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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박건우 인터뷰, '바보 같은 눈물'이 값진 이유 [SQ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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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박건우 인터뷰, '바보 같은 눈물'이 값진 이유 [SQ인물]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9.10.24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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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스포츠Q(큐) 글 안호근·사진 주현희 기자] 사상 첫 한국시리즈 2연속 끝내기. 모두가 기뻐 그라운드로 난입했고 승리의 기쁨을 누리기 바빴지만 한 사내는 2루에 주저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미라클 두산’ 드라마를 마무리한 박건우(29)였다.

박건우는 2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2019 신한은행 마이카 KBO(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2차전 9회말 끝내기 안타로 팀에 2연승을 안겼다.

지난해 많은 기대 속에 나선 한국시리즈에서 고개를 떨궈야 했던 박건우는 경기를 마무리짓고도 동료들과 함께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다.

 

박건우(가운데)가 23일 2019 신한은행 마이카 KBO(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2차전 9회말 끝내기 안타를 친 뒤 장승현(왼쪽), 허경민 등으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09년 두산에 입단한 박건우는 경찰청에서 군복무를 마친 뒤 차츰 팀의 중심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2015년엔 타율 0.342를 기록, 한국시리즈에서도 0.313 맹타를 휘두르며 팀의 4번째 우승에 기여했다.

이후 5년 연속 3할 타율을 유지하며 두산의 5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도운 그지만 가을에만 되면 유독 작아졌다. 특히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선 24타수 1안타, 타율 0.042로 ‘4푼이’라는 웃지못할 오명을 썼다. 팀이 정규리그 우승을 하고도 준우승에 머물러 마음의 짐은 더욱 컸다.

올해도 상황은 비슷했다. 1차전에서 1번 타자의 중책을 맡았지만 5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결정적인 호수비와 함께 상대의 실책 3개를 유도하며 2득점, 팀 승리에 발판을 놨지만 그에겐 위안이 되지 못했다. 경기 후 본지의 인터뷰 요청도 정중히 거절했다.

상대 왼손 선발 이승호를 맞아 이날도 박건우는 1번타자 우익수로 나섰지만 1,3,6회 모두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밥상을 차리지도, 먹어치우지도 못한 그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팀이 2-5로 끌려가던 8회말 1사. 박건우는 올 시즌 홀드왕 김상수의 초구 속구를 받아쳐 8타석 연속 이어진 침묵을 깼다. 이후 후속타자의 볼넷, 내야안타와 상대 실책을 틈타 천금 같은 득점에 성공한 박건우는 9회 경기를 끝낼 기회를 맞았다. 허경민과 오재원, 김재호의 연속 안타로 1점, 김인태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추가해 5-5 동점을 만든 것. 1사 1,2루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한현희의 슬라이더는 날카로웠다. 4구는 헛스윙. 그러나 집중력을 발휘했다. 5구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를 방망이 끝에 맞혀냈고 타구는 유격수 옆을 지나 중견수에게 향했다. 2루 주자 류지혁이 홈으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던 두산 선수단은 박건우 주변으로 몰려들어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박건우는 끝내기 안타 이후 2루 옆에 주저 앉아 한참을 흐느꼈다.

 

그러나 박건우는 기쁨의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다. 한참 동안 2루 베이스 옆에 주저 앉아 흐느꼈다. 홈 관중이 외치는 뜨거운 환호 속에 벤치로 들어온 뒤에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쳐봤지만 박건우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데일리 MVP로 선정된 박건우는 긴장이 풀린 듯 “울지 않았다. 세수한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 뒤 “내가 욕먹는 건 괜찮은데 나로 인해서 우승도 못하고 감독, 코치님이 안 좋은 소리를 들으니 미안했다”고 말했다.

눈물을 감추려는 이유에 대해선 “한국시리즈 우승한 것도 아니고, 바보 같아서 그렇다”며 “눈물을 보이기 싫었는데 작년부터 너무 못했고 나 때문에 우승이 날아가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앞으로 2경기, 2승 남았지만 오늘 경기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기뻐했다.

시즌 때 병살이 많아 타구를 띄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밸런스에도 이상이 없었고 연신 방망이 중심에 공을 맞혀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이날도 앞서선 뜬공만 3개를 기록했다.

“뭐가 문젠지 찾다가 감독님이 격려해주신 게 힘이 되지 않았나 싶다”며 “항상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데, 차라리 꾸짖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항상 할 수 있다고 말해주셔서 죄송했다”고 김태형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믿음을 잃지 않았다는 김태형 감독(오른쪽)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는 박건우.

 

“‘이런 상황이 또 나에게 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김)인태가 잘해줘 동점이 됐고 못 쳐도 연장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해졌다”는 박건우는 끝내기 안타를 날렸고 동료들은 자신의 일보다 더욱 기뻐했다.

박건우는 “제 자신도 답답한데 상위타선인데도 그러니 팀원들은 얼마나 답답했겠나”라며 “형들이 응원해줘서 고마웠는데 표현이 잘 안되더라. 항상 마음 속엔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숨겨둔 마음을 표했다.

가을에 늘 약했던 것만은 아니다. 2017년 플레이오프에선 타율 0.462로 MVP급 활약을 펼쳤고 2015년엔 팀의 4번째 우승을 도왔다. 이날 활약이 완전한 반등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박건우는 “한 경기로 뭘 판단하겠나”라면서도 “하늘이 돕는 것 같다. (오)재원이 형이 ‘땅도 돕고 하늘도 도우니 실책이 나오지 않냐’라고 해준 말에 편하게 마음을 먹게 됐다. 팀원들의 믿음에 보답한 것 같아 좋다. 내가 잘해서라기보다는 도움을 준 것 같아서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멀었다. 만회하기 위해선 많은 경기가 남았다. 한 경기로 부진을 벗어났다는 건 어울리지 않는 말 같다. 앞으로도 잘해서 큰 경기서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한다”고 다짐했다.

기자회견장을 나서는 박건우는 다시 한 번 울먹였다. 애써 눌러뒀던 감정이 다시금 올라오는 듯 했다.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한가지 확실한 건 뜨거운 눈물과 함께 그동안 그의 어깨를 짓눌렀던 부진에 대한 부담감도 함께 씻어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강력한 무기를 하나 더 장착한 두산. 홈으로 향하는 키움으로선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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