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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한국 투수들의 구속(球速) 집착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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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한국 투수들의 구속(球速) 집착에 대한 소고
  • 류수근
  • 승인 2015.04.17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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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류수근 편집국장] 해마다 8월이면 일본 오사카의 한신고시엔 구장에서는 ‘여름철 고시엔’으로 불리는 일본고교야구선수권대회가 열린다. 1915년 시작된 이 대회는 지난해 여름 제96회를 맞았다. 대회기간에는 일본 전역이 들끓는다. 각 지역별로 진행된 예선에서 우승한 49개 대표팀들이 보름동안 자존심을 걸고 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현지 주민은 물론 객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도 고향팀을 밤낮없이 응원한다. 지난해 대회 지역예선에 참가한 고교팀 수는 3917개. 이를 보면 본선 진출팀들에 대한 일본 야구팬들의 관심과 열정의 크기도 미뤄 짐작할 만하다.

역사가 깊고 규모가 크다 보니 본선 기간에는 갖가지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대개 화제의 중심에는 유망 타자와 투수의 활약상과 우승 후보팀이 중심이 된다. 하지만 지난해 대회 때는 예년과는 다른 이슈가 화제의 차원을 넘어 논쟁을 불러왔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아리랑볼’로 불리는 ‘초슬로볼(超 slow ball)’과 관련된 찬반논란이었다.

#01 2014년 일본 고시엔대회에서 벌어진 ‘초저속 슬로커브’ 논쟁 

▲  볼도 둥글고 배트도 둥글다. 그래서 야구는 변수가 많고 어렵다고들 말한다. 그만큼 용구부터 흥미진진함을 잉태하고 있다. 볼의 무게는 141.77~148.8g, 둘레는 22.9~23.5㎝. 여기에 돋아 있는 표면의 솔기는 그립에 따라 변화무쌍한 구종을 탄생시킨다.  [사진= 스포츠Q DB]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남홋카이도 대표로 출장한 도카이대 부속 제4고교 에이스인 니시지마 료타(3년)가 지난해 8월 14일 열린 규슈국제대 부속고와의 경기에서 고시엔 구장의 스피드건으론 ‘측정불가능’한 아주 느린 커브를 던졌다. 추정 볼스피드는 시속 50km대. 언론들은 느려도 너무 느리다며 ‘초슬로커브’(超 slow curve)‘라고 대서특필했다. 이날 니시지마는 4만7천여 명의 관중이 환호하는 가운데, 12개의 삼진까지 낚으며 6-1 완투승을 이끌었다.

논쟁은 그후 벌어졌다. 후지TV 아나운서 출신의 이와사 토오루 씨가 트위터에 “이런 슬로 커브를 ‘안돼’라고 말하진 못하지만, 적어도 투구술이라고는 부르고 싶지 않다”며 세상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것 같다는 의견을 올린 것이다. 그러자 인터넷이 후끈 달아올랐다. 이와사 씨의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도 일부 있긴 했지만 대부분 비판하는 댓글이었다.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활약 중인 다르빗슈 유가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는 트위터에 “슬로볼인지 슬로커브인지 투구술이 아니라는 얘기가 있다고 들었다. (슬로볼이) 나로서는 가장 어려운 볼이라고 생각한다. 발언한 사람은 투수를 해 본 적이 없겠지”라고 이와사 씨를 에둘러 꼬집었다. 이를 계기로 이와사 씨에 대한 네티즌의 공세는 더욱 격렬해졌고, 결국 그는 논란이 된 트위터 글을 삭제하고 자신의 블로그에서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다르빗슈 유는 지난 2011년 12월 텍사스 레인저스가 포스팅 시스템 사상 최고액인 5170만3411달러의 교섭권을 써내면서 메이저리그에 진출, 세계적 뉴스의 주인공이 됐던 투수다. 최고 시속 99마일(약 159km)의 강속구에다 다채로운 변화구를 구사한다. 가끔 90km대 슬로커브도 섞어 던진다.

