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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가 고우석에게 '웰컴투 준PO', 키움히어로즈 '퍼펙트 엔딩' [SQ모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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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가 고우석에게 '웰컴투 준PO', 키움히어로즈 '퍼펙트 엔딩' [SQ모먼트]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9.10.06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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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척=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1991년 당시 대형 신인 디켐베 무톰보의 도발에 눈을 감고 자유투를 던져 성공시킨 뒤 이렇게 외쳤다. “Welcome to the NBA(NBA에 온 걸 환영한다).”

자신만만하던 상대 마무리, 길어질 것만 같은 침묵. 플레이오프 진출 확률 85.7%가 걸린 1차전, 이대로 경기를 내줄 경우 상위팀임에도 분위기는 상대의 것이 될 것만 같은 경기.

키움 히어로즈 4번타자 박병호(33)는 단 한 방으로 이 모든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리고 희생양이 된 LG 투수 고우석(21)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웰컴 투 준PO.”

 

6일 LG 트윈스와 2019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날린 박병호의 세리머니. [사진=연합뉴스]

 

박병호는 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신한은행 마이카 KBO(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준PO) 1차전에서 9회말 끝내기 솔로 홈런으로 LG 트윈스에 1패를 안겼다.

양대리그가 아닌 단일리그에서 치러진 28차례 준PO에서 1차전 승리팀은 무려 24차례나 PO로 향했다. 1승을 챙긴 것에 불과하지만 키움의 다음라운드 진출 가능성은 85.7%로 치솟았다.

타선의 힘이 센 키움은 다수의 전문가들로부터 전력 우세 평가를 받았다. 그렇게 막을 연 준PO 1차전. LG는 만만치 않았다. 타선은 제이크 브리검이 꽁꽁 틀어막았지만 역시 문제는 마운드였다. 타일러 윌슨은 8회까지 106구를 던지며 무실점 호투했다.

물론 기회를 살리지 못한 키움 타선의 문제도 컸다. 8개의 안타와 볼넷 하나로 단 한 점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병살타와 도루자, 견제사 하나씩. 지독히도 안 풀리는, 6⅔이닝 무실점한 브리검에게 미안할 정도의 경기력이었다.

그렇게 맞이한 9회말. LG에선 마무리 고우석(21)을 불러올렸다. 프로 3년차로 최연소 30세이브 이상을 달성한 그였다. NC 다이노스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9회 등판해 1사 만루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침착한 투구로 스스로 팀의 준PO행을 이끌었던 담대한 투수다.

 

9회말 구원투수로 나선 LG 고우석(위)은 단 1구 만에 박병호에게 홈런을 맞고 패전투수가 됐다. [사진=연합뉴스]

 

처음 맞이한 준PO에서 첫 타자로 홈런왕 박병호를 상대하게 된 고우석. 시속 153㎞ 속구를 던졌지만 제구가 높았고 박병호는 지체 없이 배트를 돌렸다. 중견수 방향으로 높게 솟구친 타구는 담장을 훌쩍 넘어가며 1만6300명이 가득 들어찬 고척스카이돔 홈 관중석에선 축제가 펼쳐졌다.

경기 후 만난 박병호는 “워낙 공의 힘이 좋아 출루도 좋지만 그 순간만큼은 타이밍을 잘 신경 써서 강한 스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홈런의 비결에 대해 밝혔다.

경기 전 “같은 상황이 또 나오면 첫 타자부터 잘 던지겠다”며 “한 번 나가보니까 또 나가고 싶다. 던지면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밝힌 고우석이지만 박병호의 관록과 파워 앞에서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박병호 스스로도 “홈런 떠나 경기 졌으면 타격 컸을 것 같다”고 밝힐 정도의 경기였다. 브리검이 6회까지 노히트 피칭을 펼친 반면 키움은 윌슨을 어느 정도 공략하는 듯 했으나 번번이 득점으론 이어지지 못했다. 견제사와 병살타는 키움의 기세엔 그야말로 찬물이었다. 기세의 싸움이라는 야구에서 이런 경기를 내줄 경우 분위기가 순식간에 넘어가는 것은 지금껏 수도 없이 나타났다.

 

장정석 감독(가운데)이 끝내기의 주인공 박병호를 격하게 안아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장정석 감독도 “마지막에 박병호가 잘해줬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여러모로 기분 좋게 끝났다”고 말했다. ‘여러모로’라는 단어 속에 잘 풀리지 경기에 대한 장 감독의 심경을 읽어볼 수 있었다.

이어 장 감독은 박병호에 대해 “최고다. 더 이상 칭찬할 게 없다”며 “그 자리에 있는 것만 해도 도움이 된다고 말해왔는데, 시작부터 좋은 역할을 해줬다. 이 기세를 몰아 포스트시즌을 박병호의 것으로 만들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박병호 또한 기쁨이 컸다. 평소 감정 표현을 자제하는 그지만 끝내기 홈런 이후 홈플레이트로 향하며 헬멧을 던져버릴 정도로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마지막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홈런도 오랜만에 쳤고 단기전엔 그런 모습도 중요하다”면서도 “뛰면서 긴장해서 그런지 엉성했던 것 같다”고 부끄러워했다.

준PO 홈런은 하나가 더 늘어 6개가 됐다. 앞선 세 타석에선 모두 고개를 숙였고 삼진까지 당했지만 그 모든 걸 뒤집는 완벽한 엔딩이었다. “단기전이기에 안타가 안 나오면 조급하지만 누구라도 해결해서 이기는 게 중요해 신경을 안 썼다”면서도 “오늘은 예년과 다르게 마지막 좋은 타구로 팀에 승리까지 안겼다. 앞으로 좀 더 편하게 타석에 나설 것 같다”고 말했다. 박병호가 부담감을 내려놓은 키움은 얼마나 더 무서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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