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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프로 배구 판에 불고 있는 40대 기수론, 그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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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프로 배구 판에 불고 있는 40대 기수론, 그 '허와 실'
  • 최문열
  • 승인 2015.05.0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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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최문열 대표] “휴우?!” 무의식적으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최태웅(39)이 지난달 2일 현대캐피탈 감독으로 선임됐다는 소식을 접한 직후다. 그리고 20일 뒤 김상우(42) 성균관대 감독 겸 KBSN 해설위원이 우리카드 사령탑으로 옮겨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번에는 “오 이런?!”하는 탄식 소리가 절로 배어나왔다. 사실 최태웅 김상우 감독의 경우 한양대와 성균관대 시절부터 그들의 활약상을 지켜봐 왔기에 각별한 인연이 있다. 그런데 웬 한숨과 탄식? 일부 팬들의 경우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다. 프로구단의 지휘봉을 잡는다는 것은 경기인으로서 하나의 영예일 수 있다고 여겨지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악감정이라도? 천만의 말씀이다. 그것은 그들을 진심으로 걱정해서다. 거기에는 ‘프로감독은 파리목숨’이라는 안 좋은 추억이 똬리를 틀고 있기도 하다. 감독이 마구 소비되는 시대, 자칫 한 번의 실수로 조기 명퇴의 길로 들어서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 이미 그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런데도 일각에서는 쓸 데 없는 기우라고 치부한다. 좋은 성적 내고 승승장구하면 무슨 상관있겠냐는 것. 하지만 그네들이 처한 현실은 만만찮다. 감독 혼자 잘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태웅 김상우 감독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은 더 있다. 한편에서는 이를 두고 40대 기수론이라고 화려하게 치켜세우며 포장한다. 김세진(41) OK저축은행 감독을 비롯해 강성형(45) LIG손해보험, 김종민(41) 대한항공 감독이 그 주인공들이다.

실로 남자배구 7개 프로구단 중 신치용(60) 삼성화재, 신영철(51) 한국전력 감독을 제외한 나머지 5개 구단이 30대 후반 또는 40대 감독을 내세워 40대 기수론에 힘을 싣고 있다. 최근 열풍처럼 번지고 있는 40대 기수론, 프로 배구를 한 단계 도약시킬 비장의 카드일까, 아니면 잠시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일회성 유행일까? 다소 혼란스런 시점에 그것이 성공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인지 냉정히 짚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일 듯하다.

#01. 40대 기수론의 배경과 본질

40대 기수론이 본격적으로 만개한 것은 김세진 효과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김세진 감독은 2014-2015 프로배구 V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최강으로 군림해온 삼성화재를 물리치고 OK저축은행을 창단 두 시즌 만에 챔피언에 올려놓는 개가를 올렸다. OK저축은행의 놀라운 성과를 목도한 타 구단들은 서둘러 ‘제2의 김세진’ 찾기에 나섰고 삼성화재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최태웅, 김상우 감독을 적임자로 낙점했다. 결국 40대 기수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삼성화재 승리 DNA의 이식’이라고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으며 속 내용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신치용 감독 따라잡기’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신치용 감독의 삼성화재는 비록 2014-2015시즌에는 챔피언에 오르진 못했으나 프로 출범 첫해인 2005년부터 올시즌까지 11시즌 동안 챔피언결정전에 올랐고 통산 8회 우승을 일구며 ‘공공의 적’으로 떠올랐다. 이 때문에 삼성화재가 이토록 잘 나가는 이유에 대한 분석이 이어졌고(관련기사 : 신치용은 어떻게 삼성화재를 20년 동안 춤추게 했을까?) 삼성화재 출신이 프로구단 사령탑을 독식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02. 신치용 감독과 40대 감독의 같은 점과 다른 점

