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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배트플립과 권아솔 그리고 스포츠와 관심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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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배트플립과 권아솔 그리고 스포츠와 관심의 경제학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9.06.25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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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 광경 하나. 2015년 10월 미국 메이저리그(MLB) 아메리칸리그(AL) 디비전시리즈 5차전 7회말. 결승 스리런을 쏘아 올린 후 배트를 멀리 던져버린 호세 바티스타는 그 대가로 텍사스 레인저스 루그네드 오도어와 주먹다짐을 벌여야 했다.

야구엔 불문율(不文律)이 있다. 한자 뜻 그대로 문서화 된 규정은 아니지만 상대를 자극할 수 있는 플레이를 자제하자고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것들이다. ‘빠던(배트의 속칭 빠따+던지기)’이라 불리는 배트플립도 MLB에선 불문율로 인해 좀처럼 보기 힘든 행동이다.

한국프로야구(KBO리그)에도 불문율은 존재하지만 배트플립에 대한 입장은 다르다.

 

▲ 홈런을 친 뒤 배트플립을 하고 있는 한화 이글스 이성열. [사진=연합뉴스]

 

KBO리그에선 누가 더 잘 던지나 대결이라도 하듯 타자들은 홈런을 친 뒤 다양한 방법으로 배트를 날려버린다. 심지어 2013년 5월 롯데 자이언츠 전준우는 홈런을 직감한 뒤 ‘빠던’을 했다. 이 장면은 MLB 공식 홈페이지에 소개돼 전준우는 ‘월드스타’라는 웃지 못 할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바티스타의 경우처럼 미국에서 배트플립은 단순히 배트만을 날리는 행동이 아니다. 상대 팀과 투수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것과 다름없다. 지난 4월 18일에도 시카고 화이트삭스 팀 앤더슨이 캔자스시티 로열스 전 4회에 투런 홈런을 날린 뒤 환호와 함께 방망이를 힘껏 던져 상대를 자극했다. 홈런을 맞은 켈러는 6회  앤더슨의 엉덩이에 사구(死求)를 던졌고 벤치 클리어링까지 이어졌다.

여기까진 배트플립 이후 MLB에서 늘 있을 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앤더슨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나는 계속해서 (배트플립을) 할 것”이라며 “그것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 나는 즐거움을 위해 야구를 하고 앞으로도 에너지 넘치게 야구를 대하고 싶다”고 ‘빠던’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더 놀라운 건 MLB의 반응이었다. 이후 MLB 공식 트위터 계정은 “앤더슨, 너의 행동을 계속하라”고 배트플립에 대한 지지 입장을 나타냈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침체기를 겪고 있는 MLB 사무국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했는데 그 중 하나가 불문율 등 경직된 야구 문화로 인해 젊은 층의 흥미를 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빠던’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직접적인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MLB 사무국이 제작한 광고 영상엔 화려한 배트플립 장면이 흘러나왔고 이어 등장한 전설 켄 그리피 주니어는 “선수들이 즐길 수 있도록 내버려두자”고 배트플립 지지선언을 했다. 홈런을 친 뒤 세리머니를 일절하지 않았던 그의 입을 빌려 MLB가 변화를 권장하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다.

 

▲ 지난 4월 시카고 화이트삭스 팀 앤더슨이 배트 플립을 한 뒤 사구를 맞고(위) 벤치클리어링을 벌이는 장면. [사진=USA투데이/연합뉴스] 

 

# 광경 둘. “코너 맥그리거, 네 주제에 복싱은 무슨…. 나랑도 복싱으로 붙어볼까?” 로드FC 대표 파이터 권아솔의 말이다. UFC에서 사상 최초로 두 체급 챔피언을 차지한 맥그리거가 무패 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 복싱 대결에서 패하자 권아솔의 도발은 극에 달했다.

케이지 안보다 밖에서 자극적인 언행으로 더욱 많은 관심을 끈 권아솔. 최근 그의 언행을 둘러싼 논란이 극에 달했다. 로드FC는 대표 스타이자 라이트급 챔피언 권아솔을 마케팅 전면에 내세웠는데, 그 중 하나가 100만 달러 토너먼트, 이른바 ‘로드 투 아솔’이었다. 

챔피언 권아솔과 겨룰 상대를 찾기 위해 세계의 파이터들이 맞붙어 최종 1인이 도전자 자격을 얻는 것이다. 타이틀전 승자는 100만 달러, 한화 12억 원의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었다.

