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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규호, 도쿄올림픽행 기뻐도 '몰빵 농구'는 문제다 [SQ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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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규호, 도쿄올림픽행 기뻐도 '몰빵 농구'는 문제다 [SQ초점]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0.02.10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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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이문규(54) 감독이 이끄는 여자 농구 대표팀이 12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 쾌거를 이뤘다. 많은 농구 팬들이 최선을 다해 성과를 만들어낸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령탑을 향해선 동시에 걱정 어린 시선을 넘어 비판을 쏟아 내고 있다.

당초 목표는 1승과 이를 바탕으로 한 본선 진출이었다. 두 가지 목표를 이룬 이문규 감독에 대한 칭찬과 격려가 이어져야 할 상황에 왜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일까.

바로 시대착오적인 ‘몰빵 시스템’ 때문이다.

 

여자 농구 12년 만에 올림픽 본선행을 이끈 이문규 감독이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혹사 논란 때문이다. [사진=FIBA 제공]

 

스페인(3위), 중국(8위), 영국(18위)과 함께 조를 이룬 2020 도쿄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한국은 1승 2패를 기록, 3위로 상위 3개국에 주어지는 올림픽 본선 티켓을 따냈다.

첫 경기 스페인에 46-83으로 대패했지만 ‘1승 제물’ 영국을 82-79로 이기며 기대감을 높였다. 9일 최종전에서 중국에 60-100으로 무기력하게 졌지만 스페인이 영국을 꺾으며 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다시 올림피아드 무대에 나서게 됐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일본에 패하며 20년 만에 올림픽 본선행이 좌절된 여자 농구는 4년 전 리우 올림픽에서도 본선에 나가지 못했다. 여자 농구 인기는 더욱 싸늘히 식어버렸다. 그 사이 국제 대회에서 선전한 여자 배구는 여전히 흥행 상승세를 타고 있다.

선수들은 간절했다. 어떤 노력을 해도 팬들의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는 여자 농구 인기를 끌어올릴 기회라고 여겼다. 그리고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씁쓸함도 남았다. 농구 팬들을 분노케한 건 8일 영국전이었다. 결과적으론 성공이었다. 하지만 과정엔 곱씹어봐야 할 크나 큰 문제가 있었다.

 

영국전 풀타임 소화한 김단비가 경기 도중 힘들어하고 있다. [사진=FIBA 제공]

 

이문규 감독은 이날 12명 엔트리 중 40분 풀타임을 소화한 강이슬과 박혜진, 김단비를 비롯해 박지수, 배혜윤, 김한별 단 6명만을 투입했다. 김한별의 출전 시간도 6분에 못 미쳤는데, 배혜윤과 박지수의 체력 관리를 위한 게 전부였다.

종목은 다르지만 김학범 23세 이하(U-23) 축구 대표팀 감독이 올림픽 예선에서 20명의 필드 플레이어를 모두 활용하고 19명을 선발로 출전시키면서도 전승 우승을 거뒀던 것과 대비되는 행보였다.

대한민국농구협회에 따르면 이문규 감독은 “오래 뛰지 않으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
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체력이었다. 경기 한 때 15점까지 앞서가던 한국은 막판 급격히 체력 저하 증상을 보였고 4쿼터 막판 1점 차까지 쫓겼다. 선수들의 발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고 몸 싸움에서도 초중반과 달리 크게 열세를 보였다. 다행히 승리를 지켰지만 선수 교체 없이 밀어붙인 이문규 감독의 결정에 대해선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문규 감독 스스로도 “체력이 고갈되는 문제가 있었고 그 순간을 잘 넘겨야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이날 3점슛 6개 포함 26득점한 수훈갑 강이슬 또한 “4쿼터 마지막 점수 차가 좁혀질 때 가장 당황했던 것도 있고 영국 선수들이 우리보다 피지컬이 좋다보니 마지막에 지쳤을 때 몸이 부딪쳤을 때 이겨내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벤치에서 동료들의 투혼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선수들. [사진=FIBA 제공]

 

대안이 없었던 건 아니다. 김정은이 부상으로 뛸 수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다른 선수들은 모두 출전이 가능했다. 베스트5와 나머지의 실력차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해명할 수 있지만 15점을 따라잡힌 걸 생각하면 주축들의 체력 관리를 위해서라도 로테이션이 필요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영국전은 체격 우위가 있는 선수들과 치열한 몸 싸움을 벌이며 평소보다 체력 소모가 더욱 큰 경기였다. 이문규 감독의 결정이 가혹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는 이유다.

스페인전과 중국전에선 11명의 선수가 출전 시간을 고루 나눠가졌다. 몸 상태에 이상은 없다는 방증이다.

게다가 큰 경기력 차이 또한 도마에 오를 만하다. 본선 티켓을 따낸 건 자랑스럽지만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 스페인, 중국전처럼 무기력한 대패를 당한다면 목표한 1승을 거둔다고 하더라도 농구 팬들의 환영을 받기 힘들다.

영국전 59.1%(13/22)의 성공률을 보인 고감도 3점슛에 힘입어 승리를 챙겼지만 슛감이 조금만 저조했더라도 자칫 올림픽 본선행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전술 부재 등을 이유로 들며 감독 교체론까지 대두되는 이유다.

농구는 물론이고 야구, 배구, 축구 등 종목을 불문하고 혹사 문제는 뜨거운 이슈다. 답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선수와 팀에 모두 이로울 게 없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추세다. ‘투혼’을 강조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이문규 감독의 ‘몰빵 농구’가 더욱 거센 비판을 받는 이유다.

 

투혼을 펼친 김단비(왼쪽부터)와 박지수, 배혜윤이 신승 이후 감격하고 있다. [사진=FIBA 제공]

 

대표팀 선수들에게 절실한 도쿄 올림픽이다.

1984년 LA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여자 농구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2년 세계선수권에서 4강에 오르며 다시 한 번 역사를 썼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0년 세계선수권에서도 8강에 나서며 선전했다.

그러나 베테랑들의 은퇴와 전반적 기량 하락으로 성공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박지수를 중심으로 기대감을 키우고 있는 한국이지만 여전히 큰 기대를 갖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도쿄 올림픽 여자농구 본선 조 추첨은 오는 3월 21일에 진행되는데, 세계 10위권 국가 9팀이 참가하는 본선에서 한국의 목표는 1승이다.

그럼에도 분명히 보여줘야 하는 게 있다. 결과 중심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스스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요새 스포츠 팬들은 무리한 목표를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국제무대의 벽에 맞서 우리만의 플레이를 하며 재미와 희망을 던져줄 필요는 있다.

선수가 없다고, 세계와 격차가 크다고만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있는 자원에서 최대한 활용도를 높이며 맞서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고 재능이다. 올림픽 본선을 5개월 앞둔 상황에서 누구보다 선수들을 잘 파악하고 있고 땀흘려 함께 본선행을 일군 감독을 내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다만 이문규 감독 또한 거센 반발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여봐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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