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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영의 마흔즈음] 부모 스펙과 '아빠찬스' 김승연과 김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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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영의 마흔즈음] 부모 스펙과 '아빠찬스' 김승연과 김상열
  • 이선영 기자
  • 승인 2019.09.30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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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이선영 기자] 우리네 삶은 신산스럽고 복잡다기(複雜多岐)합니다. 청춘은 청춘대로, 중장년층은 중장년층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그들의 고민을 안고 살아갑니다. 중간 허리를 단단히 받쳐야 하는 세대로서 우리의 삶과 일상 그 속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기회 사재기’와 ‘유리바닥’.

브루킹스연구소의 선임연구원 리처드 리브스의 저서 ‘20 vs 80의 사회’에 나오는 용어다. 저자는 상위 20%가 자기들만의 성을 쌓고 80%가 넘어오는 것을 막는다고 말한다. 이 책은 미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적나라하게 파헤쳤는데 우리 사회와 사뭇 닮았다.

저자가 제시하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기회 사재기(opportunity hoarding)’인데 능력과 실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달리 상위 20퍼센트가 성공의 기회를 사재기한다는 것이다. 중상류층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교육, 대입, 인턴과 고소득 일자리 등 성공의 기회를 독차지하며 자신의 자녀에게 사회적 지위를 물려주려고 한다. 그들의 이러한 시도는 그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법과 제도에 의해 현실이 되고 이렇듯 불공정하게 대물림된 소득과 부, 사회적 지위는 점차 불평등의 격차를 확대한다.

아울러 중상류층은 기회를 사재기하며 ‘유리 바닥’을 만든다. 유리 바닥은 자녀 세대가 하위 계층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보호 수단을 뜻한다. 자녀를 위해 유리 바닥을 깔아 주는 중상류층 부모들의 불공정한 행위가 불평등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원인이다. 기회 사재기와 유리 바닥은 세대를 거쳐 계급 간 분리를 영속시키고 불평등 문제를 악화시킨다.

요즘 우리네 현실을 들여다보노라면 너무나도 유사해 공감케 한다.

JTBC 종영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등장인물. 이 드라마는 부·권력·명예를 모두 거머쥔 대한민국 상위 0.1% 부모들이 제 자식을 천하제일의 왕자와 공주로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다룬다. [사진=SKY캐슬 홈페이지 캡처]
JTBC 종영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등장인물. 이 드라마는 부·권력·명예를 모두 거머쥔 대한민국 상위 0.1% 부모들이 제 자식을 천하제일의 왕자와 공주로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다룬다. [사진=SKY캐슬 홈페이지 캡처]

# 기회 사재기는 비단 조국 나경원 자녀 논란뿐이랴?!

어쩌면 조국 사태의 본질은 ‘있는 자들의 기회 사재기’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 또한 아들 문제로 크고 작은 논란에 휩싸여 있기도 하다. 기회의 세습 그리고 부와 권력의 세습은 공정과 정의를 꿈꾸었던 보통 사람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물론 그것은 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한민국 각계각층에서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등 수저론으로 상징되는 불평등 문제는 넓고도 깊다.

페어플레이 정신이 남다른 스포츠 분야에서도 부모의 대를 이은 자녀 선수의 금수저론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으며 문화 연예계 쪽에서도 인기 연예인인 부모의 후광을 등에 업고 손쉽게 데뷔하는 자녀들을 놓고 비판의 시각도 엄연히 존재한다. 여기에 최근 교회를 물려줘 종교계 세습으로 논란을 빚는가 하면 정치권력의 세습 또한 물밑에서 활발히 이뤄져 ‘세습사회’ 대한민국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흙 수저들의 가슴은 피멍이 들고 있다.