권아솔은 2년 6개월 동안 실전 경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이 넘쳤고 틈만 나면 상대 선수를 향해 도발을 일삼았다. 그러나 지난달 18일 로드FC 100만불 토너먼트 만수르 바르나위(27)와의 최종전에서 1라운드를 버티지 못했고 누리꾼들의 맹폭을 받아야 했다. 실력도 없으면서 입만 살았다는 게 공통된 비난의 골자였다. ‘주둥이 파이터’, ‘아가리 파이터’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권아솔 비난이 거세지자 정문홍 전 로드FC 대표는 단체의 부흥과 후배들을 위해 자신이 희생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권아솔은 “말은 시키셨다고 하셨는데, 전 제 생각에 맞지 않으면 누구 말도 듣지 않는다. 한국 종합격투기가 살아남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힘든 시장, 이것 아니면 사람들이 봐주질 않는다”며 “내가 아니었어도 누군가 할 것이고 했어야 할 일”이라고 전했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업체 에스트리(S-TREE)에 따르면 권아솔 경기를 전후한 지난달 13일부터 19일까지 한 주간 이슈를 평가한 순위에서 ‘로드FC’는 스포츠 부문 1위, 사회 이슈 전체에서도 2위를 차지했다. 평소 로드FC에 대한 저조한 관심을 고려할 때 ‘권아솔 효과’를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경기를 전후해 며칠간 권아솔과 로드FC 관련 키워드가 포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서 오르내렸다. 

 

 

로드FC와 견줘볼 수 있는 UFC만 보더라도 최고 파이터 코너 맥그리거는 수시로 상대를 도발하며 이슈 몰이를 한다. 이는 시청률 상승, 관중 수입 증대로 직결되곤 한다. 

“우리 모두는 ‘관심의 경제’에 살고 있다. 이 새로운 경제사회에는 자본과 노동력, 정보와 지식 등 모든 것이 충분하다. 사업을 시작하는 것, 소비자와 시장에 다가가는 것, 전략을 세우는 것, 웹 사이트를 만드는 것, 광고를 제작하는 것도 쉽다. 부족한 것은 바로 사람의 관심이다.”

토머스 데이븐포트가 자신의 저서 ‘관심의 경제학’에서 설파한 내용이다. 과거 생산의 3요소가 토지, 자본, 노동이었다면 오늘날에는 그런 유형의 요소 대신 무형의 요소들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으며 그 중 가장 중요하고 희소한 요소는 관심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MLB의 배트플립에 대한 과감한 발상의 전환도, 권아솔의 날카로운 독설 마케팅도 관심의 경제학 차원에서 본다면 생존을 위한 너무나도 자연스런 발로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우리 주변에는 늘 있어왔다.  

유럽 축구의 명장 조세 무리뉴는 과거 아르센 벵거 전 아스날 감독, 안토니오 콘테 전 첼시 감독과 거친 설전을 벌이며 양 팀의 라이벌전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 바 있다. 

국내에서도 거침없는 입담으로 핫한 관심의 대상이 된 이들도 없지 않다. 

과거 이천수가 눈에 띄었던 축구계에선 요즘에는 이승우(헬라스 베로나), 야구계에선 유희관(두산 베어스), 박용택(LG 트윈스), 농구계에선 이대성(울산 현대모비스)과 최준용(서울 SK) 등이 인터뷰 때마다 솔직하고 과감한 발언으로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들은 성적을 내지 못할 때면 평소 튀는 언행을 못마땅해 하던 누리꾼들의 “입방정 떨 때부터 알아봤다”는 식 무수한 비판과 비난의 화살을 온 몸으로 맞기도 한다.

“팬들은 쇼를 보기 위해 야구장을 찾으며 어렵게 번 돈을 쓰는데 팬들에게 왜 그런 걸 보여주면 안 되냐.”

‘빠던 열사’가 된 앤더슨이 한 말이다. 

행간의 의미를 읽자면, 프로스포츠는 팬들이 소비를 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할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팬 서비스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21세기 스포츠는 새로운 도전과 실험에 직면했다. 점점 즐길 거리와 볼거리가 차고 넘치는 요즘, 스포츠는 과거의 인기와 영광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운 시대가 된 지 오래다. 인기 스포츠마저 그렇다면 비인기 스포츠의 현실은 더욱 열악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스포츠의 기본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 한 ‘빠던’ 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허용돼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한 스포츠평론가는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해선 스포츠 종목 간의 대결 시대는 끝났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다양해지고 거대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스포츠에 대한 관심 총량도 줄어들고 있다. 스포츠만의  드라마틱한 승부 못잖은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면서 “이제 스포츠도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게 모든 면에서 진화해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어느 종목이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고 진화하느냐에 따라 기존 판도는 물론 생존 여부도 갈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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