#02 초슬로커브를 작심하고 던져야 하는 세 가지 이유

다르빗슈 유의 반박은 일본 내에 슬로커브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가장 어려운 공’이라는 그의 발언에 “슬로커브가 왜 어렵다는 거지?”라는 분석이 잇따랐다.

슬로커브를 구사하기 힘든 이유는 뭘까? 일본 언론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는 크게 포물선을 그리는 볼은 스트라이크를 잡기 어렵다는 점이다. 투수의 입장에서 볼 때 스트라이크존은 18.44m 앞에 세워져 있는 작은 세로 판과 같다. 거기에 포물선을 그리는 볼을 집어넣기는 매우 어렵다.

둘째는 정신적인 어려움이다. 일반적으로 투수는 빠른 볼로 타자를 윽박지르거나 휘는 변화구로 헛스윙을 빼앗기 원한다. 타자의 순간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슬로커브는 다르다.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타자가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다. 난타당할 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던지려면 대단한 용기, 즉 ‘배짱’이 요구된다.

셋째는 슬로커브를 던진 후에는 제구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느린 볼과 빠른 볼은 릴리스 포인트가 다르다. 아주 느린 변화구를 던진 후에 직구를 뿌리려고 하면 릴리스 포인트가 빨라지기 쉬워 결과적으로 볼이 높게 뜨기 쉽다.

니시지마는 이같은 소동을 겪은 뒤에도 경기당 1개씩 슬로커브를 던졌다. 논쟁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 모습을 보며 일본야구 전문가들은 니시지마의 실험성을 혹평하기 보다는 대담성과 냉정함을 갖춘 투구술의 성장가능성에 주목했다.

▲ 박찬호는 현역 시절 빠른볼이 투수에게 최고의 무기라는 점을 입증했다.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로 빅리그 강타선을 헛돌게 했다. 사진은 박찬호가 지난해 11월 3일 대전 한밭구장에서 열린 '2014 박찬호배 전국리틀야구대회' 결승전에 앞서 시구하는 모습. [사진= 스포츠Q DB]

#03 광속구와 핵타선을 쫓는 무한 최강 신드롬

일본의 고교투수와 관련된 일화는 ‘느린 볼’에 대한 편견과 ‘상식적인 야구’의 파괴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현대 야구는 투수에게는 ‘빠르게, 빠르게, 더 빠르게’, 타자에게는 ‘강하게, 강하게, 더 강하게’를 기대하는 경향이 강하다. 매일 안방에서 메이저리그 중계를 관람하고 내로라 하는 빅리거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우리의 눈과 귀도 그같은 흐름에 더욱 익숙해졌다.

필자부터도 현장에서 취재할 때 투수의 직구스피드를 중시하고 타자의 비거리에 주목하곤 했다. 점차 ‘최고 구속 150km의 직구’ ‘추정 비거리 130m 홈런’이라는 표현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언론들은 어느 샌가 가상의 야구만화에서 즐겨 쓸 법한 과장된 표현들을 자주 사용하게 됐다. ‘강속구’를 넘어 ‘광속구’, ‘강타선’을 넘어 ‘핵타선’에까지 이르렀다. 우리는 이렇게 ‘무한 최강 신드롬’에 빠져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빠른 볼을 잘 던지지 못하는 투수는 자칫 ‘실력 없는 투수’로 평가 절하되기도 한다.

#04 연습만으로는 던질 수 없는 150km대 강속구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구종은 직구이며, 직구의 효용은 스피드에 있다.” 이 말에 이의를 달 야구전문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시속 150km의 빠른 직구라면 투수의 손에서부터 타자까지 날아가는 데는 불과 0.45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더욱이 타자는 투구궤적의 일부만 보고 나중의 궤적이 어떻게 될지를 예측해야 한다.

따라서 타자가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은 겨우 0.25초정도다. 수십만 번의 배팅연습을 통해 연마된 타자의 반사 능력이 이를 때려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보다 더 공포스런 무기는 없다.

하지만 밤낮없이 연습한다고 해서 모두가 150km대 강속구를 던질 수 없다. 이정도의 빠른 볼을 던지려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정설이다. 타고난 자질에 땀방울이 더해져 특출난 강속구 투수가 탄생하는 것이다.

