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01-24 03:33 (금)
'스토브리그, 정말로 감사합니다!' [민기홍의 운동話공장]
상태바
'스토브리그, 정말로 감사합니다!' [민기홍의 운동話공장]
  • 민기홍 기자
  • 승인 2020.01.14 14: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진짜 야구선수 최저연봉이 2700만 원밖에 안 돼?”
“정말로 코치들이 데이터 분석하는 전력 분석원을 저렇게 무시해?”
“연봉 조정신청이 실제로 자주 없어?”
“신인 드래프트랑 2차 드래프트랑 뭐가 다른 거야?”

류현진 손흥민 김연경 연봉, 정현의 호주오픈 상금 말고는 스포츠에 전혀 관심이 없던 친구가 하는 질문이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금 토요일 밤 10시 시작하는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 때문이다. 스포츠 문외한인 친구는 “야구를 하나도 몰라도 재밌다. 이렇게 무언가에 푹 빠져본 게 주식 이후 처음”이라면서 설 연휴 결방 소식에 탄식을 내뱉었다.

[사진=SBS '스토브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처]

팬들의 눈물마저 마른 꼴찌 팀, 드림즈의 뜨거운 겨울 이야기를 다룬 ‘스토브리그’가 장안의 화제다. 지난해 12월 13일 방영된 1회는 시청률이 5.5%였는데 지난 11일 9회는 15.5%로 무려 10.0%포인트나 올랐다. 야구팬만 단결해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숫자요 고공행진이다.

과연 종영 때(16회)까지 20%에 도달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회당 시청률 20%를 넘긴 드라마를 살펴보자. JTBC ‘스카이 캐슬’, KBS ‘동백꽃 필 무렵’, SBS ‘열혈사제’였다. 신드롬을 체감했을 터다. 뉴미디어 발달로 TV 시청률이 전반적으로 폭락한 요즘, 20%가 갖는 의미는 남다른데 ‘스토브리그’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기자도 '스토브리그' 때문에 ‘불금’을 포기했다. 무조건 본방사수다. 그간의 드라마 판은 재벌과의 사랑, 정경유착, 자극적인 범죄, 출생의 비밀과 불륜을 다룬 '그 나물에 그 밥' 이었다. 한데 스포츠콘텐츠가 프라임 타임을 꿰차다니, 체육계 종사자로서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정동윤 감독, 이신화 작가에게 감사인사를 보낸다. 이유는 크게 셋이다.

◆ 백승수 키즈를 기대한다!

몇 년 후면, 우리는 ‘백승수 키즈’와 마주하게 된다.

프로야구 단장과 프런트를 꿈꾸는 어린이‧청소년이 급증할 게 확실시 된다. 톰 크루즈가 “쇼미더머니!”를 외친 영화 ‘제리 맥과이어(1996)’가 스포츠에이전트 직업군에, 브래드 피트가 세이버메트릭스를 알린 영화 ‘머니볼(2011)’이 스포츠데이터 계에 미쳤던 영향이 얼마나 지대했던가.

잘 만든 문화콘텐츠 하나가 직업 지형도를 바꾼다. 기자의 학창시절을 돌이켜봐도 그랬다. ‘좋은 사람(2003)’의 경찰대 수석졸업자 신하균을 보고 경찰대에 가겠다던 친구가, ‘태양 속으로(2003)’의 해군 권상우를 바라보며 해군사관학교로 진로를 틀었던 선배가 있었다. ‘호텔리어(2001)’의 송윤아가 호텔리어를, ‘여름향기(2003)’의 손예진이 플로리스트를 대중에게 알렸다.

'스토브리그' 제작발표회. 오정세(왼쪽부터), 남궁민, 박은빈, 조병규. [사진=스포츠Q(큐) DB]

‘스토브리그’에서 남궁민이 연기하는 백승수 단장은, 박은빈이 연기하는 이세영 운영팀장은 이제 누군가의 장래희망이다. 골프의 박세리 키즈,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키즈, 야구의 베이징 올림픽 키즈처럼 ‘백승수 키즈’, ‘이세영 키즈’가 자란다는 소리다.

‘스토브리그’ 2회의 백미, ‘왜 임동규는 드림즈를 나가야 하는가’ 프레젠테이션 대본을 자문한 박윤성 SK 와이번스 데이터 전력분석팀 매니저, ‘야구만세’의 칼럼니스트 백영수(로빈슨)의 실제 모델 장원영 ‘야구공작소(구 비즈볼프로젝트)’ 전 대표는 스포츠산업 진입을 꿈꾸는 이들에겐 이미 동경의 대상이 됐다.

