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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스턴과 NBA, 마이클 조던이 애도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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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스턴과 NBA, 마이클 조던이 애도한 까닭은
  • 민기홍 기자
  • 승인 2020.01.03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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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황제’ 마이클 조던만큼이나 농구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 세상을 떠났다.

미국프로농구(NBA) 사무국은 2일(한국시간) 데이비드 스턴 전 NBA 커미셔너가 아내와 두 아들 곁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향년 77세.

곳곳에서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스턴이 농구는 물론 스포츠산업이 성장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이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조던은 성명서를 내고 “스턴이 없었다면 오늘의 NBA는 없었다”며 “스턴은 농구를 사랑했고 나는 그를 존경했다. 스턴의 비전과 리더십 덕분에 내가 세계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애도했다.

고(故) 데이비드 스턴 전 NBA 커미셔너. [사진=AP/연합뉴스]

마이클 조던의 후계자인 코비 브라이언트(은퇴), 르브론 제임스(LA 레이커스)도 거들었다. 브라이언트는 “스턴 덕에 농구가 다방면으로 발전했다. 스턴은 모두에게 최고였다”고, 제임스는 “스턴이 농구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스포츠로 만들어줬다”고 적었다.

스턴의 스토리를 살펴보면 농구계가 슬퍼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1942년 뉴욕, 식료품점집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렸을 적 뉴욕 닉스의 홈구장 메디슨스퀘어 가든을 자주 찾을 만큼 농구를 좋아했다. 룻거스대,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1966년 법률 자문위원으로 NBA와 처음 인연을 맺은 뒤 1978년 고문, 1980년 전무이사를 거쳐 1984년 2월 래리 오브라이언 총재 후임으로 제4대 NBA 커미셔너에 올랐다.

1984년 10월, 래리 버드(왼쪽)에게 상을 전달한 스턴 전 커미셔너. [사진=AP/연합뉴스]

2014년까지 30년 간 스턴 커미셔너가 이룬 업적이 워낙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대표적인 게 마케팅과 세일즈다. 휘청대던 리그를 예쁘게 포장해 세계로 진출시켰다. 30구단 체제, 200개 이상의 나라에서 40개 언어로 볼 수 있는 NBA가 스턴의 작품이다.

마이클 조던,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를 비롯한 숱한 스타가 스턴의 진두지휘 하에 슈퍼히어로로 거듭났다. 사무국의 영업부서를 키워 스폰서십 유치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NBA는 연간 50억 달러(5조7800억 원)를 상회하는 가치를 지닌 리그로 성장했다.

NBA는 스턴 취임 전만 해도 시청률이 바닥이었고, 파이널(챔피언결정전)이 녹화방송될 정도로 허우적대고 있었다. ‘마케팅의 고수’ 스턴은 코카인, 마리화나 등을 탐닉하던 흑인 농구선수들을 ‘삼진아웃제’로 강력 제재했다. 선수 복장 규정을 신설하고 지역밀착 마케팅을 지시하는 등 이미지 개선에 힘썼다. NBA 케어스(자선활동)는 사회공헌(CSR)의 대표 사례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이슈를 몰고 다녔던, 그 유명한 드림팀도 바로 스턴의 아이디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머리를 맞대고 아마추어들만 참가하는 올림픽에 NBA 선수들을 참가시켜 국제화 기반을 닦았다. 훗날 NBA에서 덕 노비츠키(독일), 마누 지노빌리(아르헨티나), 토니 파커(프랑스), 야오밍(중국), 야니스 안테토쿤보(그리스)를 만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1996년 5월. 마이클 조던(오른쪽)에게 트로피를 전달하는 스턴 전 커미셔너. [사진=AFP/연합뉴스]

중국, 남미,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트레이닝 캠프와 시범경기를 개최한 건 탁월한 전략이었다. NBA는 마이클 조던 은퇴 이후 휘청댈 것이라던 예상이 빗나간 건 스턴의 경영수완 덕분이었다. NBA는 커미셔너에서 물러나자 그를 명예의 전당 특별회원으로 헌액했다.

샐러리캡(연봉 상한선)을 도입해 NBA 구성원 전부가 공생하는 분위기를 형성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공적이다. NBA 공식 사이트(NBA닷컴)와 TV를 개설해 뉴미디어 시대에 발 빠르게 대응한 점,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와 NBA 하부리그를 연착륙시킨 점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지난해 12월 중순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그는 수술과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현대 NBA의 아버지, 전 세계 프로스포츠리그 총재와 체육행정가의 롤 모델, 스포츠마케팅의 대들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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