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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19) '하프파이프 전도사' 권이준에게 메달만큼 소중한 '더블 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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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19) '하프파이프 전도사' 권이준에게 메달만큼 소중한 '더블 콕'은?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5.04.14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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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주니어무대, 세계선수권 한국 최초 금메달 쾌거...국제규격 경기장 없는 불모지서 올림픽 무대 도전

[300자 Tip!] 스노보드는 1990년대 말부터 한국에서 급속도로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겨울이 되면 일반인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동계스포츠로 발전했다. 그러나 스노보드 종목 중 하나인 하프파이프는 아직은 대중들에게 낯설다. 하프파이프는 반원통형 모양의 슬로프에서 펼치는 다양한 동작과 묘기의 난이도에 따라 승부를 결정짓는 종목이다.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위험하기도 하고 시설도 부족하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하프파이프 종목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기대주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반이 된 권이준(18·판곡고)은 자신의 마지막 주니어무대를 한국 최초의 세계대회 우승으로 화려하게 장식해 시니어무대의 전망을 밝혔다. 보드를 타고 하늘을 날 때 가장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는 그에게 하프파이프는 운동이 아닌 놀이다.

[남양주=스포츠Q 글 이세영·사진 최대성 기자] 스노보드를 타다 하프파이프를 이용해 높이 뛰는 보더를 보면 가슴 속의 답답증이 확 씻어내려갈 만큼 짜릿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하프파이프를 즐겨 타진 않는다. 아주 가끔 언론을 통해 알려질 뿐, 전면에서 주목을 받은 적은 별로 없다. 대중화가 덜 된 탓이리라.

▲ 권이준은 지난 2월 한국 하프파이프 최초로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스키 종목의 하나인 스노보드는 스피드와 기록을 재는 알파인 계열과 연기를 채점하는 프리스타일 계열 등 두 가지로 나뉜다. 기문을 빠르게 통과하는 알파인 계열은 평행회전, 평행대회전, 스노보드크로스로 구분된다. 프리스타일 계열은 원통형 코스에서 벌어지는 하프파이프와 그외 다양한 코스에서 펼쳐지는 슬로프스타일이 있다.

하프파이프(Halfpipe)는 말 그대로 기울여진 반원통형 슬로프에서 5~8차례 펼치는 공중회전과 점프 등 공중연기를 5명의 심판이 기본동작, 회전, 테크닉, 난이도에 따라 10점 만점으로 채점해 합산 점수로 순위를 가리는 경기다. 3번의 라운드를 통해 순위를 정하게 되는데 선수마다 2차 시기 중 최고점수를 통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게 된다. 코스는 16~18도의 경사, 120~140m의 길이로 이뤄진다. 반원통의 너비는 16~18m, 높이는 3.5~4.5m다.

국내 황무지에 한 줄기 서광이 비쳤다. 기대주로 분류됐던 권이준이 세계주니어대회에서 한국 최초로 우승 쾌거를 이룩한 것. 권이준은 지난달 15일 중국 야볼리에서 열린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남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92점을 얻어 정상에 올랐다.

2008년 이 대회에서 김호준이 5위에 올랐던 한국 최고기록을 갈아치운 권이준은 하프파이프 세계주니어대회에서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금메달을 딴 선수가 됐다. 게다가 자신의 마지막 주니어대회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냈으니 더욱 기억에 남을 터.

매 순간 즐기는 마음가짐으로 꾸준히 훈련해왔기에 마침내 영광에 입맞춤할 수 있었다. 권이준은 “대회를 마치고 자신감을 얻은 게 가장 큰 수확”이라며 “주니어대회 첫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돼 자부심이 크다”고 웃어 보였다.

◆ 하프파이프의 매력?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움

역도, 육상 등 도전시기가 있는 스포츠를 보면 선수가 마지막 시기에서 가장 좋은 기록을 내기가 힘든데, 권이준은 세계주니어대회 당시 마지막 3차 시기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긴장하지 않고 신중하게 경기를 치르자는 마음으로 나선 게 주효했다.

“1차 시기 때 89점이 나왔고 2차 시기에서는 넘어져서 좋은 점수가 안 나왔어요. 3차 시기를 앞두고 ‘90점만 넘어 보자’는 생각으로 1차 때보다 스스로 집중하며 탔습니다. 그래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아요.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것도 처음이지만 92점이 나온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권이준이 이토록 집중해서 보드를 탈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로 즐겼기 때문이다. 권이준은 “누가 말리지 않으면 일주일 내내 보드를 탈 수도 있기 때문에 옆에서 제어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권이준이 남양주 판곡고등학교 실내체육관에서 공중에서 균형감각을 기르기 위한 트램폴린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여기에 비교적 룰이 자유로운 것도 그가 하프파이프를 즐기는 데 한몫했다. 연기 도중 넘어졌을 때 감점이 주어지는 것을 제외하고 어떤 기술을 구사해도 관계없다. 기본적으로 높이와 회전수가 점수에 영향을 미치지만 자신만이 펼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였을 때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남들이 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을 했을 때 많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더블 콕 1080(공중에서 상하좌우로 몸을 비틀어 세 바퀴를 도는 기술)을 구사하면 올림픽에서 메달권에 진입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정상급 선수들이 다 이 기술을 쓰다 보니 난이도가 낮아졌습니다. 때문에 이제는 독창적인 기술이 세계무대에서 각광받는 추세입니다.”

