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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혜수 "여성도 남성도 아닌 괴물이 됐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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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혜수 "여성도 남성도 아닌 괴물이 됐다" ①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4.28 0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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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CGV아트하우스] 이민자, 버려진 아이, 갈 곳 잃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차이나타운. 그곳에서 그들은 식구가 돼 새로운 삶을 얻는다. 세상에 버려지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가며 뿌리를 내린다.

‘차이나타운’(4월29일 개봉)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대물림되는 운명을 살아가는 두 여자의 비정한 생존 드라마다. 여배우 김혜수는 이방인들의 공간을 지배하는 엄마로 드라마틱한 변신을 꾀한다. 나직한 음성으로 주술처럼 대사를 툭툭 던지는 그에게서 제사장의 형상이 어른거린다.

 

- 한국영화계에서 근래 보기 드물게 여성 캐릭터가 주도하는 영화다.

▲ 시나리오가 왔을 때 단지 여배우가 극을 이끌어 가서가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캐릭터를 제안하고 다뤄줘서 반가웠다. 여자가 권력 구조의 중심축을 이뤘다는 게 매우 신선했다.

- 출연 여부를 두고 많이 망설였다고 들었다. 어떤 이유 때문이었나?

▲ ‘차이나타운’은 굉장히 영화적이다. 낯선 이야기인데 실제 벌어지는 듯 실감나는 이야기이지 않나. 작가가 잘 알지 못하면 쓰기 힘들었을 텐데 가상의 이야기임에도 초지일관 힘이 있다. 시나리오를 관통하는 힘이 느껴졌다. 시나리오는 너무 좋고 재밌었으나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때문에 결정이 어려웠다.

- 고민의 실체가 궁금하다. 엄마라는 캐릭터 탓이었나.

▲ 영화 전체의 정서가 힘들었다. 영화의 성격과 색깔을 결정하는 메시지, 여운이 힘들었던 것 같다. 엄마라는 센 역할 하나만이 아니라, 작품이 싫어서가 아니라 알듯한데 명료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 부분이 나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 차이나타운의 절대 권력자 마우희는 모두로부터 ‘엄마’라고 불린다. 존재만으로도 모두를 압도한다. 그런데 그녀의 전사라든가 나이조차 묘사되지 않는다. 대사가 많지도 않다. 연기하기에 난공불락의 캐릭터로 여겨진다.

▲ 영화적 인물로 받아들였는데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잔상이 강렬했다. 등 뒤에서 그녀의 삶은 여전히 진행형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을 살려야겠다 싶었다. 비정한 조직의 보스로서 폼을 잡는 게 아니라 길거리에서 마주치거나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삶일 것 같은. 그러려면 엄마는 현실적이어야 했다. 하지만 말이 쉽지...(웃음) 나와 생각이 비슷한 좋은 스태프를 만나서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 영화 속 당신의 모습은 영화 ‘타짜’에서 아귀(김윤석)를 처음 봤을 때처럼 보는 내내 무섭고 전율이 일더라.

▲ 누군가는 ‘대부’의 돈 비토 코르네오네(마론 브란도)를 말씀하시던데 아귀가 훨씬 구체적으로 와 닿는다. 하하. 엄마는 일영의 삶을 훨씬 앞서서, 몇 배는 더 많이 체득한 인물이다. 오롯이 살기 위해 살생하는 게 생활인 사람이다. 여성성은 남아나 있을까? 아니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괴물 같은 사람이었으면 했다.

- 하얗게 센 머리, 얼굴 가득한 주근깨와 기미, 두툼한 뱃살 분장으로 충격을 안겨줬다. 분장팀과 논의하며 직접 설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 돈을 취해서 자신을 꾸미는 사람이 아니다. 고량주로 가글하는 여자다. 방치된 몸으로 세월을 버텨낸 사람이었으면 했다. 내부적으로 무너져서 상했을 거라 여겼기에 보디 셰이프를 바꿨다. 그렇게 해서 최적의 엄마가 나왔다. 내가 생각한 마오이의 모습은 그랬다. 그리고 배우는 ‘한다 안한다’지 ‘해볼게요’는 아니니까 고되고 흉측스러운 분장을 가릴 이유가 없었다. 촬영할 땐 이미 마오이가 머리 속에 들어와 있으니까 뭘 의식한다든가 생각하는 걸 오히려 끊어내려 했다.

 

-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첫 촬영 당시 엄마 분장을 하고 나간 순간, 몰려있던 중년 여성들이 “김혜수가 출연한다는데 어디 있는 거냐”고 수군댔다. 바로 앞에 있는데도 몰라봤다는 얘기다.

▲ (씽긋 웃으며) 못 알아보셔서 좋았다. 장치가 많은 캐릭터임에도 차이나타운에서 튀기를 원치 않았다. 그 공간에 녹아들길 원했다. ‘나를 바꿨다’ ‘변신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김혜수를 떠올리지 않게 한 것’이 재밌었다. 기쁘기도 했고.

- 지하 주차장에서 일영에게 변화를 불어넣은 석현(박보검)과 마주하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감정적으로 버거운 촬영이었을 것 같다.

▲ 주차장 신은 정서적 충격이 컸다. 이번 영화에선 배우가 뭔가를 할 때 카메라가 멀리 빠져 있곤 했다. 관조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보검이가 바로 앞에서 연기를 하는데 마치 새끼 짐승이 사냥감이 됐을 때 저항하며 맞서는 눈빛이었다. 혼자 보는 게 아까워서 클로즈업으로 갔으면 좋겠다 싶었다. 눈물이 나더라. 한쪽 구석에 가서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정신 차리자!’란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 엄마가 일영에게 하는 “증명해 봐. 네가 아직 쓸모 있다는 증명”란 대사도 쉬 잊히질 않는다.

▲ 잔혹한 말 같으나 우리는 늘 현실에서 증명하면서 살지 않나. 유치원 아이나 그들의 엄마조차 이런저런 이유와 두려움으로 인해 그리 한다.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싶을 때가 많다. ‘차이나타운’의 그들이나 현실 속 우리나 기조는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 골목길에 쓰러진 개를 삽으로 내리친 뒤 “왜 죽게 도와주지 않니? 쓸모없으면 너도 죽일 거야”란 대사도 있다.

▲ 감독이 왜 그 대사를 썼을까를 생각했다. 그게 아주 확실한 삶을 산 그 여자의 답이더라. 일영이 특별한 아이임을 알아본 뒤 자기 방식대로 후계자 트레이닝을 시켰다. 그들만의 삶에서 엄마의 방식은 빨리 끝내주는 게 자비였다. 그걸 가르쳐준 장면이었다.

- 마우희는 자신의 위에 존재했던 또 다른 엄마를 극복하고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일영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엿본다. 결정의 순간에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던 그녀가 일영을 벌해야 하는 순간 처음으로 주저한다. 그런 마음을 알리 없는 일영은 엄마가 자신을 해치려 든다 여기고 배신감에 엄마에게 맞선다.

▲ 엄마의 엄마, 그리고 엄마와 일영은 뫼비우스의 띠 같은 관계다. 각자는 없어지더라도 엄마라는 지위는 지속한다. 엄마로 있는 동안은 죽음마저도 후임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렇기에 이들의 관계는 연민 혹은 모성애가 아니라 생존이다. 마우희도 자신이 엄마에게 그랬듯, 누군가 그녀의 삶을 끝내주기를 기다렸을 수 있다.

[인터뷰] 김혜수 “배우가 최선인지 여전히 고민” ②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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