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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서울국제여성영화제②] '벌새' 김보라 감독, '고양이를 부탁해' 정재은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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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서울국제여성영화제②] '벌새' 김보라 감독, '고양이를 부탁해' 정재은 감독을 만나다
  • 주한별 기자
  • 승인 2019.09.11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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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주한별 기자] '벌새'가 '고양이'를 만났다.

'벌새'의 관객 수가 4만 명을 넘어섰다. 최근 한국 독립영화의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인상적인 성취다. '벌새'는 지난 한 해 동안 무려 25개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한국 영화의 미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벌새'의 김보라 감독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도 있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벌새'를 상영한 뒤 GV 시간을 가졌다. 김보라 감독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여성 영화인 지원 프로젝트인 '피치&캐치'에 함께한 인연 덕이다.

특히 이번 관객과의 대화에는 2001년 개봉하며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이 진행자로 나섰다. 전석이 매진되는 뜨거운 관객들의 열기 속, 두 여성 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

# '고양이를 부탁해' 그리고 '벌새'

 

[사진 = 스포츠Q]
[사진 = 스포츠Q]

 

김보라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 앞서 정재은 감독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김보라 감독은 "'고양이를 부탁해'가 개봉했던 당시 그 영화를 봤던 영화과 여학생들은 (정재은 감독님께) 빚지고 있는 부분이 있다. GV를 진행해 주신다고 해서 반가웠다"고 감사함을 드러냈다.

정재은 감독의 벌새에 대한 찬사도 이어졌다. 정재은 감독은 "제가 궁금한 점을 모두 다 질문하려고 한다면 밤을 샐 것 같다. 그만큼 인상적인 영화"라며 "그래도 몇 가지 질문만 하고 관객분들께 마이크를 넘기겠다"고 말해 현장에 웃음을 자아냈다.

'벌새'는 2018년 첫 공개됐지만 극장에서 관객을 만난 것은 1년 만이다. 국내 관객을 공식적으로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은 셈이다.

김보라 감독은 "해외 영화제를 계속 다녀 한국을 떠나있었다. '벌새'와 함께 세계 곳곳을 여행한 거다. 국내 개봉을 하게 되니 굉장히 떨렸다. 영화 개봉 이후 많은 관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의 우정을 나누는 기분이 되었다"며 개봉 이후 뜨거운 반응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정재은 감독의 제목 '벌새'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김보라 감독은 "벌새는 세상에서 제일 작은 새지만 1초에 90번의 날갯짓을 한다"며 "포기하지 않는 새의 여정이 은희의 여정하고 닮았다고 생각했다. 벌새 CG를 넣으려고 했는데, 안넣기 천만 다행이다. 돈도 많이 들고 어설플 뻔했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 은마아파트, 그리고 왼손잡이… 영화 비하인드

 

[사진 = 스포츠Q]
[사진 = 스포츠Q]

 

영화 '벌새'는 1994년 대치동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 속 은희의 집은 최근 재개발 이슈가 한창인 대치동 은마아파트다.

정재은 감독은 "새 아파트를 찾는 게 아니라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에서 찍은 결단성이 대단하다"며 "영화 속에서는 굉장히 낡은 아파트로 나오지만 실제 1994년 당시에는 낡은 아파트가 아닌 신식 아파트였을 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촬영한 과감함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이에 김보라 감독은 "제가 은마아파트를 페인트하고 싶었지만 예산이 없었다"며 현실적인 이야기로 대답해 관객들의 공감과 웃음을 자아냈다. 김보라 감독은 "아파트뿐만 아니라 아파트 상가 단지도 당시 그대로다. 영화 '벌새'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대치동이 딱 맞았다. 서울의 곳곳을 뒤져 영화의 톤을 흐트리지 않는 방향으로 장소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영화를 본 관객이 가장 많은 의구심을 가지는 부분이 있다. 바로 극중 주요 인물인 은희와 영지 두 사람 모두 왼손잡이기 때문이다. 영화적 장치냐는 질문에 김보라 감독은 "그건 우연이었다"고 답했다.

김보라 감독은 "해외 영화제에서는 한국 사람들은 모두 왼손잡이냐고 묻더라.(웃음) 배우 두 분 다 왼손잡이었다. 은희가 왼손을 쓴다고 할 때 놀랐는데, 새벽 씨가 왼손잡이인 걸 알았을 때 정말 마법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 2012년 첫 기획, 7년의 기다림

'벌새' 시나리오집 [사진 = 인터파크 도서]
'벌새' 시나리오집 [사진 = 인터파크 도서]

 

영화 '벌새'를 김보라 감독이 처음 기획한 것은 2012년이다. 이후 2013년 시나리오 초고가 나왔다. 이후 5년이 지난 2017년에야 영화 '벌새'는 제작되게 된다.

하나의 생각이 영화가 될 때 까지 많은 기다림이 있었다. 김보라 감독은 "그 기간이 힘들기도 했다. 영화의 운명이었나,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보라 감독이 마냥 기다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주변 다양한 지인들에게 시나리오 모니터링을 부탁했다. 개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삼되 감독의 자아를 배제하고 공동의 경험을 영화 내에 끌어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김보라 감독은 "한국 친구들뿐만 아니라 미국, 아시아의 친구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60대 후반 교수님과 중학생 친구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자문을 구했다. 정체성이 다양한 사람들의 모니터를 받아 이야기가 점점 매끄러워졌다"며 "친구들이 저에게 착취를 많이 당했다.(웃음) 너무 감사하다"며  지인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했다.

정재은 감독은 "시나리오가 빈틈이 없었다"며 "시나리오를 쓰며 많은 시간을 보낸 게 느껴졌다. 그래서 완성도가 남달랐다"며 '벌새'의 치밀한 시나리오를 칭찬했다.

*'벌새'는 개봉과 동시에 시나리오집을 출판했다. '벌새' 시나리오집에는 본편에 없는 편집 장면이 포함되어있다. 엘리슨 벡델과의 대담, 소설가 최은영과 영화평론가 남다은의 감상평도 수록되어 있다.

정재은 감독은 영화 '벌새'에 대해 "영화를 보며 이렇게까지 한 인물의 내면에 들어간 적 있었나 싶었다. 놀라운 데뷔작이다"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영화 '벌새'는 여성 감독의 여성 중심 이야기다. 국내 영화 팬들이 기다려왔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 영화의 위기가 언급되는 가운데, '벌새'의 날갯짓이 한국영화계의 새로운 활력을 가져올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진행된 '벌새'와 '고양이'의 만남이 뜻 깊은 시간이 됐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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