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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규 교수의 풋볼 오디세이] (2) '미식축구의 아버지' 워터 캠프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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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규 교수의 풋볼 오디세이] (2) '미식축구의 아버지' 워터 캠프의 혁명
  • 박경규
  • 승인 2015.04.0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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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해마다 2월을 맞으면서 미국은 북미프로풋볼리그(NFL) 슈퍼볼로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든다. 슈퍼볼이 지구촌에 생중계되지만 요즘 한국에서는 중계방송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운 현실이다. 럭비와 비슷하게 보이는 이 스포츠가 왜 미국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일까. 열정과 냉정이 맞물린 미식축구 이야기 속에서 그 매력을 따라잡아보자. 한국 미식축구 선구자 박경규 경북대 명예교수가 들려주는 풋볼 오딧세이와 동행한다.

[박경규 경북대 명예교수] 미식축구는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의 학생들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학교간 타협을 통해 시작됐지만 미식축구 역사와 관련한 모든 자료는 워터 캠프(Water Camp)가 오늘의 미식축구를 만든 아버지(the true founding father of american football)로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캠프 이전 미식축구는 럭비와 거의 비슷했다. 경기도 럭비처럼 양팀이 스크럼을 짜고 볼을 쟁탈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캠프가 주축이 되어 조직한 대학미식축구협회(IFA·Intercollegiate Football Association) 규칙위원회에서 규정을 만들면서 오늘날의 미식축구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캠프는 스크리미지라인, 쿼터백 포지션, 경기장 규격, 공격권 시리즈 도입, 득점시스템 변경, 포워드패스 인정 등 여러 가지를 만들어냈다.

▲ 예일대 의대에 입학해 의사의 꿈을 키웠던 워터 캠프는 우연치 않은 기회에 미식축구에 입문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결국 예일대 헤드코치를 맡는 등 현재 통용되고 있는 미식축구의 모든 규칙을 만들어내 '미식축구의 아버지'로 통한다. [출처=워터 캠프 풋볼재단 캡처]

1880년 캠프가 제일 먼저 고안한 것이 스크리미지라인이다. 이를 통해 오늘날 미식축구 같이 공격 팀의 볼 소유권을 확실하게 했다. 처음에는 뉴트럴존(중립지역)이 없는 스크리미지라인이었지만 이후 공의 길이 폭만큼의 수평으로 연장된 스크리미지 존이 만들어졌다.

그 뒤 쿼터백 포지션과 경기장 규격을 고안했다. 캠프는 스크리미지라인과 동시에 공격라인 후방에 볼을 스냅받는 쿼터백 포지션을 만들어냈다. 이는 럭비와 확실하게 구분하는 규칙이다. 또한 경기장 폭을 지금의 53⅓ 야드로 축소했고 선수도 15명에서11명으로 줄였다.

또 공격권 시리즈가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팀별로 한 쿼터씩 전부 공격을 하고 다음 쿼터에 상대팀이 공격을 하게 했다가  3번의 공격권에서 5야드를 전진하면 다시 공격권을 주는 규칙으로 바뀌었다. 물론 3번째 공격에서 공격권을 넘겨주는 지금의 펀트킥 규칙도 제정됐다. 물론 이 규칙도 캠프는 후에 다시 10야드로 변경했다.

미식축구 초창기 득점 시스템은 축구처럼 1점이었지만 캠프는 필드골 5점, 트라이 포 포인트 킥은 4점, 터치다운 2점, 세이프티는 1점으로 바꿨다. 이후 점수의 비중은 지금처럼 터치다운 6점으로 변경됐다.

1906년에는 캠프가 이끄는 규칙위원회가 포워드 패스를 인정했다. 이는 그동안 인정받지 못한 규칙이었지만 1876년에 이미 포워드 패스를 시도한 선수가 있었다. 다름 아닌 캠프였다.

1900년 프린스턴대에서 발행한 자료에 따르면 캠프가 태클을 당하자 앞으로 공을 던졌고 동료인 올리버 탐슨이 이를 받아 전진해 터치다운을 했다. 프린스턴대학에서 이에 대해 거칠게 항의했지만 당시 심판은 동전을 던져 터치다운으로 결정했다.

▲ 초창기 럭비와 같은 꼴이었던 미식축구는 '미식축구의 아버지' 워터 캠프의 주도 아래 규칙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빠르게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사진은 1893년 엔드 백(End Back) 포메이션이 등장한 펜실베이니아대-코넬대전. [출처=리처드 위팅엄 저 '가을 제전(Rites of Autumn)']

◆ 의사가 꿈이었던 캠프, 미식축구로 바뀐 인생

워터 캠프, 정식 이름인 월터 천시 캠프(Walter Chauncy Camp)는 예일대가 있는 뉴헤븐에서 자라났고 17세에 예일대에 입학한 청년이었다. 잘 생긴 외모에 근엄한 인상을 줬고 얼굴을 덮은 턱수염은 항상 잘 다듬어져 있었다고 한다. 키는 약 180cm에 몸무게는 73kg 정도였고 체격은 강단이 있으며 매우 빨랐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운동신경이 뛰어났다고 한다.

