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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배구, 팬들에 전달된 간절함... 어찌 선수만 탓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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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배구, 팬들에 전달된 간절함... 어찌 선수만 탓하리오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0.01.13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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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한국 남자배구가 20년 만에 올림픽에 진출하겠다는 꿈이 좌절됐다. 하지만 그 간절함과 절박함은 팬들에게 전달됐고, 그동안 그들을 향했던 비아냥과 조소를 응원과 지지로 바꿔내기는 충분했다. 이제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임도헌 감독이 이끄는 세계랭킹 24위 남자배구 국가대표팀은 11일 중국 장먼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대륙별(아시아)예선 준결승에서 아시아 최강 이란(8위)에 세트스코어 2-3(25-22 21-25 18-25 25-22 13-15)으로 석패했다.

예상보단 잘 싸웠다. 조별리그에서 호주(15위)를 밀어낸 한국은 2m 이상 장신이 14명 중 6명이나 되는 압도적 높이의 이란을 몰아붙였고, 풀세트 접전을 벌였다. 이란이 조별리그와 결승에서 중국(20위)을 두 차례나 3-0 완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이 기대 이상으로 맞섰음을 알 수 있다.

남자배구 대표팀이 아쉽게 이란에 석패하며 20년 만의 올림픽 진출에 실패했다. [사진=FIVB 제공]

◆ '졌잘싸' 팬들에 전달된 절박함

신장 차이는 경기력에 영향을 미쳤고, 한국은 블로킹에서 7-17로 크게 밀렸다. 타개책으로 내세운 강력한 스파이크 서브로 상대 리시브 라인을 무너뜨리며 대등하게 겨뤘다. 전광인이 양 팀 통틀어 가장 많은 25점, 박철우가 22점을 냈지만 이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란이 중동 특유의 눈에 보이지 않는 도발과 상대 흐름을 끊기 위한 지연행위 등으로 신경전을 유발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박수 받을 만한 경기였다는 평가다. 

비록 우승팀에만 돌아가는 올림픽 티켓을 따내지 못했지만 이란, 호주와 모두 풀세트 승부를 벌이며 가능성을 봤다. 타고난 신장 차를 극복하기 위한 배구를 다음 올림픽까지 남은 4년 동안 갈고 닦아야 한다.

남자배구 대표팀 선수들은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입을 모으며 고개를 떨궜다. 올림픽 경험을 전수하지 못했다는 다음 세대에 대한 미안함을 계속 안고가게 됐다.

대한민국배구협회에 따르면 '맏형' 박철우는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다. 올림픽을 또 못 나가게 된 것에 대한 부담을 후배들에게 넘겨준 것 같아 정말 미안하다”며 “한국 배구를 위해서 다음 세대들이 잘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전광인 역시 “팬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할 게 없다. 모든 것을 코트에서 쏟아 부으며 남자배구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바꾸려 노력했지만 아직 부족한 것 같다”며 “지금까지 형들이 많이 이끌어줬는데 이제는 밑의 어린 선수들이, 또 좋은 선수들이 대표팀에 들어와서 이끌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기고 싶었고, 이제는 이길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돼서) 할 말이 없다”는 그의 말에 대표팀의 절박했던 심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들의 간절함은 TV 중계가 없어 국제배구연맹(FIVB) 유튜브 채널 스트리밍을 통해 경기를 시청한 팬들에게도 전달됐다.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주요 남자배구 대표팀 관련 기사 댓글창을 살펴보면 “이란이 결승에서 중국 다시 박살낸 거 보고 느꼈음. 한국이 엄청 잘했습니다”, “이란은 이미 탈아시아. 유럽하고도 맞먹는 팀인데 엄청 잘한 거니깐 힘내세요” 등의 반응이 주를 이룬다.

또 “전 국민이 한마음으로 응원해도 모자랄 판인데 여배는 홍보도 많이 하고 중계도 하면서 남배는.... 그러고도 성적을 바라는 건 아니라고 본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도 많다.

주장 신영석은 세대교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진=대한민국배구협회 제공]

◆ 선수단만의 문제? 체질 개선 절실

세대교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세터 한선수(35), 아포짓 스파이커(라이트) 박철우(35), 미들 블로커(센터) 신영석(34) 등 이번 대표팀 주축 대부분이 30대 중반이다. 

박철우는 이번 대회 이란, 중국보다 한 경기 덜 치르고도 전체 득점 2위(62점)-공격성공률 6위(47.4%)에 올랐고, 신영석은 득점 공동 11위(40점)를 차지했다. 베테랑들이 녹슬지 않은 기량으로 팀을 이끌기도 했지만 뒤를 이을 후배들의 성장세가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신영석은 “믿고 싶지 않은 결과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며 “앞으로의 대표팀이 더 중요하다. 유소년 육성과 세대교체 등의 과제들을 더 늦지 않게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그는 “우리 팀 (평균)나이가 많은 편”이라며 “세대교체가 늦어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최천식 해설위원은 “현대 배구에선 세터와 센터가 중요한데, 2024 파리 올림픽에 나설 재목이 보이지 않는다”며 “젊은 선수들을 키워내기 위해선 프로뿐만 아니라 고교, 대학 배구의 분위기가 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위원은 “최근 대학스포츠는 수업 필수 참가 등 졸업 요건이 까다로워지면서 훈련 시간이 대폭 줄었다”며 “대학 배구 전반적인 기량이 떨어지면서 한국 배구가 흔들리고 있다. 현실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2군리그의 필요성도 대두된다. 프로에 입문하더라도 제대로 된 기회를 받지 못하는 선수가 수두룩하다. 정규리그, 한국배구연맹(KOVO)컵 외에 실전 경험을 쌓을 장이 부족하다. 2021 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2024 파리 올림픽 등을 바라보고 뿌리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세터 황택의(24), 레프트 정지석(25), 나경복(26) 라이트 허수봉(22) 등 젊은 선수들의 성장과 더불어 한국 남자배구 토양을 건강하게 다지는 체질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

남자 대표팀은 지금껏 잘 준비된 팀이기보다 급조된 뒤 애국심으로 무장한 팀에 가까웠다. V리그에선 국제 공인구 '미카사'의 공이 아닌 아닌 '스타' 제품을 써 적응에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감독과 전임코치 1명을 제외한 코칭스태프는 소속팀 직책을 수행하다 대회 전 급박하게 합류했다. 전력분석관 중 한 명은 출국 하루 전에야 보강됐다.

남자배구 대표팀은 장기적인 계획에 의해 움직이기보다 눈앞의 대회 성적을 위해 근시안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모든 책임을 선수단에 전가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구단-연맹-협회가 머리를 맞대 남자배구의 미래를 고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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