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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 보려고 100만 원"... 로또 당첨 버금가는 '팬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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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 보려고 100만 원"... 로또 당첨 버금가는 '팬싸 컷'
  • 김지원 기자
  • 승인 2019.11.1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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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지원 기자] 서울의 한 음반 매장, 공항도 아닌데 캐리어를 들고 온 사람들이 즐비하다. 모두 '팬사인회' 응모를 위한 음반을 구매하러 온 사람들이다. 적게는 10장, 많게는 수백장의 앨범을 구매한 사람들은 캐리어를 CD로 꽉 채운 채 자리를 떴다.

지난해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워너원의 팬사인회 당첨을 위해 앨범을 총 213장 구매했으나 '광탈'(광속 탈락) 했다는 글이 화제가 된 바 있다. 게시글에는 서울의 한 대형 서점에서 워너원의 앨범을 구매한 영수증을 찍은 사진이 첨부돼 있었는데, 앨범 1장의 가격이 2만 원으로 전체 구매 가격은 426만 원에 달했다.

 

[사진=유튜브 채널 MUH Lab : 뭐랩 캡처]
팬사인회 응모를 위해 평균 수십장의 앨범을 구매한다. [사진=유튜브 채널 MUH Lab : 뭐랩 캡처]

 

대부분의 아이돌은 스케줄과 안전 문제 상 추첨 방식의 비공개 팬사인회를 진행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팬사인회'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만 한 회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 수는 100여 명으로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이 때 팬사인회 응모는 '앨범 구매'로 이뤄진다. 정해진 판매처를 통해 앨범 1장 당 1개의 응모권이 주어지며 한 사람 당 응모 횟수에는 제한이 없다.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여러 장의 앨범을 구매하는 이유가 있는 것. 앞서 '캐리어'를 들고 오는 사람이 많다고 언급했지만 응모를 위해 구매하는 앨범 수량이 많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미리 예약해 주문하거나, 오프라인 판매처 현장에서 택배를 보내주는 경우도 많다.

앨범 구매 후 응모권을 작성해 판매처에 제출하면, 판매처는 추첨 후 당첨자를 공지한다. 팬사인회 추첨 방법은 '손 추첨'과 '기계 추첨'으로 나뉜다.

'손 추첨'은 말 그대로 박스에 들어있는 응모권을 일일히 손으로 뽑아 추첨하는 방식으로, 물론 응모권이 많이 들어있을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지지만 가장 랜덤한 방식이다. '기계 추첨'은 구매자와 구매 수량을 엑셀에 입력한 후 추첨하는 방식이다.

 

판매처는 팬사인회에 응모할 수 있는 기간을 미리 공지한다. [사진=핫트랙스 홈페이지]
판매처는 팬사인회에 응모할 수 있는 기간을 미리 공지한다. [사진=핫트랙스 홈페이지]

 

아이돌 팬 A 씨는 "'기계 추첨'은 '줄 세우기'일 때가 많다"고 귀띔했다. '줄 세우기'란 앨범을 많이 산 순으로 '줄을 세워' 당첨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대부분의 음반 판매처에서는 '랜덤 추첨'이라고 공지하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줄 세우기'를 하는 판매처가 어딘지 공유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생겨난 신조어가 바로 '팬싸 컷'. '팬사인회'와 '커트 라인'을 합친 말로 팬사인회에 당첨되기 위해 구매해야되는 앨범의 최소 수량을 뜻한다.

A 씨는 "'팬싸 컷'은 '알려지면 경쟁률이 높아진다'는 이유로 팬들 사이에서 비밀리에 공유된다. 공개된 SNS에 구매 장수를 올리면 안 된다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다"라고 전하면서 "'팬싸 컷'이 몇 장인지 알려주고 소정의 돈을 받는다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사진=유튜브 자이언트펭TV 캡처]
'팬사인회'에 당첨되면 스타와 1:1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사진=유튜브 자이언트펭TV 캡처]

 

평균 수십만 원부터 많게는 수백만 원까지 거액의 돈을 투자하며 '팬사인회'에 응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팬사인회는 스타와 팬이 직접 눈을 마주치고 1:1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이기 때문이다. 팬사인회에 자주 참석하면 스타가 팬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기도 한다. 길어봐야 2~3분 정도의 짧은 대화지만 이 때문에 팬사인회에 중독되는 팬들도 많다고.

일각에서는 듣지도 않는 앨범을 수백장씩 사들이는 팬들을 비판하기도, '팬심'을 이용한 지나친 상술이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대중문화'와 상업성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 개념이라지만 정말 사행성 조장이 아닌 정당한 '마케팅'인지 의문을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보다 건전한 '팬덤 문화'의 지속을 위해 기획사가 노력하지는 못할망정, 팬심을 볼모로 과열된 경쟁에 불을 지피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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