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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이슈] 경기시간도 상품이다, '팬 퍼스트' 시간변경이 가치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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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이슈] 경기시간도 상품이다, '팬 퍼스트' 시간변경이 가치 높인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3.31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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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퍼스트' 서울 이랜드는 정오 킥오프로 찬사…KBL은 팬 안중없이 독단적으로 경기시간 변경

[스포츠Q 박상현 기자] 똑같이 경기 시간을 두 시간 앞당겼는데 한쪽은 찬사를 받고 있고 또 다른 한쪽은 비난의 화살을 한몸에 받고 있다. 찬사를 받는 쪽은 편견을 깬 스포츠 마케팅의 전형이라는 평가이지만 또 다른 한쪽은 팬들은 안중에도 없는 독선, 독단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똑같이 경기 시간을 두 시간 앞당긴 쪽은 K리그 챌린지 신생팀 서울 이랜드와 2014~2015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을 치르고 있는 한국농구연맹(KBL)이다. 서울 이랜드는 원래 오후 2시인 경기 시간을 정오로 앞당겨 대성공을 거뒀지만 KBL은 모든 비난의 화살을 한몸에 받고 있다.

서울 이랜드는 일찌감치 시간을 바꾸고 상대팀에 양해를 구하는 노력이 있었고, KBL은 "방송사 중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경기 나흘 전에 급하게 변경한 것이 찬사와 비난을 가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급하게 바꿨느냐 아니냐의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얼마나 팬들에 대한 서비스 정신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 서울 이랜드 선수들이 지난 29일 잠실주경기장 레울파크에서 열린 FC 안양과 K리그 챌린지 홈경기에서 선제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 서울 이랜드는 팬서비스의 일환으로 경기 시간을 정오에 잡아 팬들의 편의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 똑같이 프로야구 경기 시간 피했지만 수혜 대상이 다르다

서울 이랜드와 KBL 모두 두 시간을 앞당긴 이유가 프로야구 경기 시간을 피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울 이랜드는 바로 옆 잠실구장에서 벌어지는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두산-NC전이 벌어지는 오후 2시와 겹치기 때문에 두 시간을 앞당겼고 KBL 역시 프로야구 경기 시간인 오후 6시30분과 중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오후 7시에서 오후 5시로 앞당겼다.

문제는 그 수혜 대상의 차이다. 서울 이랜드는 철저하게 팬을 생각했다. 보통 K리그 낮 경기는 오후 2시 또는 4시 사이에 열렸다. 방송 중계 사정 때문에 간혹 오후 1시에 열린 적도 있지만 12시 경기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권성진 서울 이랜드 홍보실장은 "잠실구장의 주차 시설이 축구팬과 야구팬을 동시에 수용할만큼 넓지 않기 때문에 팬들이 주차 문제를 겪는 것을 막기 위해 킥오프 시간을 조정했다"며 "또 최근에는 축구와 야구를 모두 좋아하는 팬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낮 12시 축구 경기를 보고 곧바로 야구를 관람하러 갈 수도 있다. 두 종목 모두 윈윈"이라고 밝혔다. 오직 팬만을 생각한 것이다.

경기를 12시로 옮기는 것도 큰 무리가 없었다.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팬들이 조금만 서두르면 충분히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선수들이나 감독들도 이정도 불편(?)은 팬들을 위해 감수할 수 있다는 반응이었다. 마틴 레니 서울 이랜드 감독은 "선수들의 생체리듬상 정오에 하는 경기가 힘들 수도 있겠지만 이는 상대팀도 똑같은 문제"라고 말했다. 상대팀 FC 안양 이우형 감독도 "이례적으로 빨리 경기를 치러 아침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서울 이랜드의 창단 경기인데다 팬들을 위하는 마음이라면 못할 것도 없다. 좋은 시도"라고 긍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 농구팬들이 지난 29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벌어진 울산 모비스와 원주 동부의 KBL 챔피언결정 1차전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KBL은 31일 벌어지는 2차전 경기 시간을 오후 5시로 잡아 팬들을 생각하지 않는 행정이라는 빈판을 받고 있다. [사진=KBL 제공]

그러나 KBL의 경기 시간 변경은 원칙이 없다. 오직 방송 편성 편의를 위한 것이다. 방송사 중계를 위해 정작 돈을 내고 체육관을 찾는 충성스러운 팬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평일 오후 5시는 울산 지역 근로자들과 직장인, 학생들이 체육관을 찾기 어려온 시간이다. 그 누구도 찾지 못하는 시간에 경기를 배정한 것은 '볼 사람은 보고 보지 못하는 사람은 보지 마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게다가 평일 오후 5시는 시청률의 사각지대다. 지상파 방송의 평일 오후 5시대 프로그램을 보면 뉴스나 교양 프로그램 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스스로 자신들의 경기를 시청률 사각지대로 몰면서 프로농구의 가치까지 떨어뜨렸다.