#05 느린볼 하나로 18년간 176승 2041삼진을 낚은 ‘예술구’의 달인

▲ 호시노 노부유키는 정교한 야구를 구사하는 일본프로야구에서 느린 직구와 포크볼, 슬로커브 단 3개 구종만으로 18년간 176승을 올리고 2041개의 삼진을 낚으며 '예술구'의 진수를 보여줬다. 사진은 필자가 2004년 일본특파원 시절 만났을 때 이야기를 나눈 뒤 찍은 사진이다.

지난 1980~90년대 일본프로야구에는 ‘슬로커브’를 앞세워 승승장구하던 투수가 있었다. 오릭스와 한신에서 좌완 에이스로 활약했던 호시노 노부유키(1966년생)다. ‘직구, 포크볼, 슬로커브’, 그의 레퍼토리는 아주 심플했다. 183㎝, 70㎏정도의 호리호리한 체격을 지닌 그는 직구 최고 구속이 130km에 불과했다. 전광판에는 대개 120km대 중후반의 스피드가 찍히곤 했다. 보통 투수들이라면 슬라이더의 스피드다.

여기에 90km대의 슬로커브와 110km대 포크볼을 섞어 던졌다. 슬로커브는 80km대 초반까지 오르내렸다. 이 때문에 일본 언론은 그의 피칭을 ‘예술구(藝術球)’라고 극찬했다. 슬로커브가 얼마나 느렸던지, 오릭스 시절 나카지마 사토시라는 포수는 호시노의 투구를 맨손으로 잡은 뒤 투구스피드보다 더 빠르게 호시노에게 되던졌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호시노는 30~40km에 달하는 직구와 슬로커브간의 스피드 차이를 이용해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았다. 타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헛치거나 빗맞은 타구를 양산했다. 호시노는 프로생활 18시즌 동안 통산 176승(140패)에 평균자책점(방어율) 3.64를 기록했다. 11년 연속을 포함, 무려 12시즌이나 두 자리 승수를 올렸고, 일본프로야구 역대 18위인 개인 통산 2041개의 삼진을 빼앗았다.

일본특파원 시절이던 2004년, 야구평론가로 활약하던 호시노를 만나 느린 직구와 슬로커브를 익힌 특별한 이유를 물었다. 답변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는 “나는 아무리 던져도 남들만큼 볼이 빠르지 않았다. 야구는 계속하고 싶었고, 그래서 느린 볼을 던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남들보다 훨씬 느린 직구와 변화구로 타자를 요리하기까지 시행착오도 많았다고 했다. 그것을 해결한 비법은 바로 “꾸준한 연습과 상대할 타자의 타격 성향에 대한 면밀한 사전 분석”이었다.

#06 ‘별로 의미 없는 볼’이지만 잘 쓰면 강타선도 잠재우는 ‘이퍼스볼’

‘아주 느린 볼’을 메이저리그에서는 ‘이퍼스 볼(Eephus Pitch)’이라고 부른다.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이퍼스’는 ‘별 의미 없는(nothing)’의 뜻이라고 한다.

이퍼스 볼은 투수의 손을 떠난 볼이 마치 포물선을 그리며 높이 치솟았다가 급격히 떨어진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꼭짓점의 높이가 6~7m에 이를 정도여서 낙차 폭이 매우 크다. 그 대신에 구속은 80~90km에 머무른다. 타자가 보면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이퍼스볼을 처음 사용한 투수는 1940년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뛰었던 립 서웰로 알려져 있다. 서웰은 1943년 6월1일 피츠버그의 포브스 필드에서 벌어진 보스턴 브레이브스전에서 이 볼을 공식적으로 처음 던졌다. 서웰이 300경기가 넘는 등판 동안 이퍼스볼로 홈런을 허용한 것은 단 한 차례밖에 없었다고 한다. 1946년 올스타게임에서 ‘20세기 최후의 4할타자’ 테드 윌리엄스에게 맞은 홈런이었다.