본래 그의 꿈은 예일대 학부를 마치고 예일대 의대에 진학하여 훌륭한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식축구는 그의 꿈을 바꾸게 했고 오늘날 모두가 존경하는 미식축구의 아버지가 됐다.

캠프는 신입생 때 당시 주장이던 유진 베이커의 권유로 미식축구에 입문했다. 그는 시작하자마자 15명의 주전에 들었고 미식축구와 평생 헤어질 수 없게 됐다.

캠프는 대학 4년과 의대 재학 2년 등 모두 6년 동안 선수로, 주장으로 활약했다. 1882년 무릎 부상으로 미식축구 선수 생활을 그만뒀지만 의사의 꿈도 포기했다. 당시 사회에서 의사 공급이 너무 많아 인기가 떨어지자 학교를 그만두고 뉴헤븐 시계공장에 취업해 미식축구 활동을 계속했다. 캠프는 후에 이 회사 사장까지 오르게 된다.

대학 6년간 캠프는 미식축구뿐 아니라 야구부 주장이자 투수였다. 또 육상, 조정, 테니스, 수영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인 만능 선수였다.

◆ 예일대 헤드코치 취임, 미식축구 최초의 지도자

캠프는 학교를 졸업했지만 평생 예일대 부근을 떠나지 않았다. 1888년에는 최초로 예일대 미식축구 헤드코치 직함을 달았다. 당시 대학팀 어디에도 코치는 없었고 주장이 팀을 이끌었다.

'캠프의 일대기' 작가인 리처드 P. 보르코프스키에 따르면 예일대는 캠프 외에 코치 한명이 더 있었는데 바로 캠프의 아내인 앨리 캠프(Allie Camp)였다.

뉴헤븐 시계회사 뉴욕지점을 책임지고 있던 캠프는 오후에는 부인 앨리를 사무실에 앉혀놓고 예일대 훈련장으로 나오곤 했다. 얼마 뒤에는 부인마저 운동장에 나와 남편이 지적하는 말을 노트에 받아 적었다. 캠프도 자신이 직접 준비한 자료를 적어뒀다가 가끔 그 노트를 체크하면서 지도했다고 한다.

예일대 주장은 일주일에 두세 번은 캠프의 집으로 가서 훈련 상황, 전술의 정리 그리고 선수들의 포지션 등에 관하여 지시를 받았는데 부인 앨리도 가끔 날카롭고 정확한 지적을 해주었다고 한다. 당시 초창기에는 아무리 감독이라도 주장과 먼저 상의하기 전에는 직접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1889년 캠프는 자신이 작성한 '올 아메리칸(All American)'을 카스퍼 휘트니(Casper Whitney)와 같이 하퍼의 주간지(Harper’s Weekly Magazine)를 통해 발표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미식축구뿐 아니라 모든 종목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가 된다.

◆ NCAA 만든 것도 캠프…캠프의 저서는 당시 미식축구의 복음서

1906년 당시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이비대학 미식축구 관계자를 초청해 잔인하지 않고, 위험하지 않은 스포츠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캠프는 이에 미국 28개 대학의 대표를 모아 자신의 조직인 IFA을 해체하고 대학미식축구룰협회(IFRC·Intercollegiate Football Rule Association)를 결성했는데 이는 4년 후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으로 이름을 바꾼다. 캠프는 평생 신문, 잡지에 250여 컬럼을 남겼고 30여권의 저서를 출판했는데 이것들은 당시 미식축구의 복음서와 같았다.
 
1925년 캠프는 뉴욕에서 미식축구 규칙위원회에 참석하던 중을 66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죽는 순간까지도 미식축구와 같이 있었다.

■ 필자 박경규 명예교수는?

1948년생. 1966년 서울대학교에서 미식축구를 시작해 경북대학교 교수로 재임 중이던 1983년 경북대 미식축구부를 창단, 직접 감독을 맡아오고 있다. 1989년 한일대학교류전에서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다. 1999년 국제미식축구연맹 창립에 관여했고 2005~2011년 대한미식축구협회장을 역임했다. 2013년 정년 퇴임 후에도 아시아미식축구연맹 회장과 경북대 미식축구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초보자도 쉽게 알 수 있는 미식축구' '그림과 함께 이해하는 미식축구 규칙해설' 등 다수의 미식축구 관련 저서를 집필했다.

kkpark@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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