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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명소 지리산 피아골, 지명 유래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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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명소 지리산 피아골, 지명 유래를 아시나요?
  • 이두영 기자
  • 승인 2019.11.10 0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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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이두영 기자] 골짜기마다 단풍이 흐드러지고 자지러지지 않은 데가 없었지만, 피아골은 특히나 유별났다. 주황빛이나 주홍빛의 단풍들 사이에서 핏빛 선연한 그 단풍들은 수탉의 붉은 볏처럼 싱싱하게 돋아 보였다.

노벨문학상을 받는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걸작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 작가 조정래는 지리산 피아골 가을 풍경을 이 같이 묘사했다.

작가는 핏빛으로 고운 피아골 단풍을 수없이 죽어나간 사람들의 원혼이 피어나는 것에 비유했다.

요즘 가볼만한 곳 중으로 추천할 만한 지리산 피아골.
요즘 가볼만한 곳 중으로 추천할 만한 지리산 피아골.

 

이 작품의 영향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피아골을 사람의 피와 연관 지으려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피아골에서는 8.15광복 이후 6.26전쟁과 휴전에 이르는 시기까지 이념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피아골은 반야봉 중턱에서 발원해서 연곡사를 스쳐 섬진강으로 흐르는 계곡으로 길이가 대충 20km에 이른다.

산이 높은데다가 골짜기가 길어 사철 물이 마르지 않고 외부 접근도 수월치 않았을 터다. 이런 지리적 환경은 조선인민유격대(빨치산)의 활동을 유리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피아골이라는 지명은 구황작물의 한 종류였던 기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피아골이 위치한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에는 직전(稷田)마을이 있다. 稷은 볏과에 속하는 피나 기장을 뜻한다.

부쳐 먹을 농토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산골 주민들은 덤불과 나무를 쳐 내고 돌을 골라내 경작지를 만든 다음 계류를 끌어들여 기장을 심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는 잡초이기도 하지만, 식용 종류도 있다. 기장은 벼보다 훨씬 작은 곡식으로 1970년대까지도 전국 일부 산지에서 곡물로 재배됐다.

기장과 피는 생김새가 다르다. 피아골에서 기장을 심었는지, 식용 피를 심었는지, 아니면 두 가지를 심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기장을 넓은 의미의 피로 인식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피밭이 있던 계곡’은 피밭골로 불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발음하기 좋은 피아골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삿갓배미를 만들어 꿋꿋하게 생명을 이어 온 산골 사람들의 애환은 피아골이라는 지명에 오롯이 녹아 있다.

피아골 단풍은 지명의 슬픈 유래를 무색하게 하며 가을마다 찬연하게 빛난다.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남명 조식은 지리산에 열두 번이나 올랐다고 전한다. 그는 피아골 단풍에 취해 시를 남겼다.

‘흰 구름 맑은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가을의 붉은 단풍 봄꽃보다 고와라. 천공이 나를 향해 뫼빛을 꾸미시니,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피아골 단풍의 아름다움은 대표하는 단어 삼홍(三紅)은 이 시에서 나왔다.

직전마을에서 삼홍소까지는 타박타박 1시간 정도 걸으면 된다. 영화 ‘피아골’과 ‘남부군’의 배경이 됐던 피아골은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유별나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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