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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극 '차이메리카' 두 주역 서상원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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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극 '차이메리카' 두 주역 서상원 최지훈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5.01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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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노민규기자] 두산아트센터가 진행하는 ‘두산인문극장’의 올해 주제는 예외적인 사건의 연속인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철학적 담론을 제시하는 ‘예외’다. 6월29일까지 연극·영화·전시·강연이 이어진다.

이 가운데 영국 여류작가 루시 커크우드의 국내 초연작 ‘차이메리카’(5월16일까지·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는 거대한 스케일의 스토리텔링,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메시지, 혁신적인 연출, 자신에 차 있으면서 섬세한 연기로 올해 연극계가 가장 주목하는 작품이다.

세계 경제·정치를 주도하는 중국과 미국에 대한 이야기인 이 연극은 중국 천안문 시위를 통해 만난 젊은 미국 사진기자 조 스코필드와 중국 지식인 장린의 20여 년에 걸친 우정과 이들의 엇갈리는 삶을 통해 동서양, 중미 관계를 은유적으로 묘파한다.

▲ 연극 '차이메리카'의 서상원(왼쪽)과 최지훈

◆ 혁신적 연극 ‘차이메리카’에서 美 사진기자·中 지식인으로 연기호흡

“나와는 다르게 연기에 접근해 오신 분 같아 내 연기를 불편해하지 않을까 조심했는데 연습 2주가 지나면서 걱정이 다 사라졌어요. 자신이 먼저 망가지는 스타일이에요. 하하. 선배님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최지훈)

“의지가 많이 되는 믿음직한 후배예요. 제가 처음에 몽땅 부어놓고 깎아나가는 스타일이라면 지훈이는 철저히 자기 스텝에 맞춰 안배를 하는 배우죠.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킨 뒤 들이대는 스타일인 거지.”(서상원)

계절의 여왕 5월을 무색케 하는 눈부신 웃음이 흩뿌려졌다. 2시간30분의 기나긴 러닝타임 동안 무대를 혼신의 힘으로 꽉 채우는 조 역 서상원(49)와 장린 역 최지훈(41)을 4월의 마지막 날, 공연장에서 만났다. ‘차이메리카’를 통해 처음으로 한 무대에 선 ‘연극계 맏형’과 ‘팔팔한 중견’은 어느 새 서로에게 푹 빠진 선후배이자 술친구가 돼 있었다.

“철저하게 많은 공부를 한 작가로 인해 희곡이 참 잘 짜여 있었어요. 천안문 광장에서 탱크를 막아선 남자 사진 한 장을 모티프로 세계정세를 모두 녹여내 사실인 것처럼 느끼게 한 점이 대단했죠. 한 편의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구나,란 생각도 들었고요.”(서)

“처음에 분량이 엄청나서 한 번에 다 읽지를 못했어요. 이 방대한 내러티브를 주어진 시간 안에 무대화해서 관객을 만날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과연 연극화할 분량인가, 관객이 거대한 이야기를 오롯이 몰입해서 볼 수 있을까를 많이 걱정했죠.”(최)

◆ 서상원 “속도감과 객관적 느낌에 공들여” 최지훈 “감정 순도 유지에 집중”

조는 자신이 카메라에 포착한 양손에 검은색 비닐봉지를 든 채 탱크를 온몸으로 가로막은 일명 ‘탱크맨’이 누구이며,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20여 년에 걸쳐 추적한다.

 

성공에 대한 집착으로 출발하지만,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정치인, 자본의 시녀가 된 미디어 종사자, 중국의 인권탄압으로 불법 체류자가 된 망명자들을 만나며 명분만 남은 미국적 가치와 마주하게 된다. 조를 연기하는 서상원은 극단 미추, 국립극단을 거친 관록의 배우답게 속사포 대사와 연기톤의 강약조절을 원숙하게 해내며 무대를 장악한다.

“조는 미국이란 나라의 아이덴티티가 함축적으로 들어간 캐릭터예요. 캐릭터의 성향이 외적으로 두드러지면 연구하고 만들어나가면 되지만 상황과 희곡 자체가 캐릭터를 그대로 말해주기에 이번엔 그런 과정이 필요 없었죠. 다만 ‘대사량이 많고 연기 시간이 길어서 관객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저돌적으로 밀고 나가야겠다’란 판단은 했죠.”

등퇴장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므로 템포를 놓치지 않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특히 이미 대사와 상황이 완성도 높게 만들어져 있으므로 캐릭터를 믿고 임했다. 굳이 표현하려하기 보다 객관적 느낌을 유지하는 게 관객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여겼다.

천안문 광장에서 푸르른 청춘의 이상과 사랑을 유린당한 채 낡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은둔자처럼 살아가는 장린은 천안문 사태 이후 질식 상태에 이른 중국 지식인의 창백한 표상이다. 오로지 형과 이웃집 노파, 미국에 있는 조와 e-메일을 주고받으며 세상과 소통하는 그는 극의 비밀을 간직한 ‘키 맨’ 노릇을 한다.

