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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수구 경다슬 골, 대패에도 광주벌 달아오른 이유는? [SQ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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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수구 경다슬 골, 대패에도 광주벌 달아오른 이유는? [SQ이슈]
  • 안호근
  • 승인 2019.07.1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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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0-64 참혹한 대패. 이어진 경기 결과도 1-30 패배. 그러나 광주 남부대 수구경기장 분위기는 마치 한국이 승리라도 한 듯 했다. 짜릿함을 만끽하기엔 단 한 골이면 충분했다. 스포츠에서 모든 가치가 결과에만 담겨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16일 오전 2019 국제수영연맹(FINA)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러시아와 여자수구 조별리그 2차전이 광주 광산구 남부대 수구경기장. 4쿼터 막판 한국 선수들과 관중석에선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결과는 1-30 대패. 무엇이 이리도 기뻤던 것일까.

지난 14일 강호 헝가리에 0-64로 무릎을 꿇었던 여자 수구 대표팀이다. 2차전 러시아를 상대로도 힘겨운 승부를 펼치다 경기 막판 단 한 골을 넣었을 뿐이다.

 

▲ 경다슬(오른쪽)이 16일 러시아와 2019 국제수영연맹(FINA)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여자 수구 B조 2차전에서 한국의 첫 골을 선사한 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이 한 골은 마지막 자존심을 지킨 것보다 훨씬 큰 의미가 담겨 있었다. 어쩌면 애초에 자존심이란 건 선수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시곗바늘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는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3년 7월에 유치 확정됐다. 불모지와 같은 한국에서 출전을 고려했다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집행부 인사 비리 등으로 얼룩진 대한수영연맹은 제 구실을 하지 못했고 지난해 5월 새 회장을 뽑은 이후에도 수구 대표팀 결성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급물살을 탄 단일팀 구성 흐름 속에 조직위원회와 연맹은 이를 추진했지만 북 측의 거부로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 경다슬의 첫 골이 터지자 감격에 겨워하고 있는 한국 선수들. [사진=연합뉴스]

 

대회 개막을 2개월 앞두고 부랴부랴 대표팀을 구성했다. 전문 수구선수는 전무하고 13명 모두 수구의 영법과 큰 차이가 있는 경영 출신이었다. 심지어 성인선수는 2명, 나머지는 중고등학생들로 구성된 ‘외인구단’이었다.

일각에선 이토록 경쟁력이 없는 팀이라면 구색 맞추기용이 아닌 불참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지만 경기력 부진에 대한 화살을 선수들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큰 수준 차이는 선수들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헝가리에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고도 선수들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3개에 그쳤던 슛은 30개로 크게 늘었고 12개의 슛을 날린 경다슬(18·강원체고)은 한국 여자 수구 역사상 첫 골의 주인공이 됐다.

 

▲ 경기 막판 드디어 전광판에 찍한 한국의 1득점. [사진=연합뉴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다슬은 경기 후 “0-64로 지고 난 후에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며 “선수들끼리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고 밝혔다.

여자수구의 험난했던 준비 과정 등 스토리가 알려지며 경기장을 직접 찾아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는 이들이 많았다. 선수들의 가족들은 물론이고 광주시교육청 직원과 전자공고와 첨단중 학생·교직원 1200여명이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에게 힘을 전달했다.

실망스러운 결과일 수 있지만 그토록 고대하던 한 골을 얻어내자 관중석에선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 경기 후 선수들을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있는 관중들. [사진=연합뉴스]

 

해외 외신들도 주목했다. 한국 여자 수구의 역사를 쓴 경다슬은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러시아 방송의 요청에 인터뷰에 응했다. 러시아 기자는 경다슬의 나이와 수구 경력, 득점 소감 등을 물으며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경다슬의 마지막 발언에서 여자 수구 대표팀이 이번 대회에 나서는 각오와 마음가짐을 잘 읽어볼 수 있다. 그는 “이번 골은 나 혼자 잘해서 나온 게 아니라 팀원 모두가 노력한 결과”라며 “남은 경기에서는 다른 친구들이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전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창대한 끝을 향해 첫 발을 내디딘 한국 수구. 결코 순탄치 않았기에 그 힘겨운 과정을 딛고 헤엄치고 있는 이들을 향한 응원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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