그렇다면 삼성화재 출신 감독을 앞세운 구단들은 머잖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대다수 배구인들은 흔쾌히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왜냐하면 감독의 리더십을 비롯해 선수단 인적 구성과 구단 지원 측면에서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먼저 감독 리더십 부분이다. 신치용 감독이 삼성화재 초대감독으로 나선 것은 40세이던 1995년이었다. 나이로만 치자면 40대 기수들이 이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것이 있다. 신치용 감독의 특별한 이력과 경력이다. 신치용 감독은 1980~1995년 무려 16년 동안 한전 코치로 일하며 지도자 수업을 착실히 쌓아왔다. 1991~1994년에는 남자대표팀 코치로도 나서며 해외 배구의 흐름과 판도도 익혀왔다. 신치용 감독이 코치로 활약하던 한전은 당시 우수 선수들이 현대자동차써비스(현 현대캐피탈)와 LG화재(현 LIG손해보험) 등으로 스카우트 되던 시기여서 승리보다는 패배에 익숙한 팀이었다. 그러나 한전은 2진급 선수들로도 탄탄한 조직력을 발휘해 간혹 다른 팀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신치용 감독은 당시 스포츠서울 배구 담당인 류수근 기자(현 스포츠Q 이사 겸 편집국장)에게 "나는 유명한 선수도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한전) 선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나는 더 연구하고 공부하고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화려한 플레이만이 아니라 잘 보이지 않는 기본기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라고 흉금을 털어놓은 바 있다.

이처럼 신치용 감독은 16년 동안 2진급 자원을 갖고 팀 전술과 전략을 만들면서 자신만의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해왔다. 이런 의미에서 기나긴 시간 ‘준비된 감독’이라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삼성화재를 맡고 롱런할 수 있는 것은 인고의 세월동안 농축된 노력과 경험이 빛을 발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창단 초기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김세진과 김상우를 데려왔고 신진식(40 삼성화재 코치)에 이어 최태웅 석진욱(39 OK저축은행) 장병철 등의 당시 최대어 스카우트에 성공하면서 장기집권의 초석을 단단히 다져놓았다.

김세진 감독은 2014-2015 V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화재를 물리치고 OK저축은행을 창단 두 시즌 만에 챔피언에 올려놓으며 40대 기수론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사진=스포츠Q DB>

한데 최태웅 감독의 현대캐피탈과 김상우 감독의 우리카드의 현주소는 어떨까? 나머지 40대 감독이 이끄는 다른 구단도 매한가지다. 모든 면에서 신치용 감독의 삼성화재를 따라 하기엔 역부족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모든 스포츠종목이 그렇듯 배구 또한 감독이 자신만의 팀컬러를 내기 위해선 오랜 숙성과 발효의 시간이 필수적이다. 팀 전력 구축이란 단 시간 내에 ‘뚝딱’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또 요즘 V리그는 외국인 거포에 의해 팀 전력이 좌우 돼 이른바 ‘몰빵배구’라는 비아냥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다. 그만큼 외국인선수 스카우트, 다시 말해 머니게임에 사활이 걸린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한국배구연맹(KOVO)은 여자부는 다음 시즌, 남자부는 2016-2017시즌부터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을 실시키로 해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03. 40대 기수론의 향후 관전 포인트, 감독의 능력과 함께 구단의 능력도!

먼저 서글픈 광경 하나. 서남원(48) 감독은 한국도로공사를 2014~15시즌 여자부 정규리그에서 창단 후 첫 우승시키는 역량을 발휘하고도 지휘봉을 놓아야 하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구단이 지난 4월 말로 임기 만료된 서남원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한 까닭이다. 변화와 체질개선을 통해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것이 공식입장이었는데 일각에선 최종 챔피언에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한 경질로 해석한다.

이처럼 만일 40대 젊은 감독을 앞세운 구단들이 단기간의 성적에 얽매여 효율과 성과만을 강조하고 고집한다면 이들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다. 마치 소모품처럼 쓰다가 맘에 안 들면 버리려는 생각이라면 더 암울할 따름이다. 하지만 구단이 감독과 공동 운명체라는 인식 아래 감독들에게 자신의 색깔을 입힐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함께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제2의 신치용이 잇따라 등장, 팀 성적 상승은 물론 V리그 흥행에도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40대기수들은 리더로서 우수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 이들로서 향후 한국배구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지 않은가. 그리고 구단은 오랜 기간 심사숙고 끝에 그들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향후 관전 포인트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40대 기수 중 어느 감독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생존하느냐가 아니라 어느 구단이 40대 사령탑을 잘 지원해 성공가도로 달리게 하느냐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40대 기수를 선택한 구단이 당연히 짊어져야할 책임이며 그것이야말로 배구 명가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이제 결론은 하나다. 어느 구단이 ‘제2의 신치용을 찾을 것이냐’가 아니라 어느 구단이 ‘제2의 신치용’을 만들어 낼 것이냐’로 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수순일 듯하다.

<편집자 주> 필자는 스포츠서울에서 수년간 배구전문 기자로 활약했고 그 인연으로 실업배구연맹과 대한배구협회 홍보이사를 역임한 바 있다. 현재는 스포츠Q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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