극단 작은신화 단원인 최지훈은 매회 감정을 한 톨 남김없이 쏟아내며 내밀한 심리묘사를 무대 위에 구현한다. 커튼콜 때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장린은 23년 동안 매일 똑같은 날을 살고 있는 사람이에요. 평생 가장 괴로운, 최악의 날을 살아가는 상태가 안 좋은 인물이죠.(웃음) 한 달 동안 매일 2시간30분 내내 그 순도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 표현하기가 힘드니까. 공연이 끝난 뒤 서상원 선배와 술을 마시면서 치유를 하곤 하죠.”

 

최용훈 연출은 그에게 “밀도 있는 공연을 위해 포즈를 쓰지 마라. 네게 할애된 포즈 시간은 총 5초다!”라는 어려운 주문을 내렸다. 공연은 2시간30분이지만 체감시간이 중요하므로, 내면연기를 하면서도 속도감을 찾게 해준 금과옥조였다.

◆ '맏형' 서상원, 배우들 사이 헤집고 다니며 연기 조율하는 선장 역할 톡톡히 

최지훈은 ‘차이메리카’ 순항에 있어 서상원의 공을 거듭 강조한다. ‘서상원 앓이’에 빠진 듯 수줍음과 하트가 얼굴 위를 교차한다.

“선배가 연습과정에서 몸으로 보여주니까 자극을 얻고 따라하게 됐어요. 또 극중 조만이 유일하게 모든 배역을 만나요. 상대 배우가 어떻게 해도 잘 받아내는 힘이 대단하시죠. 다 처음 공연하는 배우들인데 그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자신의 임무를 놓치지 않고 조율해내는 선장 같은 선배예요.”

이에 서상원은 “성격이 그리 좋진 않다”고 손사래를 친다.

“까칠한 면도 있는데 내 주장을 미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접점을 만들기 위해 우회로를 찾기도 하죠. 상대와 부딪히면 내가 불편해지니까. 그런데 이번엔 연출, 배우들과의 앙상블이 너무 좋아서 행복한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공연이 끝나면 집에 가기 싫어서 술 한잔 걸치는 등 대학시절 연극할 때의 느낌을 오랜만에 맛보고 있어요.”

◆ “한 편의 여행과 같은 작품 됐으면” “세상과 사회이야기 들여다볼 수 있기를”

‘차이메리카’는 지난해 영국 올리비에 어워드 작품상 무대미술상 조명상 음향상, 2013년 영국 평론가협회상 작품상 연출상 무대미술상과 영국 이브닝 스탠더드 어워드 작품상을 휩쓸었다. 한국 공연은 성수정이 번역하고, 극단 작은신화 대표 최용훈이 연출을 맡았다.

 

1989년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 민주화 시위로부터 시작해 2011년 뉴욕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로 마무리하며 타락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민낯, 그 속에서 붕괴돼가는 인간군상과 상실한 가치를 예리하게 파헤친다.

“‘차이메리카’를 통해 세상과 사회를 보는 눈이 열리지 않을까 싶어요. 사회나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넘쳐나고, 정치참여도 옅어지는 현실이잖아요. 더불어 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접하게 되면 분명 얻는 게 많을 겁니다. 여행을 자주 다니면 시야가 넓어지듯, 이 작품이 관객 여러분께 하나의 여행과 같았으면 하는 바람이죠.”(서)

“연출께서 ‘3개의 무대를 사용하고 있는데 관객이 다른 무대를 보려면 불편하다. 보려고 해야만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늘 우리 주변에선 굉장히 중요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놓치게 된다는 의미라고 봐요. ‘차이메리카’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일들, 우리가 들여다보지 않아서 몰랐던 것을 담고 있죠. 이 안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셨으면 합니다.”(최)

열정과 패기 넘치는 대학시절부터 연극에 몸을 실었던 두 배우의 연기 경력을 합하면 얼추 50대 중년이다. 이들이 현재 마음에 품은 ‘배우’의 의미는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회사원인 아내가 늘 저를 부럽다고 해요. 배우는 제가 유일하게 잘 하면서 편하게 하는 직업이죠. 무대에 서 있는 순간만큼은 세속의 고민이 모두 사라지니까 행복하죠. 배우로 살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가끔 ‘좋은 배우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죠.(서)

“어릴 땐 배우가 특별하거나 예외적 존재라고 여겼어요. 살아가면서 그렇지 않더라고요. 세상 여러 직업 중 하나이고, 삶을 잘 살아야 좋은 연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일상을 방기하거나 무책임하게 임한다면 어리석은 거죠. 소망이 있다면, 배우는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야하는 직업이니까 행복한 배역을 많이 맡았으면 해요.”(최)

 

[취재후기] 두 사람은 연극판의 정예 멤버들이다. 꽤 많은 배우들이 연극무대에서 연기력을 벼린 뒤 드라마와 영화로 넘어가 활약하는 현실에서 묵묵히 연극 외길을 걷는 ‘순정파’ 40대 기수다. 서상원은 ‘고래’ ‘태’ ‘뇌우’ ‘햄릿’ ‘밤으로의 긴 여로’ ‘보이체크’ ‘디 오써’에 출연했고 2008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남자연기상(테러리스트 햄릿), 2010년 문광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최지훈은 ‘만선’ ‘숲속의 잠자는 옥희’ ‘알세스티스’ ‘행복’ ‘황구도’ ‘동주앙‘ ’변신‘으로 관객과 만나왔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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