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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호, 내부경쟁 없이는 외부경쟁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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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호, 내부경쟁 없이는 외부경쟁력도 없다
  • 김의겸 기자
  • 승인 2019.11.1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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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예상 가능한 베스트일레븐이었다. 반전 없이 나선 선발 명단에 익숙한 전형까지. 필승 해법이 이미 완성되기라도 한 것일까. 일각에선 한국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 주전 경쟁이 벌써 끝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14일(한국시간) 레바논 베이루트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국제축구연맹(FIFA, 피파)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H조 4차전에서 레바논과 0-0으로 비겼다.

2승 2무(승점 8)로 4경기 연속 무실점 및 무패행진을 이어가며 레바논, 북한(이상 승점 7)에 승점 1 앞선 H조 선두를 지켰다. 

하지만 8년 전 같은 장소에서 당했던 1-2 패배 설욕은커녕 1993년 이후 26년 째 베이루트 원정에서 승리를 따내지 못했다. 피파랭킹 91위로 한국(39위)보다 52계단 낮은 팀을 상대로 펼친 졸전에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8강 탈락의 아픔이 오버랩되기까지 한다.

무승부로 경기를 마친 뒤 고개를 떨군 선수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이날 경기는 레바논 반정부 시위 여파로 선수단 안전을 고려해 무관중으로 치러졌다. 대표팀은 치안 상황을 고려해 베이루트 현지 적응훈련을 포기하기도 했다. 여러 악조건이 겹쳤지만 경기력에 진한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벤투호’는 황의조(보르도)를 최전방에 세우고 좌우 날개로 손흥민(토트넘 홋스퍼)과 이재성(홀슈타인 킬)을 배치한 4-3-3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황인범(밴쿠버 화이트캡스)과 남태희(알 사드)가 공격을 지원하고, 정우영(알 사드)이 수비를 보호했다.

포백은 왼쪽부터 김진수(전북 현대), 김영권(감바 오사카), 김민재(베이징 궈안), 이용(전북)이 구성하고 김승규(울산 현대)가 골키퍼로 나섰다.

한국은 전반 수비형 미드필더를 2명 세우고 견고한 두 줄의 수비라인을 구축한 레바논의 수비에 고전했다. 이재성, 황인범, 황의조가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지만 슛이 골문을 벗어났다. 

전반 28분 레바논 바셀 지라디의 강한 오른발 슛을 김승규가 힘겹게 막아내는 등 오히려 위기도 더러 있었다.

예상 가능한 베스트일레븐이 나왔고, 무색무취한 경기를 펼쳤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전반 내내 몸이 무거웠던 황인범 대신 황희찬(잘츠부르크)이 후반 시작과 동시에 투입됐다. 이어 김신욱(상하이 선화)을 넣고 황의조와 투톱을 이루게 하며 4-2-4에 가까운 전술로 골문을 노렸다. 후반 35분 마지막 교체카드는 이강인이었다. 중앙에 이강인(발렌시아)을 기용해 창의성을 불어넣고자 했지만 끝내 골문을 열지 못했다.

득점을 위해 라인을 높이 올렸고, 무너진 공수 균형에 경기 막판 10분에는 뒷공간을 내주며 위험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후반 골을 위해 전형을 파괴하며 나름 파격적인 시도를 했지만 선수 구성은 동일했다. 특히 스타팅라인업은 레바논이 충분히 예상 가능한 그대로였다.

전술의 키를 쥐고 있는 황인범이 최근 대표팀에서 부진이 길어지고 있다. 또 좌우 풀백 김진수, 이용의 크로스의 질이 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팬들의 울화통이 터질 만도 하다. 특히 황인범은 잦은 패스미스와 필요 이상의 파울로 공수 양면에서 합격점을 주기 어려웠다. 

경기를 중계하던 박문성 축구 해설위원은 “왜 진작부터 좀 더 공격적인 전술을 들고나오지 않았는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벤투 감독이 레바논전을 시작하며 보여준 소극적인 변화에 의문부호를 달았다.

벤투 감독의 선수 운용 폭에 불만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투르크메니스탄과 펼친 1차전과 비교하면 ‘벤투의 황태자’로 불리는 남태희가 부상에서 복귀한 뒤 나상호(FC도쿄)의 자리를 꿰찬 것을 제외하면 선발 명단 중 10명이 동일했다.

피파랭킹 202위 최약체 스리랑카와 2차전에선 투르크메니스탄전과 비교해 9명이나 바꿨지만 중요도가 높았던 북한과 3차전에선 투르크메니스탄전과 10명이 같았다. 부상 당한 이용 대신 김문환이 나선 게 유일한 변화였고, 득점 없이 비겼다.

적어도 월드컵 2차예선 레벨에서는 조별 순위와 경우의 수를 따져본 적이 없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다. 아시아 축구의 평준화 흐름 속에 예전만큼 매 경기 시원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긴 하나 최종예선과 월드컵이라는 더 중요한 일정에 앞서 선수단 운용 폭이 너무 좁다는 인상을 지울 길이 없다.

아시아 약체들을 상대로도 전술 및 선수단 실험에 소극적인 것은 물론 결과까지 아쉽다. 팬들 사이에서 ‘최정예’라는 명분 하에 이미 주전과 비주전이 나눠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기도 한다. 내부 경쟁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다면 아시아예선을 통과하더라도 국제 경쟁력을 장담할 수 없다.

월드컵까지 3년이 남았다. 현재 벤투 감독의 울타리 밖에 있는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일찌감치 경쟁이 마무리된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면 길게 놓고 봤을 때 이롭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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