설상가상으로 KBL은 지난 29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시간 변경에 항의하는 팬들의 현수막을 뺏으면서 과잉 대응 논란까지 불거졌다.

이에 대해 KBL 관계자는 "챔피언결정전은 지상파 중계를 하는 등 원활한 중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달라는 후원사들의 협조 요청이 있었다"며 "갑작스럽게 경기 시간을 변경하게 돼 팬들에게는 송구스럽다. 또 챔피언결정전 1차전이 끝난 뒤에 현수막을 뺏은 것에 대해서는 직접 사과하고 양해를 구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 경기 시작 시간도 돈, 주먹구구식 운영은 통하지 않는다

프로스포츠에서는 모든 것이 '돈'과 직결된다. KBL 역시 챔피언결정 2차전의 경기를 오후 5시로 앞당긴 이유가 바로 돈 문제일 것이다. KBL은 프로농구 스폰서인 KCC가 일정시간 경기 중계를 통한 노출을 원했고 결국 2차전 방송 중계를 강행하기 위해 경기 시간을 당겼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계획을 짜고 경기 시간을 정했어야 했다. 챔피언결정 2차전의 경기 시간을 처음부터 오후 5시로 정한 것이 아니라 경기일 나흘 전에 바꾸는 것은 주먹구구나 다름이 아니다. 돈과 직결되는 문제를 이처럼 주먹구구식, 탁상행정으로 조변석개했다는 것은 '아마추어 행정'이다.

▲ 대한축구협회도 팬들이 보다 많이 경기장을 찾고 TV 중계도 집에서 편하게 지켜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평일 A매치 시간을 오후 8시로 정해놓았다. 사진은 지난 27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평가전. [사진=스포츠Q DB]

국내외적으로 프로스포츠는 경기 시작 시간도 팬 서비스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올시즌 10개구단 체제가 되면서 '선데이 나잇 베이스볼' 제도를 신설했다.

선데이 나잇 베이스볼은 정규시즌 중 오후 2시에 시작하는 4, 5, 9월 일요일에 한해 하루 5경기 가운데 1경기를 오후 5시에 편성하는 것이다. 팀당 144경기로 늘어난 경기수에 맞춰 경기 시작 시간을 다양하게 함으로써 팬들이 보다 많은 경기를 관람하고 시청할 수 있도록 일요일 야간경기를 만든 것이다. 선데이 나잇 베이스볼은 다음달 5일 SK와 넥센의 목동 경기를 시작으로 10경기가 편성됐다.

대한축구협회도 평일 A매치 시간을 언제나 오후 8시로 잡는다. 보통 K리그 평일 시간인 오후 7시보다 한 시간 늦다. 오후 8시에 킥오프되면 보통 밤 10시에 끝나기 때문에 다소 늦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야구와 달리 경기시간이 무제한으로 길어지지 않기 때문에 적당하다고 볼 수 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오후 8시라는 시간은 평일에 누구나 경기장에 올 수 있도록 최대한 늦춘 시간"이라며 "퇴근 또는 하교한 뒤 경기장에 오기까지 시간도 넉넉한데다 TV 시청에서도 프라임 시간대여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유럽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의 경우 기후와 시차 등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유럽대륙 시간으로 오후 8시 45분에 맞추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의 2007~2008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의 경우 모스크바 현지시간으로 오후 10시 45분에 킥오프됐다. UEFA 챔피언스리그를 보러 모스크바로 건너갈 정도의 팬들이라면 경기 시간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반면 유럽 대륙의 수많은 시청자들을 위해서는 오후 8시 45분이라는 시간을 지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도 낮 시간대부터 오후 저녁시간까지 다양하게 경기시간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팀들의 장시간 이동을 고려한 측면도 있지만 경기시간을 고르게 분산함으로써 팬들이 MLB 경기를 다양하게 즐길 수도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경기 시작 시간뿐 아니라 경기 시간 역시 상품이다. 이 때문에 KBO뿐 아니라 일본야구, MLB도 경기 시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고 축구에서도 실제 경기 시간을 늘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원래 전후반으로 나뉘어졌던 농구가 4개의 시간으로 분리되는 쿼터제로 바뀐 것 역시 팬 서비스와 방송사와 스폰서를 위한 측면 때문이기도 하다.

시간은 돈이다. 결국 프로 스포츠에서도 시간은 돈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 이랜드의 '12시 마케팅'은 한국 스포츠 마케팅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는 획기적인 것이었지만 KBL의 '조변석개 5시'는 자충수가 되고 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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