이퍼스볼은 던질 때는 천천히 팔을 휘두르기 때문에, 볼의 회전수가 적어지고, 궤적을 크게 그리며 떨어지면서 변화를 동반한다. 투구 폼이 보통과 달라, 타자는 슬로커브를 던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평소 타격 훈련이나 경기 도중에 이같은 슬로볼을 쳐볼 기회가 거의 없어, 타자에게는 “알아도 좀처럼 칠 수 없는 구종‘으로 인식된다. 다만, 경기 중에 계속 던지면 타자가 볼스피드에 익숙해져 난타당할 수 있어 자주 던지지는 않는다.

#07 한국프로야구사에 ‘느림의 미학’을 연출하고 있는 유희관

▲ 한국프로야구에서 유희관의 존재는 남다르다. 빠른볼 선호 경향이 강한 풍토에서 느린볼을 앞세워 당당히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그의 모습에서 곰같은 뚝심과 배짱이 느껴진다. [사진= 스포츠Q DB]

우리나라에도 ‘느림의 미학’을 승화시키고 있는 대표적인 ‘슬로볼러’가 있다. 두산 선발로테이션의 중추로 활약 중인 좌완 유희관이다. 130km 대의 느린 직구와 70km 대의 느린 커브를 구사하는 그는 빠른 볼 투수를 의미하는 ‘파이어볼러’에 빗대어 ‘모닥불러’로도 불린다.

2013년 5월4일 LG전에서 첫 선발로 나서 5와 1/3이닝 동안 무실점 투구로 프로 데뷔 첫 승을 거두면서 프로야구계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난세의 영웅’이라는 찬사까지 받으며 두산 선발투수의 보배같은 존재가 되었다. 2013시즌, 25년 만에 토종 좌완 10승 투수(9패 평균자책점 3.53)의 반열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12승 9패 평균자책점 4.42를 마크했다.

올해도 좋은 피칭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2일 잠실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해 7이닝 동안 4안타 1실점으로 호투하는 등 올시즌 들어 벌써 두 차례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다. 3경기에서 18과 2/3이닝 동안 7실점하며 1승1패 평균자책점 3.38을 기록중이다. 탈삼진도 18개나 낚았다.

유희관은 지극히 평범한 빠르기의 직구를 가졌지만 체인지업, 느린 커브 등의 변화구와 시간 차이를 이용한 지능적인 투구, 리듬을 빼앗는 제구력으로 타자를 제압하고 있다.

유희관도 얼굴이 알려지던 초반에는 ‘아주 느린 커브’로 인해 난처한 일을 겪었다. 2013년 7월6일 삼성전에서 대타로 나선 진갑용에게 79㎞짜리 슬로커브를 던졌다. 당시 진갑용이 불쾌해 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TV 카메라에 잡히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진갑용은 당황해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야구계 고참선배를 농락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었던 것.

유희관의 사과와, 예전부터 던져왔던 구종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해는 풀렸지만, 관습과 상식을 깨는 일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다.

#08 치솟는 팀 평균자책점과 3할타자 양산이 갖는 불편한 진실

한국프로야구의 근년 경향은 타고투저 현상이 뚜렷하다 못해 과도할 지경이다. 9개 팀이 겨룬 2014년 페넌트레이스의 팀 평균자책점은 형편없었다. 9개팀 평균 자책점은 5.21이었다. 3점대는 한 팀도 없었고 4점대가 3팀, 5점대가 5팀이었고 6점대 팀도 1팀이 있었다. 2013년 3점대 4팀, 4점대 3팀, 5점대 2팀이었던 데 비해 더 나빠졌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 기록과 견줘보면 심각성이 금세 확인된다. 미·일야구 모두 3점대 팀 평균자책점이 대부분이었고 5점대 이상을 기록한 팀은 전무했다. 일본의 경우 센트럴·퍼시픽 양리그 12개 팀 중 2점대 1팀, 3점대 9팀, 4점대 2팀이었다. 미국 아메리칸리그(AL) 15개 팀 중 5점대는 단 한 팀도 없었고, 3점대 8팀, 4점대 7팀이었다. 투수가 타석에 서는 내셔널리그(NL)는 더 좋았다. 15개팀 중 3점대 13팀, 4점대는 2팀이었다.

