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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9시간의 고진감래 여정, '덕업일치' 기자의 사녹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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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9시간의 고진감래 여정, '덕업일치' 기자의 사녹 체험기
  • 김지원 기자
  • 승인 2019.09.23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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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소감> 한 번도 안 가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는 사람은 없다.

[스포츠Q(큐) 김지원 기자]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가 보지 않고는 그 실상을 알 수 없다는 '음악방송 사전녹화'에 기자가 직접 다녀왔다. '사녹'에 가 본 팬이라면 공감 가는 내용일 것이고, '사녹'에 가 본 적 없는 팬이라면 매뉴얼이 될 수도 있다. ‘덕후’ 기자의 신상 보호를 위해 어떤 가수의 사전녹화 방청에 갔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며 약간의 각색을 포함했다.

사전녹화 신청을 체험하고 있는 방탄소년단 RM [사진 = 방탄소년단 공식 유튜브 채널]
사전녹화 신청을 체험하고 있는 방탄소년단 RM [사진 = 방탄소년단 공식 유튜브 채널]

# 방청 D-1 : 긴장감 넘치는 ‘폼림’, 서버 시간 체크는 필수

지난달 00일에 있었던 아이돌 그룹 A의 MBC '쇼 음악중심' 사전 녹화 참가를 위해 기자는 전일 오후 7시에 '폼림'을 했다. '폼림'이란 '폼'+'올림픽'의 줄임말로 온라인 양식 제출을 이용해 선착순 번호를 매기는 방법이다. 선착순 순번을 향한 경쟁이 마치 올림픽과 같아 이 같은 별칭이 붙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폼림'에는 이름, 생년월일, 휴대폰 번호, 팬클럽 가입 여부(기자는 과거 콘서트 선 예매 등의 혜택을 위해 아이돌 그룹 A의 팬클럽에 가입한 이력이 있다.) 등을 기입해야 한다. 개인 정보를 기입한 후 7시 00분 00초에 맞춰 양식 제출 버튼을 눌렀다. 몇 초라도 늦었다간 정해진 사녹 관람 인원에서 밀릴 수 있어 긴장감이 넘쳤다. 다행히도 아슬아슬하게 선착순 500명 안에 들어 다음 날 사녹에 참여할 수 있었다.

# AM 5:00 : ‘새벽 사녹’ 팬들을 위한 카페가 있다?

다음날 아침 8시까지 방송국이 있는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로 가기 위해 주말의 시작인 토요일 새벽 5시에 기상했다.(상암에서 2시간 거리에 거주 중이다.)

사녹 신청은 팬카페에 가입돼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철저한 신원 검사가 뒤따른다. 사진과 이름, 생년월일이 적힌 신분증, 공식 팬클럽 회원카드, 최근 발매 앨범, 소속사에서 공식 판매한 응원봉, 그리고 음원 구매 내역서가 필요하다.

SBS MTV '더쇼', Mnet '엠카운트다운', MBC '쇼음악중심' 등 사녹을 진행하는 방송국이 모여 있는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에는 사녹에 참여하는 팬들을 위한 공간이 존재한다. 이미 팬들 사이에 잘 알려진 이 곳은 사녹이 있는 화, 목, 토요일엔 새벽 5시에 문을 연다. 이 곳은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판매하는 곳이지만, 음원 구매 내역서를 깜빡하고 소지하지 못한 팬들을 위해 인쇄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기자는 이 곳에서 급하게 음원 구매 내역서를 인쇄해 다행히 사녹에 참여할 수 있었다.

물품 체크 후 입장번호 스티커와 포토카드를 받을 수 있다. [사진 = 인스타그램 @1ove4eva.wz]
물품 체크 후 입장번호 스티커와 포토카드를 받을 수 있다. (세븐틴 우지) [사진 = 인스타그램 @1ove4eva.wz]

 

# AM 8:00 : 기약 없는 ‘공복’ 기다림을 버티면 만나는 ‘내 가수’

이미 줄을 서고 있는 다양한 국적의 팬들 사이를 헤치고 "몇 번이세요?"를 여러 번 물어본 후에야 제자리를 찾아 설 수 있었다. 한숨 돌리는 사이 오전 8시가 됐고, '팬 매니저'가 "인원 체크를 시작할 테니 늦게 온 사람은 줄에 끼워주지 마라"고 외친 후, 번호와 물품 체크를 시작했다. 서너 명의 스태프가 약 500 명에 달하는 인원의 이름, 생년월일과 소지 물품을 체크하는 데에는 한 시간 가량이 소요됐다.

