FIFA U-20 여자 월드컵 3위, U-17 여자 월드컵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아직 여자 월드컵에서는 올해 대회를 포함해 본선에 두차례 올랐다. 사진은 지난해 WK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이긴 뒤 환호하는 인천 현대제철 선수들. [사진=스포츠Q DB]

결과는 실패였다. 여자축구 FIFA 세계랭킹에서 3위를 달리고 있는 프랑스에서 FIFA 여자 월드컵을 개최해야 한다는 기류가 감돌고 있었다. 프랑스가 200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이후 FIFA 주관 대회를 열지 못했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실패 원인은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 FIFA 여자랭킹에서 세계 3위 프랑스에 비해 한국은 17위에 불과하다. 아시아에서도 일본(4위), 북한(7위), 호주(10위), 중국(13위)에 이어 다섯번째에 불과하다.

FIFA 여자 월드컵도 2015년 캐나다 대회까지 본선에 두 번만 올랐을 뿐이고 녹다운 토너먼트에 진출한 사례도 없다. FIFA U-20 여자 월드컵 4강 진출과 17세 이하(U-17)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고는 하지만 이런 성적만으로는 세계 여자축구계에 명함을 내밀기가 어려웠다.

◆ 대회 유치 통한 여자축구 활성화, 앞뒤가 바뀌었다

한국이 여자 월드컵 유치에 나섰던 목적은 여자축구의 저변 확대였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유치에 나서면서 "FIFA 주관 여자대회를 유치할 경우 여자축구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질 뿐 아니라 언론 노출 확대로 여자축구 인기와 이미지가 상승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통해 학교나 기업, 지자체, 클럽 등 팀 창단이 이뤄져 저변이 확대되고 선수 육성과 집중 훈련을 통해 여자축구 전반의 경기력 향상도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는 어떻게 보면 앞뒤가 바뀌었다. 대회 유치를 통해 여자축구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자축구가 활성화돼 대회 유치의 당위성을 확보했어야 하는 것이다.

▲ 한국은 올해 캐나다에서 열리는 대회까지 FIFA 여자 월드컵에 두차례 본선에 올랐다. 세계 랭킹도 3위인 프랑스보다 낮은 17위에 불과하다. 사진은 지난 2월 전시된 FIFA 여자 월드컵 우승 트로피.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한국 여자축구는 1946년 중학팀이 창단되면서 태동했지만 한국전쟁 이후 팀이 해체되고 신생팀 창단이 되지 않으면서 흐지부지됐다. 1985년 대한축구협회가 여자축구단을 만들어봤지만 관심 부족으로 해산되고 1990년 이화여대, 인천전문대, 숙명여대 등에서 팀을 만들면서 여자축구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대비해 처음으로 여자축구 대표팀이 구성되면서 오늘까지 여자축구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박경화 감독과 신철순 코치 등 코칭스태프들이 다른 종목의 선수 경력자를 모아 25명을 뽑아 구성된 여자대표팀이 베이징 아시안게임에 출전, 1승 4패로 6개국 가운데 5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아직 한국 여자축구가 활성화됐다고 보기엔 아직 무리가 있다.

현재 국내 팀은 실업 7개팀, 대학 9개팀을 비롯해 고등학교 17개팀, 중학교 20개팀, 초등학교 23개팀 등 76개팀뿐이다. 1409개팀을 갖고 있는 일본의 20분의 1 수준이고 5782개팀이 있는 독일과 비교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등록 선수도 1765명으로 일본(3만243명)과 독일(26만2220명)보다 한참 적다.

실업 7개팀이 연중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챔피언를 가리는 WK리그 역시 2009년 창설돼 역사가 6년에 불과하다.

물론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유산으로 서울과 인천, 수원, 대전, 대구, 부산, 광주, 전주, 제주 등에 국제대회를 열 수 있는 경기장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이는 인프라일 뿐이지 여자축구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대한축구협회가 올해 국내에서 여자축구 A매치를 개최하는 등 여자축구 활성화에 힘쓰고 있지만 여자축구 저변 확대를 이뤄낸 뒤 여자월드컵 유치의 당위성을 적극 알려도 늦지 않다.