평균자책점이 치솟으면서 상대적으로 타격은 강세를 보였다. 지난해 한국프로야구에서 규정타석을 채운 3할타자는 무려 36명(최고 타율 0.370)이나 됐다. 지난해 일본은 센트럴 12명(최고 0.338), 퍼시픽 7명(최고 0.331)으로 양 리그를 합쳐도 19명이었다. 메이저리그는 더 적어 AL 10명(최고 0.341), NL 7명(최고 0.319)으로 3할타자는 모두 17명에 불과했다.

지난해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수는 한국 55명, 메이저리그 141명(AL 76명, NL 65명), 일본 58명(센트럴 27명, 퍼시픽 31명)이었다. 규정타석 타자 중 3할타자 비율을 계산해 보면 메이저리그 12.05%, 일본 32.75%, 한국 65.45%였다. 이 수치는 한국프로야구의 투고타저 심각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09 심각한 투고타저의 원인과 개선책은? 

▲ 꿈나무들을 올바르게 육성하는 일은 한국야구의 100년 대계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꿈나무들의 개성과 장단점을 조기에 파악해 체계적으로 지도하는 선진 교육법이 절실하다. 사진은 시애틀 매리너스의 '수호신' 페르난도 로드니가 지난 1월 20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잠실 리틀야구장에서 꿈나무들을 지도하는 모습. [사진= 스포츠Q DB]

야구는 투수놀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야구는 투수의 힘이 상대적으로 많이 모자라 보인다. 개막 초반이지만 2015시즌에도 비슷한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투·타간 공방전이 팽팽하게 이어지는 경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투타의 긴장관계 형성이 시급해 보인다. 강속구로 윽박지르는 시원시원한 투구로 타자를 요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럴 만한 투수 재원이 부족한 현실에서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느림의 미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 단기적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투구 능력을 업그레이드할 방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크존이 너무 좁다거나 볼의 반발력이 뛰어나다거나 하는 논쟁도 있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프로야구 6개팀에서 2군 감독을 경험한 박용진 스포츠Q 편집위원은 “현재 투타의 불균형은 타자의 기량은 점점 더 좋아지는데 투수의 기량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파워와 체격적인 조건이 좋아졌고 출장경험과 경기수가 늘어나면서 타자의 타격 테크닉은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투수는 경기를 많이 한다고 해서 쉽사리 향상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어 박 감독은 “빠른 볼 투수는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경향이 더 강하다. 따라서 투수들이 정교한 제구력을 키우는데 더욱 집중해야 한다”면서 “하루아침에 좋은 투수가 나올 수 없는 만큼 어릴 적부터 기본기부터 충실히 가르쳐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도자들도 더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 어릴 적부터 획일적인 스타일의 투수가 아니라 각자의 개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맞춤식 투구스타일을 키워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프로야구는 1982년 3월27일 동대문야구장에서 삼성 라이온즈와 MBC 청룡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태동했고 34시즌째를 맞고 있다. 올해는 10구단 체제 원년을 맞아 관중 800만 시대(846만)에 도전한다. 말 그대로 ‘괄목상대’다. 하지만 빠른 성공가도에 간과하고 지나온 것도 없지 않다. ‘투타의 심한 불균형’도 그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상식의 파괴’ ‘느림의 미학’ ‘개성의 발현’…. 팬들로부터 오래도록 사랑받는 야구를 위해서 이제는 새로운 화두를 던져야 할 시기는 아닐까.

<편집자주> 필자는 스포츠서울에서 체육부 기자, 야구부 차장, 연예부장을, 스포츠서울닷컴에서 편집국장을 거치면서 스포츠와 대중문화를 두루두루 취재했다. 특히 두 차례에 걸쳐 4년간 근무한 일본특파원 시절에는 주니치의 선동열 이종범 이상훈, 요미우리의 조성민 정민태 정민철, 오릭스의 구대성, 지바롯데의 이승엽 등을 전담 마크하며 한국 선수들의 성공과 좌절은 물론, 일본 야구의 겉과 속을 찬찬히 지켜봤다. 현재 스포츠Q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ryus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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