손등에 입장번호가 적힌 스티커를 붙이는 것으로 인원 체크가 끝났다. 하지만 인원 체크가 끝났다고 예정 시간에 바로 입장하는 것도 아니었다. 앞서 사전 녹화를 진행한 팀의 녹화가 길어져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미리 공지된 입장 시간은 9시 30분이었으나 기자를 포함한 A의 팬들은 10시가 넘어서야 입장을 시작했다.

카메라 리허설 시작 전, 무대에 선 가수와 관객석에 앉은 팬의 짧은 대화 시간이 있었다. 가수가 팬들을 향해 인사를 건네고 "식사는 하셨냐"고 묻자 관객석에선 "아니요"라는 대답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방송국이 위치한 상암에 아침 8시에 도착해 10시가 넘은 시각에 입장했으니 아침도 못 먹고 나왔을 법하다. 옆 자리에 앉은 한 팬은 "가수가 매번 물어보는데 매번 못 먹고 온다. 항상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이다"고 설명했다.

카메라 동선 및 조명 테스트를 위해 이뤄진 '카메라 리허설'이 끝나고 본 녹화가 시작됐다. 팬 매니저가 관객석에 앉은 팬들에게 "응원법을 크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촬영 감독은 앞 자리 팬들에게 "응원 봉을 높이 들어달라"며 카메라 화면에 원하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더 높이"를 외쳤다.

엑소 백현이 팬들을 위해 준비한 음료 '역조공' [사진 = 인스타그램 @0522_cotton]
엑소 백현이 팬들을 위해 준비한 음료 '역조공' [사진 = 인스타그램 @0522_cotton]

 

# AM 11:00 : 아이돌이 밥은 안 먹여줘도 ‘커피’는 먹여준다?

두 차례에 걸친 본 녹화가 끝나고 스튜디오를 빠져나오자 "미니 팬 미팅이 있으니 공원으로 모여달라"는 안내가 들렸다. 미리 안내된 공원으로 가자 사녹 전에 배정받은 번호에 맞춰 줄을 서고 있는 팬들의 모습과 함께 일명 '대포'로 불리는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들고 있는 팬들의 모습이 보였다. 500 여 명에 달하는 팬들이 공원 바닥에 줄지어 앉고 마이크와 스피커를 세팅하고 나서야 미니 팬미팅을 시작했다.

“아침부터 와 줘서 고맙다”고 전한 가수들의 인사로 시작된 팬 미팅은 한 시간 가량 진행됐다. 햇빛이 따가워 아플 정도로 느껴지는 더운 날씨에도 팬들은 사진이 프린트된 부채, 슬로건 등 개인 응원도구를 들고 가수들을 응원했다. 이날 미니 팬 미팅의 마무리는 가수 측에서 준비한 ‘커피 차’였다. 팬들은 미니 팬 미팅이 끝난 후 손에 음료 한 잔 씩을 들고 해산했다.

이날 기자는 새벽 5시에 기상해 오후 2시가 넘는 시간에 귀가했다. 장장 9시간에 달하는 여정이었다. 서울과 먼 지방에 거주하는 팬은 전 날 밤 고속버스나 기차를 타고 오기도 한다는 여담에는 혀를 내두르게 됐다.

과거 새벽부터 녹화 시간까지 방송국 앞에서 내내 대기해 입장 인원을 즉석에서 정하던 시스템보다는 다소 편리해졌지만 여전히 팬들은 방송국 앞 맨 바닥에 주저앉아 두어 시간 넘게 기다린다. ‘그렇게 힘들면 안 가면 될 일’이라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날 사녹에 기자와 동행한 B씨는 “한 번 다녀오면 계속 오게 된다”고 전하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어도 무대에 선 가수만 보면 피로가 싹 가신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3시간가량의 대기 이후 스튜디오에 입장한 팬들은 긴 시간의 기다림이 무색할 정도로 큰 환호성으로 뜨거운 반응을 보여줬다.

내 아이돌을 보기 위한 몇 시간의 기다림은 전혀 개의치 않는 팬덤 열정만큼, 기획사와 방송국 사이에서 조금 더 편한 사녹 방청 환경을 위한 논의가 이뤄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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