◆ 국제규격 경기장 하나 없는 암울한 현실

하지만 한국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의 현실은 어둡기만하다. 일단 국제대회를 치를 수 있는 규격의 하프파이프 코스가 없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3년도 채 남지 않았는데 아직 경기장이 완공되지 않았다.

때문에 권이준을 비롯한 한국 선수들은 비싼 돈을 들여 해외에서 훈련을 해야 한다. 시즌 중에는 국가대표 지원금이 나오지만 비시즌 땐 자비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권이준은 무엇보다 평창 올림픽 때 홈 어드밴티지를 얻지 못하게 된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하프파이프에 적응하려면 최소 1년이 필요한데, 대회 직전에 경기장이 완공될 가능성이 높아 외국 선수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기를 치러야 한다.

“대회는 한국에서 열리는데 해외에 나가 훈련해야 하는 현실이 아쉽습니다. 지금이라도 경기장을 세우는 것이 하루빨리 추진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권이준을 비롯해 판곡고 운동부 학생들이 교내 체육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한지혜(알파인스키·2년), 이도형(빙속·2년), 노혁준(빙속·3년), 권이준(스노보드 하프파이프·3년), 오현민(빙속·3년), 이시은(빙속·1년), 이준성(빙속·2년), 김민준(하프파이프·3년), 신준하(스포츠클라이밍·2년).

◆ 물심양면으로 힘이 되는 든든한 조력자들

비록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권이준이 선수로서 발전을 거듭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이들이 많다. 남양주 덕소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하프파이프를 타기 시작한 그는 처음엔 보드로 하프파이프에 나서는 것이 무서워 제대로 코스에 올라가지도 못했다고 한다.

훈련을 거듭하며 코스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 권이준은 기량이 급속도로 늘면서 지도자들의 눈에 들기 시작했다. 은사를 만났다. 바로 수국사 호산스님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스노보드에 입문한 뒤 선수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게 된 호산스님은 권이준을 비롯한 유망주들을 직접 지도하면서 수천 만원에 달하는 훈련비를 지원했다.

“대회를 마칠 때마다 스님을 찾아뵙곤 하는데, 이번에 금메달을 딴 뒤에는 정말 기분 좋게 만나고 왔습니다. 또 후원금을 주시는 것과 별도로 매년 ‘달마배’라는 대회를 개최하시는데, 이를 통해 많은 스노보드인들이 교류할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스님께는 항상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권이준에게 도움을 주는 이들은 또 있다. 훈련이 있을 때 묵묵히 뒷바라지하는 부모님과 권이준의 몸에 맞는 하프파이프 기술을 개발하는 김수철 국가대표팀 코치, 심리적인 부분에서 조언을 해주는 최준혁 판곡고 체육교사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기에 권이준이 샛별로 떠오를 수 있었다.

권이준의 멘탈 코칭을 해주고 있는 최준혁 교사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낙천적인 성격이다. 남들이 보기에 예민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특별히 걱정되는 부분이 없다”며 “성격만 놓고 봤을 때 대선수가 될 것 같다. 다른 선수는 경기가 잘 안 풀리면 위축되곤 하는데, 이준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는다”고 칭찬했다.

▲ 권이준이 2015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참가 증명서와 금메달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올림픽 첫 메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스노보드 하프파이프는 지금까지 두 차례 동계올림픽에 도전했지만 모두 세계의 벽을 실감한 채 돌아섰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때는 김호준이, 지난해 소치 올림픽에서는 김호준, 이광기가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모두 예선에서 탈락했다.

형들이 밟아보지 못한 올림픽 결선무대라 더욱 진출하고 싶은 열망이 강하다. 권이준은 “물론 메달도 따고 싶지만 평창 올림픽까지 남은 시간 동안 갈고 닦아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면 성적도 따라올 것이라 생각된다”며 “후회하지 않는 경기를 치르고 싶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올림픽 무대에 서려면 많은 대회에 나가면서 점수를 확보해야 한다. 대회와 훈련을 병행하는 일정이 앞으로 계속 이어진다. 그러다보면 평창 올림픽이 눈앞에 다가올 것이다.

“평창에서 메달을 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 비인기 종목인 만큼 저로 인해 하프파이프가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수들이 스노보드를 탐으로써 선수층이 두꺼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현역생활을 접으면 후배들을 양성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해 스노보드를 학문적으로 공부할 계획입니다. 선수를 그만두고도 할 일이 꽤 많을 것 같네요.(웃음)”

[취재후기] 열여덟 나이지만 자기 주관이 뚜렷했다. 또 앞으로 10~20년 후의 계획을 세워놨을 정도로 어른스러웠다. 권이준은 하프파이프 불모지에 가까운 한국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로 이바지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그 첫 단추가 바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다. 부디 그의 도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길 기대한다.

▲ 권이준은 "평창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노보드 하프파이프가 대중화 되는 데 앞장서고 싶다"고 앞으로 포부를 밝혔다.

syl015@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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