# 부모가 스펙이다, 그 진실은

취업준비생들의 한숨 소리도 절규처럼 다가온다. ‘개천에서 용 난다’던 그 개천은 이미 말라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취준생 10명 중 8명이 ‘부모가 곧 스펙’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설문 조사를 보노라면 이 시대 대한민국의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최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하반기 공채 시즌을 맞아 취준생 147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설문에 응한 취준생들은 취업 시 부모가 스펙이라는 견해에 “매우 그렇다”(44.7%), “조금 그렇다”(37.8%)고 답해 전체의 82.5%가 ‘금수저 부모’ 특혜가 있다고 여겼다. 그밖에 “보통”(11.1%), “별로 그렇지 않다”(4.3%), “전혀 그렇지 않다”(2.1%)는 응답 순이다. 취업 성공 여부에 출신학교, 가족과 집안 등 배경이 상관있냐는 질문에도 “매우 그렇다”(40.9%)와 “조금 그렇다”(39.9%)는 답이 80.8%로 가장 많았다. 이어 “보통”(11.0%), “별로 그렇지 않다”(5.1%), “전혀 그렇지 않다”(3.1%)고 답했다.

# ‘아빠 찬스’의 ‘왕 중 왕’은?

이런 가운데 스펙도 전혀 필요 없고 기회 사재기 또한 의미 없는 이들이 있다. 다름 아닌 재벌 총수 일가들의 자녀들이다. 재벌가 세습 이야기를 꺼내라면 한도 끝도 없다.

이번에는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강화를 위한 입법 토론회'에서 거론된 재벌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이날 토론회 주제는 삼성, 현대차는 물론 중견 그룹 총수 일가로 번진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경영권 승계' 문제였다.

먼저 김대헌(31) 호반 부회장은 2003년 자본금 5억 원으로 설립된 비오토(㈜호반의 전신) 대표였는데, 15년 만에 자산 규모를 8조2000억 원 정도로 키웠다. 이 기간 수익률은 1만6400%다. 이 같은 결과는 김대헌 부회장이 물고 태어난 ‘다이아몬드 수저’ 덕분이라는 지적이다. 10대 중반에 비오토 대표가 돼 이목을 끈 김대헌 부회장은 2008년 38.6%에 불과했던 내부거래 비율이 2012년 96.3%에 이르며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지난해 초 ㈜호반이 호반건설과 합병 당시 1대 5.88이라는 유리한 합병비율 덕에 김대헌 부회장은 호반건설 지분 54.7%를 챙겨 김상열 회장(10.5%)을 제치고 단숨에 최대주주가 됐다. 아버지 김상열 회장의 ‘아들 밀어주기’ 신공이 없었더라면 가능한 일인지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또 김승연 회장의 한화가(家) 3형제의 승계 또한 요즘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한화 시스템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다.

지난 18일 MBC뉴스는 한화 시스템에 물류 일감까지 몰아줘 3형제 주머니를 채워 일종의 그룹 승계 작업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를 전했다. 실제 한화 시스템은 지난해 말부터 베트남에서 물류업 관련 직원을 뽑기 시작했으며 당초 한화테크윈이 2020년까지 3년 계약으로 한국계 중견업체에 물류를 맡겨왔는데 지난 4월부터 한화 시스템이 끼어들면서 한화테크윈-한화 시스템-기존의 물류협력업체 이렇게 3자 계약 구조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한화 시스템이 한화 오너 3형제가 30억원에 인수했던 회사이고 최근 급성장한 것을 놓고 보면 이 또한 어마어마한 ‘아빠 찬스’(김승연 회장은 2007년 차남 보복 폭행 논란을 빚은 바 있다)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위에서 짓눌러도 티낼 수도 없고 / 아래에서 치고 올라와도 피할 수 없네 / 무섭네 세상 도망가고 싶네 / 젠장 그래도 참고 있네 맨날 / 아무것도 모른 체 내 품에서 뒹굴거리는 새끼들의 장난 때문에 나는 산다 / 힘들어도 간다 여보 얘들아 아빠 출근한다’

싸이 노래 ‘아버지’의 가사 한 대목이다. 이 시대 자식들을 위해 변변한 ‘아빠찬스’없이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가고 있는 80% 보통 아버지들의 자화상이다. 물론 20%에 끼기 위해 아등바등 사다리에 오르고 있는 우리는 그런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기도 하다.

오,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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