스포츠계가 ‘스토브리그’ 덕을 볼 날이 이르면 5년, 늦어도 10년 내로 찾아올 것이라 감히 예상한다. 프로스포츠 구단 프런트와 협회‧연맹 취업을 위한 물밑 본격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미리, 치밀하게, 간절하게 준비한 양질의 인력이 업계로 유입되는 효과가 있다.

◆ 겨울이 더 재밌다!

겨울이 무료하지 않다.

프로야구는 3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월요일만 빼고 진행되는, 장기 데일리 종목이다. 비시즌만 되면 팬들은 좀이 쑤신다. 2019 KBO리그 종료 후엔 안치홍이 KIA(기아) 타이거즈에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한 것 빼고는 굵직한 자유계약(FA) 자원의 이동도 없었다. 조용했던 스토브리그를 ‘스토브리그’가 뜨겁게 달궜다.

요즘 야구 기사엔 드라마 관련 댓글이 쏟아진다. 류현진을 놓친 데다 영입 작업마저 큰 성과가 없는 LA 다저스를 향해 “백승수 단장을 영입하라”고 제안한다. “강두기, 로버트 길(길창주) 원투펀치를 기대해 달라”는 메시지엔 하트가 쏟아진다. 백승수와 강두기가 가상인물(곽철용, 김지영, 펭수, 유산슬) 센세이션 릴레이의 바통을 이어받은 형국이다.

매회 기싸움을 펼치는 권경민 상무(왼쪽)와 백승수 단장. [사진=SBS '스토브리그' 공식 홈페이지]

‘스토브리그’는 집단지성을 자극해 수많은 부가 콘텐트와 패러디를 생산하고 있다. 연말 SBS 연예대상 방송으로 결방되자 “더블헤더 안 하냐?”는 댓글이 달렸다. “김종무(바이킹스) 단장, 오사훈(펠리컨즈) 단장으로 시즌 2‧3를 제작하자!”, “144부작 대하드라마 ‘페넌트레이스’는 어떠냐”는 반응도 있다.

부임 때부터 프로세스를 강조했던 성민규 롯데 단장의 경우 백승수 단장과 일 처리 방식이 닮았다는 이유로 주목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롯데 역시 드림즈처럼 최하위다. 트레이드, FA 옵트아웃, 코치 선임 등 열일 하는 모습을 보여준 그는 백승수 덕에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조명 받는 단장이 됐다.

◆ 가고 싶은 야구장

'스토브리그'는 고전하는 KBO리그에 한 줄기 빛이기도 하다.

프로야구는 2017년 역대 최다관중 840만688명을 찍었으나 2018년 807만3742명, 2019년 728만6008명으로 급격한 내림세에 접어들었다. 도박, 음주운전, 승부조작 등 부정적 이슈가 끊이지 않았다. 2020 경자년 벽두에도 LG 투수의 시민 폭행, NC 다이노스 코치의 경찰관 폭행이 연이어 터졌다.

"큰 그림 그리셔도 된다"고 말하는 강두기(왼쪽)와 이를 듣고 있는 백승수 단장. [사진=SBS '스토브리그' 공식 홈페이지]

이런 와중에 ‘스토브리그’는 야구장을 찾아야 할 명분을 만들어줬다. SK를 응원하지 않더라도, 야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도 드림즈 홈구장(인천 SK행복드림구장)을 한 번은 찾고 싶어지지 않을까. 백승수 단장이 재송그룹의 구단주 대행 권경민 상무와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인 곳, 백 단장이 고심에 빠져 비닐하우스를 내려다 본 곳, 바로 그 내야석 상단에서 인증샷 한 번 찍으려는 인파가 몰릴 것으로 보인다.

2017 프로야구 ‘윈터 미팅’에서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은 “구단이나 미디어가 생산하는 뉴스, 광고보다 우리 구장을 찾아 찍은 인스타그램 사진 한 장이 더 파워풀하다”며 “야구장이 찍히기에 예쁘면 (팬들은) 방문한다. 어느 위치가 가장 예쁘게 나오는지를 고민하라”고 말했다. ‘스토브리그’가 그 해결책을 제시했다.

드림즈 이야기가 어느 구단의 역사를 고증한 것이라거나, 스카우트 팀장직에서 해고된 뒤 에이전시를 차린 고세혁 대표, 그리고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인이 된 길창주가 누구를 떠올리게 한다거나 등은 야구를 전혀 몰랐던 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스토브리그'가 야구계, 체육계의 노력만으로는 절대 못 이룰 일을 해낸 셈은 아닐까? 올 시즌 프로야구 개막이 내심 기대되는 이유 하나 더 추가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관련기사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