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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반짝이는' 코다 이길보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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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반짝이는' 코다 이길보라 감독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4.21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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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소리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사람은 무의식의 순간에도 소리를 듣는다. 여성감독 이길보라(26)의 휴먼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 소리’(23일 개봉)는 청각장애 부모 밑에서 건청인으로 성장하면서 느꼈던 감독 자신의 혼란과 방황, 가족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낸 영화다. 지난해 여성인권영화제 관객상, 장애인영화제 대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다큐멘터리 옥랑문화상 관객상을 수상했다. 장애라는 편견을 넘어 유쾌하고 특별한 가족의 모습을 들고 찾아온 반짝이는 새내기 감독을 17일 오후 홍대 KT&G 상상마당에서 만났다.

 

 18세에 고교 자퇴 후 ‘로드스쿨러'로 아시아 8개국 여행, 책과 다큐 내놔

그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 레주메를 훑었다. 고교 1학년을 마치고 자퇴, ‘길 위에서 배우는’ 로드스쿨러(Road-schoole)의 삶을 선택했다. 인도를 시작으로 동남아시아 8개국을 8개월 동안 여행했다. 마주한 세상을 노트에 적어 내려가는 것과 아울러 카메라에 담았다. 19세에 ‘로드스쿨러’란 제목의 책과 중편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영화는 대한민국 청소년 미디어대전 관객상, 대전독립영화제 장려상을 받았다.

습작 수준이긴 했으나 ‘이야기꾼’으로서 글과 영화작업을 계속했다. 어떤 때는 농사를 짓고, 공동체 생활을 했으며 어떤 땐 예술학교에 다니고 여행을 하는 등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했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함께할 동료에 대한 필요성으로 인해 200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에 입학했다. 탁상에 갇히는 느낌에 휴학을 한 뒤 충북 괴산의 문화예술 교육단체에서 일했다. 많은 어르신과 아이들을 만나며 자기 확신을 다졌다.

복학 후 2012년 여름부터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기획, 거침없이 찍어갔다. 2년의 제작 기간을 들여 만든 영화는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감독 이길보라는 대학 4학년 마지막 학기에 적을 두고 있다. 독특한 ‘스펙’이다.

◆ 청각장애 가족의 밝고 유쾌한 삶 조명 ‘반짝이는 박수 소리’

영화는 청각장애인 부부의 순도 높은 로맨스 기록이자 가족 관찰 다큐다. 소리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운 성장기를 보낸 20대 청춘의 자기 고백서이기도 하다.

▲ '반짝이는 박수 소리' 속 화제의 노래방 장면. 이길보라 감독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가족들이 수화로 노래를 하고 있다.

영화에는 축구선수를 꿈꿨으나 목수가 된 아빠 이길수, 교사를 소망했으나 미싱사가 된 미모의 엄마 길경희. 장난기 가득하고 사랑이 넘치는 두 사람의 장녀 보라와 대안학교 졸업 후 바리스타로 일하는 아들 광희가 빛바랜 사진과 낡은 화질의 비디오테이프 속에서, 인터뷰와 일상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어린 시절부터 일반인의 ‘들리는 세상’과 엄마 아빠의 ‘들리지 않는 세상’이 너무 달라서 그 차이에 대한 고민을 했어요. 사람들의 연민과 동정의 시선이 너무 낯설었고요. 할머니와 고모도 장애가족이라 동일한 갈증을 느끼며 문제의식을 공유했죠. 처음엔 우리 사이에 카메라가 들어오니 어색해 했지만 제가 다큐를 찍는 목적을 너무나 잘 이해했기에 금방 극복됐어요. 촬영하는 내내 엄마 아빠의 반짝이는 세상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사적인 이야기, 자신의 일기장이 되지 않고 많은 이들과 공유하기 위한 ‘대중성’은 넘어야할 허들이었다. 긴장과 수위 조절, 거리두기라는 과제는 친구들과 가편집 시사를 수시로 하며 조율했다.

◆ ‘코다(CODA)’ 접한 뒤 청각장애 문화에 천착

코다(CODA)였다. 청각 장애인 자녀(Children Of Deaf Adult)를 뜻하는 ‘코다’라는 용어를 처음 접한 뒤 충격에 빠졌다.

“그간 누가 날 특별하다고 얘기해준 적은 없었거든요. 일반인과 다르고, 장애인과 또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 건 어렴풋이 알았지만 누군가를 카테고리화 할 땐 집단적 특징이나 이야기가 있다는 거잖아요. 안도감을 느꼈어요. 두 세상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 애들이 나 말고도 있구나. 이게 하나의 문화일 수 있겠구나, 싶었죠.”

 

처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았다. 이 문화의 뿌리를 찾아가는 차원으로 한예종 영상원 워크숍에서 30분짜리 중편을 만들었다. 작품 속 엄마 아빠의 모습이 너무 밝아 오히려 보는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불쌍하고 우울할 줄 알았는데 정반대여서였다. 장편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처음엔 엄마 아빠 중심으로 찍었는데 차츰 내 이야기를 해야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님의 캐릭터가 독특하나 저와 동생이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죠. 엄마가 냉이를 캐면서 봄바람을 바라보는 장면이 마지막 촬영이었고, 이후 편집과정에 들어갔어요. 하나하나 소중한 신들인데 거리두기를 위해 덜어내는 작업에 공을 들였죠.”

◆ ‘차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슈 관심...차기작은 베트남전 소재

“이 영화로 인해 저의 정체성 혼란이나 우리 사회에 자리잡은 장애에 대한 편견이 끝나는 건 아닐 거예요. 죽을 때까지 계속할 거지만 ‘이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계속 살아간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길보라 감독은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내면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이슈에 관심이 많다. 차이에서 발생하는 이야기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로드스쿨러’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 이어 차기작인 베트남전 관련 영화와 올해 안에 발간할 에세이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자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모티프가 됐다.

 

“2명의 장애아를 출산한 시골여자(할머니)에게 염증을 느낀 잘 생긴 도시남자(할아버지)는 이혼비를 마련하려고 베트남 참전을 했어요. 생전에 참전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시다가 고엽제 후유증으로 돌아가셨죠. 희비극이죠. 그 이야기를 들은 뒤 베트남에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연합군에 의해 민간인이 많이 죽었더라고요. 역사책 속 베트남전,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모두 다른 결이라 그 차이가 무엇인지를 팔로 업 중이에요.”

개봉을 앞두고 관객과의 대화에 열심히 참가하고 있는 그에게 관객 반응을 물었다. 총기 어린 눈동자를 잠시 굴린 뒤 대답했다. “한 개인이나 가족의 이야기만으로 받아들이진 않는 것 같아요. 말로 대화를 나누는 가족들보다, 눈과 눈을 마주보며 더 소통을 잘 하는 저희 가족을 통해 소통과 관계에 대해 되돌아보는 듯해요. 이 영화가 청각장애인의 반짝이는 세상을 가이드하는, 자기 역할을 잘 해줬으면 해요.”

[취재후기] 아직은 넌픽션 영역에 관심이 많다. 재미나고 익숙한 데다 ‘장애’와 ‘차이’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자신이 해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있다. 그래서 에세이와 다큐멘터리에 공을 들인다. 깜냥이 되고 욕망이 생기면 픽션도 시도할 수 있을 거라고 담담히 말한다. 유능한 여성감독들이 속속 등장하는 영화계에 걸출한 이야기꾼이 탄생한 느낌이다. 타인에 대한 감수성마저 좋은.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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