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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가을남자' 정수빈, 자신감 근거는 '유비무환' [두산 키움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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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가을남자' 정수빈, 자신감 근거는 '유비무환' [두산 키움 한국시리즈]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9.10.23 1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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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최근 10년 8차례나 가을야구를 경험했고 5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오른 두산 베어스. 그 중에서도 가을 사나이를 꼽자면 정수빈(29)을 빼놓을 수 없다. 20일을 쉬고 나선 한국시리즈 무대에서도 정수빈은 반짝반짝 빛났다.

키움 히어로즈의 기세는 무서웠다. 불펜 투수들은 철벽같았고 타선의 집중력도 놀라웠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두산의 야구를 보는 듯 했다. 키움의 언더독 우승을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두산의 경험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 중에서도 중심을 잡는 정수빈의 활약은 빛났다.

 

[잠실=스포츠Q 안호근 기자] 정수빈이 22일 한국시리즈 1차전을 마친 뒤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가슴에 잔뜩 묻은 흙 먼지가 인상적이다.

 

가을이면 강했다. 이번 시리즈 전까지 포스트시즌 통산 기록은 타율 0.280이었지만 임팩트는 훨씬 컸다. 화려한 수비와 빠른발, 허슬플레이, 가을만 되면 불붙는 방망이로 팀에 힘을 불어넣었다.

특히 2015년 한국시리즈에선 타율 0.571(14타수 8안타 1홈런 5타점)으로 맹활약했다. 14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안은 두산의 MVP(최우수선수)였다.

정수빈은 22일 두산과 키움의 201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에 2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 출장했다. 타격 기록은 4타수 2안타 1득점. 그러나 정수빈의 가치는 숫자로 다 담을 수 없었다.

첫 타석부터 ‘표적선발’ 에릭 요키시를 공략했던 정수빈은 4회 흔들리는 요키시를 상대로 7구 승부 끝에 볼넷으로 걸어나가며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의 2루타 때 홈까지 밟았다.

정수빈의 가치는 수비에서도 빛난다. 6회 추격하던 키움 김웅빈이 중견수 방면 큰 타구를 날렸을 때도 정수빈은 빠른 타구 판단으로 한참을 달려가 타구를 걷어냈다. 2루 주자 박병호는 빠질 것을 예상한 나머지 한참을 앞서가 있었는데, 결국 2루로 돌아와야 했다. 봉중근 KBS 야구 해설위원은 “점수는 키움이 내는데 자꾸 두산 수비를 칭찬하게 된다. 정말 대단한 수비”라며 감탄했다.

 

 

4회 볼넷으로 걸어나간 정수빈(왼쪽에서 2번째)이 득점한 뒤 동료들의 격려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결정적인 장면은 9회말 공격에서 또 나왔다. 선두타자 박건우가 상대 실책으로 출루한 가운데 그에겐 번트 임무가 주어졌다. ‘번트 장인’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자신 있는 분야.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정수빈은 안전한 보내기 번트가 아닌 1루수와 투수 사이 애매한 곳에 타구를 떨어뜨렸다. 수비가 서로 우물쭈물하는 사이 정수빈은 1루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했고 비디오 판독 결과 세이프로 판명났다.

오주원은 흔들렸다. 아웃카운트를 하나 더 잡은 뒤에도 볼넷을 내주더니 오재일에게 끝내 안타를 맞고 패전투수가 됐다.

경기 후 정수빈은 “(박)건우가 에러로 나가는 순간 번트를 댈 타이밍이라고 이미 생각했다”며 “주자를 보내주는 게 최우선이지만 보내기 번트를 할 생각으로 하면 잘 못 대서 나도 살겠다는 마음으로 댔다. 다행스럽게도 투수랑 사인이 잘 안 맞아서 세이프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9회 절묘한 번트 이후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1루에 들어가고 있는 정수빈(왼쪽). 비디오 판독 결과 세이프 선언됐고 이는 끝내기 승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사진=연합뉴스]

 

신중하고 침착했다. 정수빈은 1구 볼에 이어 2구 바깥쪽 속구도 그대로 흘려보냈는데 “댈 수도 있었지만 조금 멀어보여서 확실하게 하기 위해 보냈다”고 말했다. 완벽을 추구했고 결국 대성공이 됐다.

자신감이 넘쳤다. 수비 활약에 대해선 “이번 시리즈는 타격전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외야수도 준비를 많이 하고 있다. 공이 외야로 많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집중도 많이 하고 어려운 타구가 와도 잡을 수 있도록 대비했다”고 밝혔다.

직접 맞붙어본 키움 불펜 투수들의 힘은 강했다. 요키시를 공략했던 정수빈도 조상우에겐 내야 파울 플라이로 맥없이 물러났다. 그는 “키움이 앞선 시리즈에서 투수교체도 빨리하고 상대 전적에 따라 내보내는 걸 봤다”면서도 “분석도 많이 했고 다음 투수가 올라올 것을 미리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준비가 탄탄하니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게 정수빈이 키움과 한국시리즈를 대하는 자세다. 가을 DNA와 풍부한 경험은 덤. 두산 김태형 감독이 정수빈을 믿고 테이블 세터로 내세울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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