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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이 은퇴, 유독 아쉬운 이유들 [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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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이 은퇴, 유독 아쉬운 이유들 [기자의 눈]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9.05.2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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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박한이(40·삼성 라이온즈)의 은퇴는 유독 아쉽다. 음주운전이라니. 전날 KBO리그 최고 마무리 조상우(키움 히어로즈)를 두들기고 2루에서 세리머니하더니 그게 프로야구 선수인생의 끝내기 안타가 됐다. 팬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박한이는 꾸준함의 상징이었다. 데뷔 시즌인 2001년부터 2016년까지 작성한 16년 연속 두 자릿수 안타는 삼성 선배 양준혁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과 타이기록이다. 2174개. 박용택(LG 트윈스·2411개), 양준혁(2318개)에 이은 통산 안타 3위다.

 

▲ 지난 26일 키움전. 끝내기 2루타를 치고 포효하는 박한이.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박한이는 사실 최고인 적이 없었다. 2003년 최다안타, 2006년 득점 부문에서 1위에 오른 걸 기억하는 야구팬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도 다수 삼성 골수팬들은 박한이가 이만수(22번), 양준혁(10번), 이승엽(36번)에 이은 라이온즈 4호 영구결번자로 손색이 없다고 주장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이 꼭 박한이에 해당한다.

박한이의 데뷔 타석을 똑똑히 기억한다. 2001년 4월 5일 한화 이글스와 홈 개막전이었다. 송진우 현 한화 코치를 상대로 기습번트를 댔다. 수비 좋기로 정평이 난 레전드를 상대로 박한이는 당돌하게 도전장을 던졌고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1루에 안착했다.

박한이 입단 전까지 삼성은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을 제외하곤 정상에 올라본 적이 없는 팀이었다. 강기웅, 김시진, 김성래, 고(故) 장효조, 김시진, 류중일, 이만수, 양준혁, 이승엽... 그많은 스타를 보유하고도 한국시리즈에선 늘 들러리였던 게 삼성 아닌가.

박한이는 ‘새가슴’ 삼성에 투지를 불어넣었다. 박한이 2년차인 2002시즌 지긋지긋한 준우승 징크스를 깬 삼성은 2005~2006, 2010~2014에 챔피언에 올랐다. 박한이는 늘 중심에 있었다. 남들은 평생 하나 갖기도 어려운 우승반지가 무려 7개다. 김응용, 선동열, 류중일 등 각기 다른 감독 밑에서 감격을 맛봤다. 삼성의 역사가 박한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삼성의 역사는 박한이 입단 전과 후로 나뉜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큰 경기만 되면 죽을 쒔던 사자군단 선배들과 달리 박한이는 결정적 한 방으로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곤 했다. 2010년 두산과 플레이오프 1차전 8회말 역전 3점포, 2013년 두산과 한국시리즈 5차전 8회초 2타점 역전 적시타, 같은 해 한국시리즈 6차전 7회말 쐐기 쓰리런, 2014년 넥센 히어로즈와 한국시리즈 3차전 9회초 역전 투런포 등이 대표적이다.

박한이는 실력에 비해 연봉이 턱없이 적었다. 2008년 비교적 싼 금액(2년 10억 원)에 삼성에 잔류한 그는 프로야구에 자유계약(FA) 거품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졌던 2013년에도 4년 28억 원에 도장을 찍어 ‘착한이’란 별명을 얻었다.

2010년대 삼성 왕조의 주역들이 대다수 떠났다. 박석민(NC 다이노스), 차우찬 장원삼(이상 LG 트윈스), 배영수 권혁(이상 두산 베어스), 채태인(롯데 자이언츠), 최형우(KIA 타이거즈), 오승환(콜로라도 로키스), 안지만 임창용(이상 은퇴)이 다른 유니폼을 입고 뛰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물러났다. 박한이를 바라보는 삼성팬의 마음이 유독 애틋할 수밖에.

 

▲ 신인 시절, 풋풋했던 박한이.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20년 가까이 원팀맨으로 활약한다는 건 실력은 물론이고 구단을 향한 충성심이 수반돼야 한다. 민병헌(롯데) 김현수(LG) 양의지(NC)가 두산에서, 강민호(삼성) 장원준(두산) 김주찬(KIA)이 롯데에서 떠나는 게 프로의 세계다. 박한이는 삼성밖에 모르는 ‘바보’였다.

그가 신인이었던 2001년 태어난 손동현(KT 위즈)이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 베테랑 홀대가 가속화돼 후배들이 줄줄이 짐을 싼 와중에도 박한이는 제몫을 했다. 지난 3월엔 19시즌 만에 처음으로 만루홈런도 쳤다. 조상우도 무너뜨릴 만큼 존재감이 여전했다.

화려한 은퇴식과 영구결번을 눈앞에 뒀던 박한이. 준비 없는 이별이라 안타깝다.

물론 음주운전은 용서받아선 안 된다. 당일 운전이 아닌 숙취상태의 다음날 오전 운전이라 해도 음주운전은 음주운전이다.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정지 수준인 0.065%였다. 징계 실효성과는 별개로 KBO는 조만간 상벌위원회를 열고 제재를 심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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