U-20 여자 월드컵 3위와 U-17 여자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지 5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여자축구 인기가 답보상태인 것을 생각한다면 3년 뒤 U-20 여자 월드컵과 4년 뒤 여자 월드컵에서 흥행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 3년 연속 FIFA 대회 개최, 너무 지나친 욕심?

프랑스와 2파전으로 진행됐던 여자 월드컵 유치 경쟁에서 한국이 노렸던 것은 대륙별 순환 개최 원칙이었다. 대륙별 순환 개최 원칙은 FIFA의 공식 정책은 아니지만 이미 2011년 독일과 2015년 캐나다 개최로 아시아 지역 개최에 대한 공감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중국(1991년, 2007년)에 이어 아시아로는 두 번째 여자 월드컵 개최국이 되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잊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바로 2017년 FIFA U-20 월드컵 개최권을 이미 한국이 가져왔다는 것. FIFA U-20 월드컵은 FIFA 월드컵,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 못지 않은 관심과 인기를 모으는 대회다. 디에고 마라도나부터 시작해 티에리 앙리와 리오넬 메시까지 수많은 스타들이 이 대회에서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 스타 등용문이다.

이처럼 국제적인 관심을 끄는 대회를 유치한 한국이 FIFA 여자 월드컵까지 유치했을 경우 2018년 U-20 여자 월드컵과 함께 3년 연속 FIFA 주관 대회를 여는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질 수 있었다. 여태껏 FIFA 주관 대회가 한 나라에서 3년 연속 열린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FIFA 집행위원들은 한국에 FIFA 여자 월드컵 개최권을 주기가 명분에서도 부담스러웠다.

이에 비해 프랑스는 200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이후 지금까지 FIFA 주관 대회를 열지 않았다. FIFA U-20 여자 월드컵까지 15년 동안 FIFA 주관 대회를 열지 않았기 때문에 희소성이라는 측면에서 프랑스에서 대회를 열 당위성이 생겼다.

대회를 개최할 명분이 있다는 것은 유치 경쟁에서 상당한 힘이 된다. 중국이 1991년 첫 대회를 열고 16년 뒤인 2007년에도 대회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미국과 세계 여자축구 최강을 놓고 다툴 정도로 전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2007년에 대회를 치른 것도 사스 파동 때문에 2003년 대회를 4년 뒤로 미룬 것이었다.

▲ 한국 여자축구가 비약적인 발전을 했지만 아직까지 WK리그 관중은 너무나 적다. FIFA도 인기와 관중몰이 등을 생각해 여자축구 인기가 높은 프랑스에 개최권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은 서울시청과 대전 스포츠토토의 IBK기업은행 2015 WK리그 개막전. [사진=스포츠Q DB]

비록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정몽규 회장과 대한축구협회로서는 얻은 것이 없지 않았다. 여자 월드컵 개최를 위해 여자축구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고 유치 홍보 과정에서 정몽규 회장은 FIFA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취임 4개월여만인 2013년 5월 FIFA U-20 월드컵 유치전에서 승리하면서 세계 축구계에 자신을 각인시킨 정 회장은 다음달 바레인에서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총회를 통해 FIFA 집행위원에 도전한다. 정 회장은 7명의 후보 가운데 3명 안에 포함되면 아시아를 대표하는 FIFA 집행위원에 뽑힐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불붙기 시작한 여자축구 활성화에도 더욱 노력을 기울여 다음 대회 유치에 대한 당위성을 확보해야 하는 작업이 중요해졌다. 물론 우수 선수 발굴을 통한 경기력 향상과 나아가 FIFA 여자 랭킹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역대 FIFA 여자 월드컵에서 10위권 밖에 있는 팀이 개최권을 따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20일 "한국이 3년 연속 FIFA 주관대회를 연다는 것에 대한 FIFA의 견제와 부담과 프랑스가 컨페더레이션스컵 개최 이후 FIFA 주관대회를 열지 못했다는 것이 동시에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며 "그러나 무엇보다도 프랑스 내 여자축구의 인기와 인프라 등이 마케팅 측면에서 한국보다 더 유리한 환경이라고 판단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를 위해 한국도 한국 여자축구의 저변을 넓히고 인기 상승을 위해 먼저 노력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이 20일(한국시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FIFA 집행위원회에서 프랑스를 FIFA 여자 월드컵 개최지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FIFA 공식 홈페이지 캡처]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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