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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선교장 초가에도 홍매가 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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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선교장 초가에도 홍매가 활짝!
  • 이두영 기자
  • 승인 2020.02.22 0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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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된 사대부집에 벌써 봄 운치 흘러

[스포츠Q 이두영 기자] 강원도 강릉 사대부집 초옥 뒤뜰에 매화꽃이 활짝 피었다. 바이러스 공포와 미세먼지가 훈풍을 가로막는 형국이지만, 관동팔경을 유람하는 묵객들에게 참새방앗간 노릇을 했던 선교장에는 새봄이 여지없이 찾아오고 있다.

소나무와 대나무 등이 우거진 산자락에 옛 기와집과 초가들이 격식 없이 자연스럽게 지형을 따라 어우러져, 양반가의 기품과 풍치를 드러내는 곳이 선교장이다.

홍매.
매화꽃.

 

선교장은 이 마을의 옛 이름인 선교리(배다리마을)에서 비롯됐다. 과거에 경포호수는 현재보다 훨씬 넓었으며, 선교장 옆 농토도 호수의 일부였다. 주민들은 배다리를 만들어 경포호로 접근했다고 전해진다.

선교장을 지은 사람은 효령대군의 11대손인 이내번이다. 효령대군은 조선 3대 왕인 태종 이방원의 둘째 아들이며 세종대왕(충녕대군)의 바로 위 형이다.

경관미학적 측면에서 선교장을 대표하는 건물은 활래정이다. 대문 입구 근처 커다란 연못에 누각 형태로 지어진 정자다.

초가지붕과 매화꽃.
활래정.
활래정.

 

기역자 형태로 지어진 정자의 누마루가 연못에 다리를 내딛고 있는 형태다. 여름날 연못에 연꽃이 가득 필 때는 운치가 대단하다.

줄기등이 앙상하게 남아 있고 주변에 무궁화 꼬투리가 하늘 향해 활짝 개방하는 요즘도 색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활래정은 사랑채(열화당)를 지은 다음 해인 1816년(순조 16년)에 오은거사 이후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교장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건물은 안채다. 동별당과 서별당,연지당 등을 거느린 채 ㄷ형태로 구성돼 최소한의 은밀성을 유지하고 있다.

아녀자들이 살던 공간인지라, 소박하고 아늑하다. 연지당은 홀로 된 여인들이 안채 살림을 도우며 기거하던 건물이다.

열화당.
열화당.

 

선교장에서 가장 이물감이 느껴지는 건물은 주인 남자가 거주하던 열화당이다. 이 건물 앞에는 러시아공사관이 선물로 준 테라스가 붙어 있다. 재료가 부족해 처마를 급조한 듯한 느낌을 준다.

현재 사무실로 쓰이는 건물은 1908년부터 신학문을 가르쳤던 동진학교였다. 김구,이시형 등 선각자들이 학교설립을 돕고 여운형이 영어교사로 활동했다.

선교장에는 숙박 공간인 한옥스테이 시설과 야외공연장도 있다. 매화꽃이 핀 초가 뒤쪽에는 선교장 둘레길(백호길)도 있어서 맑은 숲내음을 만끽하며 걷기를 즐길 수도 있다.

관광객들이 선교장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다.

 

전통 한식과 향토음식을 음미할 수 있는 음식점과 카페도 ‘리몽’이라는 간판을 달고 입구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외부에 별도로 전통가구박물관도 있다. 경포호와 초당순두부마을 방면으로 몇 발자국만 떼면 매월당 김시습기념관이 무료로 방문객을 맞고 있다.

경포해변과 강문해변,안목커피거리도 지근거리에 있다. 강문해변 근처에는 태국 음식 맛집으로 소문난 ‘바나나베이’가 있다.

선교장은 쉬는 날 없이 매일 오전 9시에 개방한다.

하절기(3~10월)에는 오후 6시까지, 동절기(11월~이듬해 2월)에는 오후5시까지 관람을 허용한다. 입장료는 어른 기준 5,000원이며 학생,경로 등 각종 할인이 있다. 단체방문객은 문화해설사 설명을 요청할 수 있다.

입구 앞쪽에 무료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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