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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 결승전] '외유내강' 정정용 감독, 한국축구 밝은 미래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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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 결승전] '외유내강' 정정용 감독, 한국축구 밝은 미래 봤다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9.06.16 0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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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선수들은 할 수 있는 걸 다 수행했다. 감독인 제가 부족했다.”

정정용(50)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 대표팀 감독은 끝까지 제자들을 치켜세우는 한편 잘못은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보통 배짱으로는 할 수 없는 과감한 승부수를 연일 성공시키면서도 선수들에게는 한없이 부드럽게 다가서며 한국 축구의 새 역사를 써냈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U20 축구 대표팀은 16일(한국시간) 폴란드 우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피파) U20월드컵 결승전에서 우크라이나에 1-3으로 져 준우승을 차지했다.

 

▲ 이강인(오른쪽)이 2019 U20 월드컵 결승전을 앞두고 기자회견에 나선 이강인이 흐뭇한 미소로 정정용 감독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쉬움이 많이 남은 결과였지만 한 달 전으로만 시계바늘을 돌려봤을 때 그 누구도 이 같은 결과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았다. 한국 축구는 1983년 대회 4강 신화를 넘어 FIFA 주관 대회 사상 최고인 ‘준우승 신화’를 써냈다.

뛰어난 발재간, 날카로운 패스와 킥 등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으며 준우승에도 불구하고 골든볼(최우수선수)을 거머쥔 이강인과 연일 놀라운 선방쇼를 펼친 이광연, 전방에서 든든히 버티며 2골을 넣은 오세훈 등 선수들의 놀라운 활약이 있어 이룰 수 있는 성과였다.

그러나 정정용 감독의 공헌을 빼놓을 수 없다. 뛰어난 전술·전략은 물론이고 이강인이라는 슈퍼스타를 보유하고도 원맨팀이 아닌 ‘원팀’을 만들어낸 정정용 감독의 리더십은 이번 대회 한국 축구의 최고의 수확이었다.

◆ ‘동네 아저씨 리더십’, 부드러움의 강력함

선수로선 무명에 가까웠던 그는 2008년부터 10년 U14팀을 시작으로 연령별 대표팀을 10년 가까이 이끌어왔다. 어린 선수들을 대상으로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팀을 하나로 만드는 능력을 인정받으며 U17, U20, U23대표팀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이강인을 비롯한 적지 않은 선수들은 그를 ‘감독’이라는 호칭 대신 ‘선생님’으로 불렀다. 그만큼 선수들에게 그는 많은 가르침을 주는 스승의 존재에 가까웠다.

 

▲ 정정용 감독(가운데)이 U20 결승전 진출 확정 후 선수단으로부터 물세례를 받는 장면. [사진=연합뉴스]

 

대회 전부터 골든볼의 주인공 이강인과 함께 바이에른 뮌헨 정우영(20)에 대한 관심이 컸다. 자칫 예선부터 공헌해 온 선수들로서 위화감 혹은 허탈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 감독은 특정 선수를 언급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며 선수들을 감싸고 추켜세웠다. 이번 대회에서도 이강인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무엇보다 팀이 하나로 뭉칠 수 있게 만드는 데 주력했다. 에콰도르와 4강전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는 에이스 이강인을 교체 아웃시키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우려가 많았지만 결국 한국을 결승전까지 이끌었다.

경기장 밖에서 선수들을 최대한 터치하지 않았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훈련을 이어갔다. 늘 경쾌한 음악을 틀어 선수들이 적당한 긴장감 속에서도 유쾌하게 훈련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선수들은 “감독님을 위해 뛰어보자”고 했고 그를 두고 “착한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결승전 진출을 확정 짓고 선수들이 하나같이 물병을 들고 정 감독에게 물 세례를 퍼부은 것만 봐도 그와 선수들간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알 수 있다.

 

▲ 정정용 감독은 과감한 선수 교체와 전술 변화로 대업을 이뤄냈다. [사진=연합뉴스]

 

◆ 배짱 가득 90분, 이보다 냉철할 수가

다만 경기장 안에서는 더 없는 승부사가 됐다. 포르투갈과 조별리그 1차전 패배했을 때까지만해도 정정용 감독과 U20 대표팀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다. 남아공전 승리는 물론이고 대회 최다우승국 아르헨티나를 잡아냈을 때까지만 해도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 시선이 많았다.

한일전은 기회였다. 16강에서 숙적 일본을 만난 정정용 감독은 의외의 선택을 했다. 일본을 상대로 전반전 수비적인 전술로 맞섰다. 전반전을 지켜본 축구 팬들은 비판을 쏟아냈다. 한국의 축구는 무기력하기만 했다. 실점은 없었지만 일본을 상대로 자존심이 상할 법한 경기력이었다.

그러나 후반 엄원상을 투입하며 일본의 측면을 흔들었고 그 균열은 결승골로 이어졌다. 모든 게 의도된 것이었다는 것을 파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네갈전도 마찬가지. 전반 수비적인 태세로 ‘후반 올인’에 나섰다. 비록 선제 실점하긴 했지만 후반전 적재적소의 교체 투입과 전술 변화로 연이어 동점을 만들었다. 교체 투입한 조영욱은 연장 역전골까지 터뜨렸다.

 

▲ 16일 U20 결승전 이후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오른쪽)으로부터 준우승 메달을 수여받는 정정용 감독. [사진=연합뉴스]

 

토너먼트 라운드에서 빛난 건 그의 배짱이었다. 갈수록 커가는 부담감과는 달리 그의 전술은 더욱 파격적으로 변했다. 에콰도르와 4강전이 백미였다. 김세윤을 첫 선발로 내세운 정 감독의 선택은 적중했다. 1골 리드를 잡은 후반엔 이강인을 빼는 초강수까지 둬 불안감을 키웠지만 결국 달콤한 열매를 수확했다.

U20 월드컵 결승전 이강인의 페널티킥 선제골을 잡았지만 불운이 겹치며 3실점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에도 무릎이 좋지 않은 최준 대신 이번 대회 단 한 번도 뛰지 않은 이규혁을 투입하는 과감함을 보였다. 이로써 한국 필드플레이어 18명은 모두 이번 대회에서 피치를 밟았다.

경기 후 정 감독은 “선수들은 할 수 있는 부분을 다 수행했다. 감독인 제가 부족했다. 잘 할 수 있는 걸 못했다. 이 부분을 더 발전시키도록 하겠다”며 “지키려고만 했고 결정력에서 부족한 게 아쉽다”고 밝혔다.

그러나 선수들을 향해선 “이 대회로 한 단계, 두 단계 더 성장했다. 우리 선수들이 최선을 다 해줬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선수들 못지않게 그의 지도력 또한 성장했다. 나아가 한국 축구 지도자가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한국 축구의 밝은 미래를 예감케한 이번 대회. 정 감독의 재발견으로 더욱 기대감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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