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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웅의 드라마Q] '풍문', 재벌 풍자 '카타르시스'와 '극적 재미' 사이의 평행선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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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웅의 드라마Q] '풍문', 재벌 풍자 '카타르시스'와 '극적 재미' 사이의 평행선 고민
  • 박영웅 기자
  • 승인 2015.05.0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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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박영웅 기자]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이하 '풍문')가 재벌그룹을 비롯한 기득권층에 대한 우회적 비판을 시도하고 나서 주목을 끌고 있다.

'풍문'은 극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재벌그룹과 노동자 간의 대칭적인 인물 구도와 사건 설정을 연상케 하는 구성으로 사회 비판성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 자체로서의 재미에 대한 부분은 부족하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 '풍문'에서 서봄(고아성)의 반란이 시작됐다. 서봄은 '한송' 가문의 집안 일꾼들의 파업을 주도해 막후에서 상위 1% 권력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사진=SBS '풍문으로 들었소' 방송 캡처]

5일 방송된 '풍문'에서는 대한민국 상위 1% 집안인 법무법인 '한송'가문의 비서와 가정부, 일꾼들이 한정호(유준상 분)와 최연희(유호정 분)를 향해 반기를 드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한송' 가문의 비서진과 일꾼들은 시간외근무수당 요구, 추가업무 수당 요구, 보직에 따라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나누는 제도 등에 반발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농장 일꾼까지 무려 100여 명에 달하는 이들은 동시에 모든 일을 중단하며 한송 가문을 마비시켰다. 특히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비서진과 가정부, 보모 등의 파업으로 정호와 연희는 생활의 불편함을 곧바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파업이 시작된 근본 원인을 놓고 연희와 정호는 자신의 며느리인 서봄(고아성 분)의 선동에서 비롯됐다는 의혹을 갖게 됐다. 결국, 두 사람은 서봄을 인상(이준 분)과 이혼시키고 내쫓겠다는 결심을 내렸다.

◆ 일부 재벌그룹에 대한 우회적 비판의 시도

이번 방송분의 내용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재벌그룹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특히 국내 유수의 모 그룹을 향해 화살촉을 향한 느낌이 크다.

극 중 '한송' 가문에서 일어난 파업의 내막은 이런 예상에 설득력을 주고 있다. 한송 가문에서 수십 년간 일해 온 비서와 일꾼들은 그 숫자가 100명을 넘었음에도 제대로 된 노조가 없다. 노조가 없다 보니 일부 부당한 대우에도 직원들은 한송 가문을 향해 조직적인 반기를 드는 일 자체가 없었다.

한송 가문의 직원들이 수십 년간 노조를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다. 다른 일터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와 집안 최측근 비서진의 감시가 끊임없이 이뤄져 왔기 때문이다.

▲ [사진=SBS '풍문으로 들었소' 제공]

세간에 알려진 한 재벌그룹의 사례를 보면 드라마의 흐름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현재 모 그룹은 노조가 없다. 노조가 없으니 수십 년째 파업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노조를 만들지 않고 있다. 주된 이유는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와 사원 개개인에 대한 감시 체제가 확실히 잡혀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풍문'의 이런 우회적 비판은 '드라마'라는 재미를 위한 매체가 경제 분야의 모순을 다룬다는 부분에서 의미있는 시도로 평가받을 만하다.

시간외근무수당과 추가업무 수당을 요구하고 보직에 따라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나누는 제도를 비판하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순을 그대로 설명해주는 것들이다. 또한, 노조 창설 문제를 소재로 삼는 부분은 일부 대기업에 대한 직간접적 비판으로도 볼 수 있다.

실제 셀러리맨들이 쉽게 말을 꺼낼 수 없는 이런 부분들을 '풍문'은 대신 이야기해줌으로써 '대리만족'이라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있다.

'풍문'은 드라마의 역할을 논할 때 '대중들의 현실 속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며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부분에 매우 충실한 모습이다. 최근 방송된 많은 드라마가 장르에 치우치고 재미에 사로잡혀 이런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부분을 고려하면 '풍문'을 더욱 빛나게 한다.

▲ 풍문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사회경제적 민감한 풍자를 한다는 부분에서는 박수 받을 만하지만 드라마적인 재미는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고아성과 이준의 알콩달콩 러브스토리 같은 드라마적 요소들의 강화를 바라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다. [사진=SBS '풍문으로 들었소' 제공]

◆ 극 중 훌륭한 시회 경제적 비판, 하지만 극적 재미는 '글쎄'

'풍문'은 이 같은 사회·경제적 풍자가 적잖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지만, 드라마 본연의 작품성과 재미 면에서는 고민도 엿보이고 있다.

앞서 제작발표회에서 '풍문' 관계자들은 "이번 드라마는 갑질 논란과 상위 1% 기득권층의 풍자를 보여 주겠지만 극적 재미(사랑이나 고부갈등 등)를 놓치지 않겠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제작진이 말했던 극적 재미는 부족한 모습이다. 실제로 요즘의 '풍문'은 우리나라 사회·경제적인 모순을 들추고 이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데 신경이 쏠려 있는 듯한 모양새다. 자연히 무겁고 어려운 주제로 방향타를 돌려버린 인상이 짙어지며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제작진이 의도했던 극적 요소들인 서봄의 한송가문 입성기와 인생의 성공, 고부간의 갈등 해결, 인상과의 알콩달콩한 로맨틱, 10대 엄마의 육아기 등은 후반부로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이런 약점은 시청률 내림세로 이어지고 있다. 본격적인 파업 내용을 시작했던 4일 방송분의 시청률은 무려 2.9%포인트가 하락한 9.3%였다. 경쟁작 '화정'에 1위를 내주고 말았다. 5일 방송분에서는 다시 상승(10.9%)하고 선두자리도 되찾았지만, 예전 시청률을 회복하는 데는 실패했다.

▲ [사진=SBS '풍문으로 들었소' 방송 캡처]

제작진은 '갑질 논란에 대한 풍자'와 '극적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하고 있다. 많은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풍자'가 '극적 재미'를 지배하고 있는 모습이다.

두 요소를 모두 살릴 수 있을까? 워낙 상충하는 요소들인 만큼 풍자와 순수한 극적 재미를 다 잡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제작진의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청자들은 사회·경제적인 민감한 부분에 대한 풍자도 좋지만, 순수한 극적 재미와 완성도를 위한 노력도 함께 바라고 있다. 두 부분에 대한 균형을 맞춰야 한다.

'풍문'은 앞으로 종영까지 8회 정도를 남겨놓았다. 현재 벌려놓은 내용을 수습하려면 매우 촉박한 시간이지만, 그동안 드러났던 '풍문'의 극적 재미에 대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에는 모자라지도 않은 시간이다. '풍문'의 훌륭한 비판과 작품의 완성도,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dxhero@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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